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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말고 떠나라

쫄지 말고 떠나라

: 부엔 까미노,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이희우 | 이콘 | 2019년 11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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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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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60g | 138*210*15mm
ISBN13 9791189318154
ISBN10 118931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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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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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세 번씩이나 산티아고로 갔을까? 아니, 왜 매번 인생의 큰 변곡점마다 산티아고를 찾아야만 했을까?
--- p.008

니체의 말처럼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괴로우면 걸어라. 걸음은 고민을 비워줄 것이고 그 빈자리는 이내 다시 채워진다. 그러니 나와 함께 까미노를 걸어보자, 쫄지 말고.
--- p.009

하릴없이 누워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산티아고가 주는 설렘은 막막하던 차에 나에게 온 기회같이 느껴졌다. 그래 떠나자. 걸으며 생각해보자, 걸으며 답을 찾자.
--- p.013

기차가 마드리드를 벗어나 벌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소설 『마션』을 다시 꺼내 들었다. 주인공은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물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나는 오히려 생존에 필요한 뭔가 만들게 없어서 고민이다. 그렇다고 너무 깊게 고민할 생각은 없다. 이번 순례 여행은 그동안 IDG에서의 인생을 매듭 짓고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비우러 온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 p.023

카페를 지나 풍경을 지나, 또 걷는다. 멀리 강 건너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빗속을 뚫고 와서 그런가 더욱 아름답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다. 작은 마을을 하나 통과하는데 소떼가 보인다. 그때 마침 소 목장에서 소를 풀어 모는 중인가 보다. 골목길에는 소와 순례자가 뒤섞여 내려가고 있는 모습은 개판, 아니 소판이다. 한참을 소와 함께 가다 보니 뒤에서 순례자들이 부른다. 그 길이 아니라고. 소에게 속아 넘어갈 뻔했다.
--- p.032

8시쯤 숙소를 나오니 줄지어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행렬이 보였다. 그 무리에 나는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다들 이미 빠른 속도로 걷고 있다. 뭐 한달 동안 그 짓만 했으니 안 빠르면 이상한 거겠지. 그렇다고 이제 막 순례길에 오른 내가 그들 속도에 바로 맞출수도 없는 노릇이다. 출발 무렵부터 함께 걸은 동행 중 한 명인 영국인 아저씨, 로버트도 연신 “킵 유어 페이스”란다.
--- p.038

인생에서도, 사업에서도 페이스 조절은 중요하다. 살다 보면 먼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마냥 부러워서 급하게 따라가다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인생은 긴 마라톤과 같다. 페이스 메이커로만 살기엔, 타인의 페이스에 맞춰 따라가기만 하기엔 우리의 인생은 무척 소중하다. 각자의 페이스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냉정을 유지하며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 피치를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 p.039

괜히 문어로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숙회를 한 입 먹자마자 ‘와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부드러운 식감과 입안에 퍼지는 달콤 짭짜름한 맛은 지친 순례자의 심신을 어루만져 줬다. 하나 더 먹고 싶어 추가로 포장해주실 수 있냐고 물으니 가능은 하나 식으면 딱딱해서 맛이 없어진다고 하지 말란다. 양심적인 주인이었다. 문어버거는 문어숙회를 다져서 패티처럼 얹은 것인데 이 또한 별미였다. 입 한 번 제대로 호강했다.
--- p.050

이제 난 ‘0’에서 시작한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걸어가야 한다. 언덕도 있을 것이고 내리막길도 있을 것이다. 비도 내릴 것이고 바람도 매섭게 불기도 하겠지. 홀로 걷다 보면 동행자도 생길 것이고 또 그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힘들기도 하겠지만 가끔 뭔가를 보여줄 듯한 여명도 볼 것이고, 비온 후 맑은 하늘도 맞이할 것이다. 어두운 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나를 도와주는 때도 있겠지.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난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이것이 산티아고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 p.076

해가 뜨는 8시쯤부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는 적막한 목장도 보였다. 말들은 고요히 이슬 내린 풀을 뜯고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은 안개를 천천히 걷어낸다. 때마침 [You raise me up]이 풍경과 조화를 이룬 선율로 내 심장을 두드린다.
--- p.098

언덕은 제법 높다. 계속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멋진 풍경이 보인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걸어온 길이다. 근데 높이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무언가 달랐다. 아마 그때는 무리하게 앞 순례자 꽁무니만 보면서 쉬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뒤에서는 아름다운 태양이 뜨며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끔 뒤돌아봐야 한다.
--- p.111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늘 없는 벌판을 걷는다. 별빛, 달빛, 흙빛, 다 아름답다. 어제 홀로 걷다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표지판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Nature is free, Love is Free’
--- p.126

안개 너머엔 안개가 걷혀있다. 인생에서도 그렇다. 안개로 인해 눈앞이 희미하고 미래가 불안해도 우리는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믿고 나아가야 한다. 분명 안개 저 너머엔 맑은 하늘과 새로운 마을이 있을 것이다. 그걸 믿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 p.152

뭔가 꽉 막혔을 때는 가끔 옆방으로 옮겨도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바로 옆으로만 옮겨도 막혔던 물꼬가 터지기도 한다. 난 지금 옆방으로 옮기는 준비를 하기 위해 여기를 걷고 있다.
--- p.174

아침 기온은 2도로 춥다. 춥지만 너무 아름다운 먼동에서 넋을 잃었다. 어떻게 저런 색깔이 가능할까? 날이 추워지면서 먼동이 더 이뻐진 것 같다.
--- p.185

순례를 하며 많은 것을 버리고 또 비웠다. 몸이 가벼워진 것은 물론이고 정신은 그보다 더 가벼워졌다.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가 다 되었다. 이제 서서히 채워가야지.
--- p.192

그렇다. 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원래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도 바뀌게 되는 놀라운 마법이 있는 곳. 아직도 온몸이 쑤시지만 오길 잘했다. 그저 손 한번 내밀자. 그럼 다 해결된다. 손 내민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는다. 어제 결심을 하고 바로 도움이 필요한 나를 만난 친구처럼 도와주면서 본인도 큰 위로를 받게 된다.
--- p.215

직관이 발동했을 때는 따라야 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때로는 직관이라는 것도 완벽한 논리가 된다. 스티브 잡스도 긴 인도 여행을 통해 논리 중심의 서구 사회와 완전 배치되는 직관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았던가?
--- p.221

날아가는 비행기를 스치는 강한 바람소리가 느껴졌다. 순례길에 맞았던 바람과 다를 바 없다. 그저 비행기든 순례자든 바람을 뚫고 나아가면 된다. 때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나아감이 더디기도 하겠지만 처벅처벅 걸어가면 될 것이다.
다시 의욕이 샘솟는다.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것이지 인생 순례길을 마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순례자는 걷는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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