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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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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51쪽 | 728g | 148*210*35mm
ISBN13 9788964231517
ISBN10 896423151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마르첼로 시모니
1975년 이탈리아의 코마치오에서 태어났다. 페라라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고고학자 ? 국가 문화유산 도록 관리자, 사서 등으로 활동하였다. 에트루리아 유물과 고고학 관련 기사를 발표한 그는 이후 중세 시대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시모니의 데뷔 소설로, 전체 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은 애초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출간되었는데, 이후 이탈리아에서 다시 출간되어 단숨에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러시아, 브라질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 상업성 못지않게 소설적 완성도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는 이 책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방카렐라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적 스릴러’ 3부작의 두 번째 소설인 『연금술사의 잃어버린 도서관(La Biblioteca perduta dell’alchimista)』이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어 역시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그는 3부작 세 번째 소설 집필과 새로운 소설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느덧 비비엔은 말을 몰고 언덕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더 빨리 달리고 싶었지만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되어버린 길을 달리느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 깊은 명상에서 깨어난 붉은 얼굴의 남자는 어둠 속으로 내달리는 도망자를 알아본 뒤 벌떡 일어나 말들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추적을 시작했다.
“비비엔 드 나르본! 멈춰라! 생 베므를 피해 영원히 숨어 있을 수는 없어!”
그가 외쳤다.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비엔은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현기증 때문인지 모든 것이 환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뒤편에서는 마차 바퀴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마차가 그를 따라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진창인 길을 그토록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뒤에서 그를 쫓아오는 것은 말들이 아니라 차라리 지옥의 악령들이었다.
추적자가 외치는 말은 그가 프랑크 판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예언자들이 다시 책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들은 책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인물들이었다. 천사들의 예언을 듣기 위해서라면, 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그를 고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인간들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다.
흐르는 눈물을 집어 삼키고 도망자는 말고삐를 마구 흔들어대며 말을 재촉했다. 그러나 비비엔은 말이 낭떠러지에 너무 가까이 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눈과 진흙 때문에 불안정해진 토양이 말발굽 아래에서 허물어지면서 비비엔은 말과 함께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신부의 비명소리가 말 울음소리와 함께 계곡 아래로, 폭설 속으로 사라져갔다. 마차가 멈추고 마차에서 내린 검은 옷의 마부는 낭떠러지에 가까이 다가가 절벽 아래를 살폈다.
“이제 그걸 아는 유일한 사람은 이냐시오 톨레도뿐이군. 그를 찾아내야 해.”
그는 오른손을 얼굴로 가져가 사람의 피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차갑고 딱딱한 살갗을 어루만졌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는 그의 진짜 얼굴을 감추고 있던 붉은 가면을 턱에서부터 천천히 들어올렸다. --- pp.12-14

훌코는 상인의 방 앞에 도달했다. 부근에서 인기척이란 전혀 없었고, 따라서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훌코는 침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궤짝이 그곳에 버젓이 놓여 있었다. 일부러 고생을 하며 찾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지저분해진 손을 내밀며 앞으로 나아간 그는 궤짝 위로 허리를 굽힐 참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그의 목에 와 닿았다. 칼이었다.
대항할 만한 한순간의 여유조차 없었다. 손 하나가 그의 손목을 붙잡고 그를 꼼짝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의 허리뼈에서는 우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붙잡고 뒤로 잡아당기는 키가 큰 남자는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발자국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제 끝장이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는 살해당할 것이고, 그것이 그의 최후가 될 것이다.
칼날이 그의 목을 눌러오기 시작했다. 쇠붙이가 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그의 지저분한 살갗 위로 빨간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칼날이 느슨해지더니 그를 향한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만 도둑질하러 이 방에 들어오면 그때는 아예 목을 잘라버릴 테다.”
훌코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상인임에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되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아래에서 망을 보던 지네시오는? 마치 고양이처럼 움직이는 걸 봐. 이 남자는 마법사임에 틀림없어!
훌코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대항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문 밖으로 곧장 내팽개쳐졌고 그의 목을 위협하던 칼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칼은 훌코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냐시오는 훌코의 옷에 칼을 문지르며 묻어 있던 피를 여유만만하게 닦아냈다. 그런 다음 그의 어깨춤을 잡고는 엉덩이를 발길로 차며 자신의 몸에서 그를 떨어트렸다.
문 밖으로 내던져진 훌코는 복도 바닥에 코와 무릎을 부딪치며 쓰러졌다. 손으로 바닥을 집으며 안간힘을 다해 재빨리 적을 향해 돌아섰지만 어느 샌가 또다시 칼이 그의 턱을 위협하고 있었다. 상인은 그를 향해 몸을 굽힌 채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손으로 돌려가며, 마치 은색 깃털이라도 된다는 듯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정말 너 같은 시골뜨기가 내 코앞에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거냐?”
