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하면, 사람들은 가곡 「그네」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저 역시 이 노래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아버지가 이 곡을 작곡하신 건 제가 태어나던 1947년 무렵입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아버지는 부산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면서 제자인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는데, 어머니의 어머니, 즉 아버지의 장모님은 소설가였습니다. 제 외할머니인 김말봉 작가님은 글재주가 탁월해 여러 권의 인기 소설과 수 편의 시를 남기셨습니다. 가곡 「그네」는 아버지가 장모님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아 곡을 붙임으로써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 p.9
밤낮이 있는 것은 조물주가 만들었지만 그 흐름을 가위질한 것은 확실히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이 ‘시간’에 얽매여 있다. 때로는 “시간은 돈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물건과 시간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그 자체가 돈이 아니고 보물도 아니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무가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시간이다. --- p.19
가야금은 한 번 퉁기면서 줄을 늘이면 몇 가지의 소리가 난다. 이런 특색 있는 악기는 다른 나라에는 없다. 그러나 단칸방에서만 알맞은 악기다. 좀 더 크게 만들고 큰 소리가 나도록 개량하면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악기다. 보수족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국악기는 개량되어야 하고, 음률도 순정률로 고쳐야 화음을 낼 수 있고, 음감이 정해진 학생에게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 p.87
우리나라 춤에 ‘어깨춤’이란 게 있다. 장단에 맞춰 어깨만 올리면 된다. 이 춤도 앞으로 멋진 음악에 맞추어 추도록 보급하면 세계시장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선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류여, 항상 즐거움과 춤을 가져라. 춤은 또 건강에 좋다. ‘로큰롤’에서 다리를, ‘트위스트’에서 허리를, 그리고 이제 코리아가 창안한 ‘어깨춤’에서 가슴의 건강을 위해서…….” --- p.180
화폐 박람회 공식 연주회 다음 날 우리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콘서트홀에서 전날 했던 프로그램을 한 번 더 연주했다. 갑자기 열린 음악회라 안내 팻말 하나만 세워두었을 뿐인데, 청중이 300명 넘게 모여들었다. 연주 중 취지를 설명했더니 난민들을 위한 기금이 3천 유로 이상 모금되었다. 음악회도 기금 모금도 성공적이었다. 이 사실이 현지 신문에까지 보도될 정도였다. 아버지의 ‘선 김에’가 아들에 의해 ‘간 김에’로 이어진 셈이다. --- p.186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도 목관 악기를 가르치는 스승에게 가서 배울 필요가 있다. 목관 악기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를 알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도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스승에게 가서 배우면 좋을 것이다. 바이올린 현의 미세한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 건반을 다루는 느낌을 더 성숙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 배우는 것은 지금까지 나를 가르친 선생님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스승의 바람대로 더 큰 제자가 되기 위함이다. 다양한 배움을 위해서는 모두의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바람직하다. --- p.214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기업과 지역과 음악과 청중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페스티벌을 구상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를 하고 차나 와인도 마시면서 충분히 담소를 나눈 다음, 편안한 분위기 속에 음악을 감상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 p.219
이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음악회를 갖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분주히 오가던 로비가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콘서트홀로 변신한 것이다. 나는 이 로비에서 ‘베토벤 페스티벌’, ‘차이콥스키 페스티벌’, ‘브람스 페스티벌’ 등을 이어가며 세 음악가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이 새로운 시도의 음악회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다른 연주단체의 각종 공연들이 이곳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빈 공간이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 p.230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이 많은 홍영철 회장이 또 하나의 야심작으로 선보인 것이 ‘F1963’이다. 세계 최대 특수 선재 회사인 고려제강이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에 처음 공장을 지은 해가 1963년이다. 회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낡은 공장을 완전히 새롭게 꾸며 부산을 상징하는 문화 공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 p.240
글을 쓰다가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제 나름대로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제가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자꾸 글도 쓰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말도 많아지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납니다. 어쩌겠습니까? 이것 역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천성인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