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차 이야기는 나의 피란민 생활, 떠돌이 나그네 인생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제 죽기 전에 평양에 우리 집 할머니와 아들, 손주, 며느리 모두 함께 기차를 타고 가서, 6·25 전쟁 때 반공 목사로 순교한 아버지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고향 땅 강계까지 다녀와야겠다는 희망으로, 평생의 꿈을 생시에 이룩해야겠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이 이야기, 기차길 이야기, 나그네 인생길 이야기, 이제 전쟁과 침략의 기차길이 아니라, 평화의 기차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늙은이의 꿈이 살아생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아들,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은 이 꿈을 이루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 p.9
아버지는 기독교인으로서 일본 군대 귀신들을 모셨다는 신사 앞에 가서 절하고 손뼉 치는 해괴한 짓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 매도 많이 맞고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기독교인은 절대로 우상숭배를 하면 안 된다는 종교적인 이유를 대면서 끝까지 저항하셨다. 아버지는 종교적인 이유만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한국 민족과 한국 땅을 집어삼킨 일본 군대 귀신 앞에 절할 수 있느냐? 민족정신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신사참배 거부는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 p.17~18
멀고 먼 여행을 위해선 기차가 있고, 만주 각지에 부설된 철도가 고마웠다. 제국주의 억압과 착취와 수탈에 못 이겨 고향을 버려야 했던 식민지 백성에게 그나마 기차가 있고 철도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고맙기까지 했다.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자기네 목적을 위해서 부설한 철도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는 신세는 결코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구슬픈 아이러니다.
--- p.30~31
나는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집 안 마루를 뜯고 땅을 파고 숨어 있었지만, 결국 끌려가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신체검사를 하는 인민군 군의관의 진단이 나의 심각한 기관지염으로 인해 군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체검사 불합격증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체검사장 마당에서 내 바로 밑의 동생과 마주쳤다. 전쟁이 터지자 시골에 숨어 있던 동생이 끌려온 것이었다. 동생과 나는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헤어진 지 어언 70년이 되어오는데 우리는 아직 서로 소식을 모르고 있다.
--- p.61~62
화물차 꼭대기에 기어올라 가 그 많은 어른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린아이들 틈에 끼어 앉아 무엇이든 붙들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초겨울의 밤바람은 살을 에고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과 졸음을 견디지 못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달리는 화물차 꼭대기에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통곡 소리와 기차 달리는 소리는 전쟁의 비극을 더욱 아프게 했다.
--- p.64
기차라는 것이, 타기만 하면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가슴과 머리에 떠올리게 하고, 그러면서도 달리는 기차 소리와 함께 다음 정거장,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 내가 만나게 될 사람, 그리고 내 인생, 내 장래와 미래, 내가 알 수 없는 내일을 생각하게 한다. 참으로 기차 여행이란, 기차를 타고 달린다는 것이 바로 내 인생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 p.83
혼슈의 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에 갈 때는 급행열차를 타지 않고, 모든 역을 거쳐 달리는 완행 보통열차를 타고, 일본 동북부의 풍경을 감상하고 즐기면서 기차 여행을 했다. 아내가 일본 기차 여행에서 제일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기차 안에서 도시락 판매원이 “벤또오, 벤또오” 하고 소리 지르며 파는 도시락이었다. 세계 최고라고 ‘찬양’하면서 즐겼다.
--- p.114
홍콩에서 중국으로 국경을 넘을 때 우리는 여권을 제시하고 입국 허락을 받아야 했다. 홍콩이 중국에 1997년에 반환되어 ‘1국가 2체제’의 묘한 관계를 가졌는데, 홍콩에서 중국 영토로 왕래할 때도 외국 드나들듯이 해야만 하는 이상한 상태였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연방제’로 통일이 되면, 우리가 평양으로 여행할 때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 p.125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잠시 왔다 가지만, 이제 곧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는 서울에서 우리 집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다 함께 기차 타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여러분과 함께 주일예배 드리러 오겠습니다.” 온 교인과 나는 함께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 p.132
2018년 1월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와 함께 평화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9월에는 남북 정상들이 평양에서 만나 끊어진 경의선과 경원선을 연결하고 동해안 철도도 개통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내외는 6월 12일 북한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남쪽 나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 우리의 결혼 54주년 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새로 부설된 KTX 고속철 기차를 탔다.
--- p.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