이냐시오는 냉소적인 미소와 함께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꺼져라. 내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훌코는 뒷걸음질쳤지만 상인은 그의 멱살을 잡으며 다시 그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이걸 똑똑히 기억해둬라!”
그는 번뜩이는 칼을 그의 바로 눈앞에 가져가 보이며 외쳤다. 그러고는 그를 놔주었다. 훌코는 공포에 몸을 떨며 손으로 피가 흐르는 목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줄행랑을 쳤다. --- pp.54-56

상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페르시아의 마법사들이 이른바 ‘불멸의 성인들’이라 부르며 섬기는 아메르타 스펜타와 대천사장들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미오 시뇨레, 정확하게 알고 싶으신 게 뭔가요?”
“그래요…….”
백작은 마치 그에게 비밀이라도 털어놓겠다는 듯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몇 달 전에 어느 프랑스인 신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천사들을 불러오게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제게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물론 적당한 배상금은 지불을 해야 합니다.”
이냐시오는 스칼로와 같은 남자가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밀랍과 지푸라기로 만든 그 ‘마술머리’를 말씀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마술머리‘라고 하셨나요?”
“네. 어떤 신비주의 학자들은 머리 부적 안으로 천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말입니다. 말씀하시던 것이 바로 그건가요?”
백작은 상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것 같더니 끝내 부정을 하고 나섰다.
“그 납으로 만든 머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프랑스인 신부의 편지는 천사들을 부르는 방법을 설명하는 어떤 책을 언급하고 있어요. 페르시아 수사본에서 필사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초자연적인 피조물들은 현세에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되면 전혀 거리낌 없이 천상의 비밀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간다는 것을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도처에서 합니다. 현자들은 그 학문을 강령술이라 부릅니다.”
“압니다.”
대화의 내용이 그의 근심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냐시오는 비관적인 눈초리로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 신비의 책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요?”
“『우테르 벤토룸』이라고 합니다.”
“『우테르 벤토룸』, ‘바람 주머니’라…….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책입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제가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지…….”
상인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는 생각을 더듬어가며 말을 이었다.
“천사들은 말을 타고 바람 위를 달립니다. 그리고 공기보다도 더 가벼운 기체로 되어 있다고들 하지요. 대신 ‘주머니‘라고 하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이올로스가 율리시즈 앞에서 바람을 집어넣기 위해 사용했던 가죽 주머니밖에 없군요. 주머니를 하나의 방법이나 부적으로 가정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천사들을 꼼짝 못하게 한 다음 모습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부적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죽 주머니의 뚜껑을 연 것이 율리시즈에게 덕을 가져왔던 건 아니죠.”
이냐시오는 스스로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게다가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믿으실 수 있느냔 말입니다.”
백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그 사람을 믿어야 할지 말지는 선생님께서 밝혀내셔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조건을 제시하면서 책 주인이 끝에 선생님의 중개를 요청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아무하고도 안 만나겠다고 하더군요. 오로지 선생님께만 『우테르 벤토룸』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잘 안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제는 이해하시겠죠? 왜 제가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했는지 말입니다. 그 신부를 알고 계신만큼 틀림없이 책의 진가도 판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도대체 그의 이름이 뭡니까?”
더 궁금해진 이냐시오가 물었다.
“비비엔 드 나르본이라고 합니다.”
이냐시오는 마치 따귀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옛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비비엔……. 그의 소식을 들은 지 너무 오랜만입니다. 그가 자취를 감춘 뒤로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군요.” --- pp.91-94

나무봉은 더 깊숙이 박혀 들어가면서 경골과 뒤꿈치뼈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액체가 뿜어내는 혐오스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장화 밖으로는 핏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백작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의 다리를 자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쏟아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굴욕적인 측면을 신경 써야 하는 단계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극렬한 고통이 발에서부터 서혜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다리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양철장화가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동정심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슬라브인의 목소리가 그를 부추겼다.
“말씀하세요. 그러면 고문을 중단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다 말하겠소…….”
백작은 마치 달리는 말처럼 헐떡거리며 말했다.
“말씀해보시죠. 『우테르 벤토룸』에 대해서 뭘 알고 계십니까?”
“천사들을 불러 모으는 데 쓰인다는 것밖에는 몰라요…….”
백작은 실토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걸 알려준 건 이름이 비비엔 드 나르본이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몇 달 전에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한쪽 구석에서 침묵을 뚫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랑 무슨 관계입니까?”
“나는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먼저 나를 찾은 겁니다. 편지를 먼저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사람이고…….”
