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베개 밑에서, 아니, 1층에서 나는 소리다.
눈을 감은 채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전두엽 쪽에 아직 무딘 통증이 느껴져서, 의식은 몽롱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소리다. 사각사각, 삽으로 땅을 파는 것 같은 소리.
뭔가 이상하다. 이 방 밑의 구조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땅을 판다면 아마 정원이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집 밖이 아니라 바로 아래층의 대각선 방향에서 나는 소리 같다.
아이가 흐느껴 우는 소리도 아니고, 귀신이 칼을 가는 소리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역시 구멍을 파는 소리 같다. 무섭지는 않지만 신경이 쓰인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이불에서 나와 상황을 살피러 갈 만큼의 호기심은 들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잠기운이 달아날 것 같다. 내버려 둘까. 아니, 그래도…….
소리는 드문드문 들려왔다. 인간의 숨소리 같은 다른 종류의 소리는 섞이지 않았다.
졸고 있던 탓인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쯤 되니 점점 불안해졌다. 주인이 집 안을 정리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손님의 숙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아래층에 있는 이가 주인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도둑. 그 도둑은 이 여관이 빈집이라 생각하고 침입했으리라. 그래서 위층에 사람이 있는 줄 알면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어린애처럼 귀신이 무섭다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현실적인 공포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기우인 것 같다. 만일 아래층에 도둑이 있고, 2층에 손님이 있는 걸 알아챘다면 황급히 도망쳤을 터이다. 아니, 그 전에 내일 헐릴 빈집에 숨어들 어설픈 도둑이 있을 리 없다. 착각하고 들어왔더라도 금세 어깨를 떨구고 발길을 돌리리라.
그렇다면 아래층에 있는 사람은 주인이다. 분명 그렇다. 마음 편히 잠을 청하자.
아니…….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이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몸을 일으키면서 난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아래층의 소리가 멈췄다. 역시 불법침입자가 있는 걸까?
조용해졌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명이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환청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속여서 불안에서 해방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결에 꾼 꿈을 현실로 착각했든지, 아니면 머리가 몽롱해서 문 밖에서 난 소리를 아래층에서 나는 줄 알았나 보다. 잠시 기다려 봤지만 여관은 여전히 고요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오면 어떨까? 내 반쪽이 제안했다. 그럴 것까지 있나. 다른 반쪽이 거부했다. 무섭기보다는 귀찮았다. 불현듯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갔다 다시 잠들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종종 있었던 까닭이다.
재채기가 나왔다. 감기가 낫고 있는데 쓸데없는 일로 끙끙대서는 안 된다. 이불을 꼭 덮고 일찍 자자.
그나저나 지금 몇 시쯤 됐을까? 머리맡을 뒤적여 손목시계를 찾았지만 어두워서 바늘이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인 건 분명했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동쪽을 보았지만 산의 능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니, 아직 12시 전후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라.
사람이 보인다. 남자의 뒷모습이다.
한밤중에 이런 곳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니. 국도 쪽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일까? 걸음이 무척 빠르다. 희미한 별빛을 통해 그가 야구 모자를 꾹 눌러쓰고 손에는 여행가방 비슷한 것을 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다.
저 남자는 어디서 나타났을까? 이 여관은 숲을 등지고 있고, 주변에 인가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이 여관에서 나간 게 아닐까?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날이 저문 뒤에 이곳을 찾았기에 내가 몰랐을 뿐, 숲 안쪽에 다른 인가가 있을지도 모르고, 숲 사이로 난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납득하려 했지만, 영 석연치가 않았다.
국도로 나간 남자가 왼쪽으로 꺾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저 남자는 아까까지 아래층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했다. 아마도 좀도둑이리라. 2층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재채기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훔친 물건을 넣으려고 가져온 가방을 들고 황급히 도망쳤다.
잠자리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의문이 남는다. 저 남자가 도둑이고,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쳤다면, 아무리 조심조심 걸었더라도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을 터이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흡사 문이나 벽을 통과해 지나간 것처럼.
“귀신일 리도 없고.” --- 「어두운 여관」중에서
그 손님이 나카노야 여관에 나타난 건 3월 2일 저녁,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예약했는데요.”
푹 눌러쓴 모자 밑에는 선글라스를 썼다. 입도 커다란 마스크로 완전히 가려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지만, 남자는 관자놀이와 턱도 드러내지 않았다.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손에는 검은 가죽 장갑을 꼈고, 거기다 트렌치코트로 체형까지 감추고 있었다.
‘어머, 이 손님 뭐지? 자기가 투명인간인 줄 아나?’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마주한 이는 호시나 타츠코라는 프런트 담당 종업원이었다. 올해로 이 여관에 근무한 지 15년이 되는 그녀는 동요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손님의 이름을 물었다.
“이시자카. 이시자카 히데오.”
마스크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탁해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호시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이름을 물어야만 했다.
“이시자카 님이시군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름이 등록되어 있었다. 사흘 전에 예약했다.
“네, 확인했습니다. 별관을 예약하셨고, 오늘부터 사흘 동안 묵으시는 게 맞으시죠?”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에 성함과 주소, 전화번호를 기입해 주십시오.”
숙박 카드를 내밀자, 남자는 오른손에 낀 가죽장갑을 벗고 카운터에 있는 볼펜을 집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기색 없이 필요한 사항을 적었다. 이름은 이시자카 히데오. 주소는 나라 현 이코마 시. 오른쪽으로 들려 올라간 필체였지만, 남자는 나이와 출발예정일 란도 꼼꼼하게 채웠다. 기입을 마치자, 이제 됐냐는 듯 호시나의 얼굴을 보았다. --- 「이상한 손님」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