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지구 저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매우 경탄할 만하고 활기 넘치는, 그러나 아주 머나먼 곳에서 벌어지는 어떤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선교는 그런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부름받은 선교사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02 부름을 받는 것에서 보냄을 받는 것으로」중에서
복음을 ‘판매’하려는 전략과 복음에 관한 거대 담론들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섣불리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려 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선교사들은 오히려 다른 이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 자신의 행위에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강압적인 태도를 덜어내고,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든 그들을 자유롭게 둘 수 있어야 한다. 자유를 지니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게끔 신뢰하는 일의 핵심에는 선교와 복음 전도가 하느님의 일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의 권능이 함께함을 믿는다면 상대방을 개종시키려 애쓰기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 우리가 받은 그대로의 복음을 선포할 것이다.
---「05 순례를 위해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중에서
선교를 위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면 가장자리에서 배회하는 구성원들이 교회 공동체 중심을 향해 자유롭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환영한다는 것은 교회 입구에서의 미소와 손짓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도자들이 교회 공동체 외곽에서 중심까지 옮겨 오도록 하는 전체 과정이다. 자신들이 매우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교회 신자들은 사실 교회 내부 사람들에게만 친절하다. 많은 교회는 처음 온 사람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비밀스러운 문지기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누구를 공동체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06 둘씩 짝지어」중에서
지역교회, 카페교회, 대성당, 셀 교회, 학교교회, 젊은이로 구성된 회중 등 우리는 공동체가 되어가는 순례를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삶을 공유하는 일이며, 삶을 공유하는 일은 전적으로 실천과 맞닿아있다. 우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근육과 힘줄, 세포 하나하나를 움직여야 한다. 영혼만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요구하는 일이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사용해 사랑하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낼 수 있다면 공동체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치유, 세상을 풍성하게 먹이신 기적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06 둘씩 짝지어」중에서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를 공표하는 것, 말씀을 소리 내어 말하고 몸을 움직여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은 선교의 순례가 이루려는 목적이다. 메신저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바로 그 가운데 있고, 메신저는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 안에서 적절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전달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치유, 삶의 회복을 포함한다. 버림받은 사람이 돌아오고, 마귀를 내쫓는 일이다. (마태 10:7, 8) 이는 개인만이 아닌 전체 공동체가 변화되는 능력이다. 전달해야 할 메시지의 특성상, 그 말의 시작과 목적상, 그 말과 그 말을 선포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선교적인 신뢰가 생기게 된다.
---「08 메시지와 메신저」중에서
많은 그리스도교인은 사회 복음과 개인의 영적 복음이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뉜 접근 방법을 가지고는 우리가 그렇게 열망하는 치유를 만나기 어렵다. 생태계, 사회, 개인, 감정과 심리적인 모든 치유는 영적인 치유와 회복과 함께 엮인다. 둘 중 하나만 택하고, 하나는 버려야 하는 사회 복음과 영적 복음이란 것은 없다. 그런 식으로 창조 세계의 생명을 바라보는 것은 창조 질서의 분열을 더 심각하게 만들며, 산산이 깨뜨려버린다. 그러나 구원(세계의 구원)은 전체의 회복, 하나로 통합되는 일과 관련이 있다.
---「09 세상의 슬픔을 치유하라」중에서
선교를 이루는 영성은 이 세계에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발 담그고 있는 세계의 인간 관계망에 깊이 엮여있다.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 세상의 관계들에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더 분명히 다가갈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선교사들을 지탱할 평화의 사람들로 가득 찬 공동체여야 한다. 선교사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세상의 어떠한 억압에도 저항하며, 주는 것만큼 받는 일에도 열려있어야 한다. 선교적인 공동체는 이러한 역할을 통해 자신의 깊이와 훌륭함을 드러낸다. “그때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 (요한 4:7)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도움을 받으셨다. 서로에게 기대는 이 관계는 진정한 만남과 대화를 위한 기초다.
---「05 순례를 위해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