“그래서 그 비비엔 드 나르본이란 사람이 백작에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이냐시오 다 톨레도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비비엔은 내가 『우테르 벤토룸』이란 책을 샀으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냐시오 다 톨레도에게 그를 만나보라고 했죠. 나를 대신해서 책을 사 올 계획이었습니다. 비비엔 드 나르본이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왜인지는 나도 몰라요.”
수군거리던 목소리들의 어조가 높아졌다.
‘톨레도의 상인이 다시 나타난 거야!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는 거잖아! 둘이서 책을 가지고 도망치려고 하는 게 틀림없어!’
“조용히들 하세요!”
슬라브인의 목소리가 마치 동굴에서처럼 길게 울려 퍼졌다.
“비비엔 드 나르본은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말해보세요, 백작!”
“키우자 디 산 미켈레 수도원에 있습니다.”
스칼로가 고백했다. 그의 어조는 거의 헌신적이라 할 수 있었다. 땀방울로 인해 반짝이던 그의 관자놀이가 절망적으로 박동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 끔찍한 고통의 시간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는 신께 감사드렸다.
“백작의 명예를 걸고, 목숨을 걸고 맹세하십니까?”
“키우자 디 산 메켈레, 맞습니다. 뭘 걸고 맹세하든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제발 내 다리 좀 풀어주세요. 제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백작.”
슬라브인이 말했다.
“이제 고문은 끝났습니다.”
스칼로의 입가에는 백치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려 내리기 시작했다. --- pp.125-128

상인은 소년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발견한 것은 엉성하게 만든 허수아비처럼 사지가 뜯겨진 채로 누워 있는 시체였다. 드디어 고투스 루버를 찾아냈던 것이다.
시체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탁자 뒤에 숨겨져 있었다. 얼굴은 온통 부풀어 올라 있었고 게다가 멍투성이였다. 살해당하기 전에 두들겨 맞은 것이 틀림없었다. 턱 아래에 난 칼자국이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상처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목과 경동맥이 잘린 채로 철철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옷과 바닥을 온통 적셔 놓은 상태였다.
“불쌍한 친구.”
상인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렇게 짐승처럼 죽이다니……. 아마도 나 때문이겠지.”
그는 죽은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가 죽음의 저편에서 살인자의 얼굴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이냐시오는 고투스 루버의 번쩍 뜬 눈을 감기고 서글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곧장 우베르토의 팔을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는 소년을 깨워야만 했다.
“서두르자 우베르토! 여기서 영원히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한 바퀴 둘러보자꾸나. 혹시나 『우테르 벤토룸』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빨간 머리가 살해당한 건 틀림없이 그 책 때문이야.”
소년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좋습니다. 어디부터 찾아야 합니까?”
“하나도 빼놓지 말고 샅샅이 찾아봐!”
벌써 뒤지는 일에 열중하고 있던 상인이 대답했다.

선반과 책꽂이 사이를 뒤지면서 우베르토는 만에 하나 자신이 『우테르 벤토룸』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걸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생겼다. 우베르토는 손아귀에 아랍어 혹은 그리스어로 쓰인 책자가 잡힐 때마다 이냐시오에게 검토를 요청했고 그때마다 이냐시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년은 책들을 계속 뒤지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이냐시오에게 물었다.
“생 베므가 뭐예요?”
“신경 쓰지 말거라.”
수북이 쌓인 서류뭉치들을 뒤지면서 상인이 대답했다. 목소리로 판단해보건대 좋은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생 베므.”
소년은 집요했다.
“그렇게 발음하시는 것 같던데……. 좀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너는 모르는 게 좋아.”
소년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팔짱을 끼더니 소년이 말했다.
“저도 이미 이 사건에 말려든 셈입니다. 바로 선생님처럼 말이죠. 그러니까 저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소년은 거의 나무라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제게 많은 걸 감추고 계시다는 걸 알아요.”
그 말에 이냐시오는 살펴보던 양피지 뭉치를 내려놓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냐시오의 눈동자에는 당당함과 근심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그래, 좋다! 네 질문에 답을 하도록 하마.”
그가 말했다.
“하지만 기억해 둬라. 세상일을 안다고 해서 인생이 편해지는 건 없어. 아니, 십중팔구는 인생을 더 어렵게 만들지.” “상관없어요. 저는 알고 싶어요.”
이냐시오는 한숨을 내쉰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흔히 생 베므는 칼 대제가 독일 영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운 기관으로 알려져 있단다. 하지만 사실은 살인면허를 가진 기사들로 구성된 일종의 비밀법정을 말하는 거야.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무한한 권력을 행사하던 기사들이지. 그들이 일단 벌을 내리기로 작정하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건 귀족들도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예언자들’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던 거야. 그리고 살인 현장에 항상 십자가 모양의 단검으로 서명을 남겼지.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범죄자들을 처벌해왔단다. 불신자들에서 시작해서 왕권 침해자, 마법사, 강간범들까지 혐의를 받고 일단 검거를 당한 다음에는 판사들 앞에 불려가서 재판을 받게 되지.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그 즉시 목을 매달아 처형시켰단다. 생 베므의 우두머리가 그란 마에스트로라는 인물이야. 그 밑에 프랑크 백작들이 있고 그리고 그 아래에 프랑크 판사들이 있단다.”
잠시 말을 멈춘 이냐시오가 다시 말을 이었을 때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래, 내 생각에는 프랑크 백작들 중 한 명이 고투스 루버의 살해를 명령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베네치아에서부터 여기까지 우리를 추적해왔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지.” --- pp.267-271

비비엔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상황은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그는 헐떡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책은 존재하네. 암, 존재하고 말고! 아니라면 왜 도미누스가 그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그 책을 찾아왔겠나?”
“그렇다면 네놈은 왜 책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상인이 마치 대답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투로 물었다.
비비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타깝지만 능력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젠 왜 내가 자네를 여기까지 끌어들였는지 이해하겠지.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야. 네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 『우테르 벤토룸』의 주문들이 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순서를 밟아야 하네.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뭘 뜻하는지 수년에 걸쳐 연구했지만 내게는 여전히 미지수일 뿐이야. 책의 비밀을 해독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네야.”
“정신이 나간 게로군, 비비엔.”
이냐시오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배신해놓고 이제 와서 나보고 뭘 어떻게 도와달란 말인가? 자네는 사악한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아. 한때는 그렇지 않았을 뿐이지…….”
“십오 년이란 세월을 공포 속에서 살아보게.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두려움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해두지.”
비비엔은 대답을 하면서 불을 밝힌 촛대를 집어 들고 크립타의 출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짓말! 나 역시 똑같은 공포 속에서 살았네. 하지만 난 내 친구들을 배신한 적은 없어! 사실은 자네가 어떤 종류의 일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란 거야. 그러면서도 속마음은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란 말이지!”
상인은 무섭게 쏘아부쳤다. 지하 복도를 따라 걷고 있던 비비엔을 본능적으로 따라 움직이며 상인은 말을 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자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는지 아나?”
“그러니까 결국 날 돕지 못하겠다는 뜻인가?”
비비엔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투로 말했다. 마치 최후통첩을 보내오는 것만 같았다.
“꿈도 꾸지 말게.”
위층의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들어서면서 상인이 대답했다.
“잘 생각해보게. 후회할 수도 있을 테니…….”
비비엔이 다시 말을 꺼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대성당의 중앙 복도에 도착해 있었다.
걸음을 멈추어 선 이냐시오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산 마르코 성당의 아치들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듯했다. 함정에 빠진 느낌이었다.
“알겠나, 친구?”
비비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성당의 침묵을 깨고 울려 퍼졌다.
“나는 도디코 백작을 그냥 죽인 게 아니야. 난 그의 자리도 차지했네……. 지금 이 순간에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비비엔 드 나르본도 아니고 쉬피오 라자루스도 아니야. 자넨 지금 도미누스와 대화하고 있는 거야!”
상인은 놀라움과 적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비엔이 붉은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에 사로잡힌 이냐시오는 뒷걸음질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복도 위의 이층 회랑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인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횃불 한 개가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또 한 개의 횃불에 불이 붙었고, 그렇게 하나 둘씩 어둠을 밝히며 점점 늘어나는 횃불들이 끝내는 대성당 내부 전체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기에 이르렀다.
불빛에 반사된 천장의 금빛 모자이크가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그 아래편 계단석에는 가면을 쓴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상인은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가며 아치를 따라 군집해 있는 무시무시한 그림자들의 형상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았다. 모든 연령대의 남자와 여자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쓰고 검고 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비비엔이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관중들은 열광하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베 도미누스!”
쏟아지는 굉음에 압도당한 이냐시오는 기겁을 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검은 망토들의 행렬이 회랑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면서 그를 중심으로 점점 더 빽빽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이냐시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비엔의 모습을 발견했다. 한때는 함께 여행을 하던 옛 친구의 얼굴에 이제는 그 혐오스러운 붉은 가면이 드리워져 있었다. 도미누스의 말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싫든 좋든 자네는 이제 나를 도와야 할 게야. 도미누스의 명령이다!”
이냐시오는 사슬에 묶여 끌려 나갔다.
--- pp.49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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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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