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엌의 타일 바닥에 앉아, 테두리에 남색 덩굴들이 그려진 도자기 그릇에 할머니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두 무더기를 뜨시는 걸 지켜보았어요. 할머니는 찻주전자를 쥐고 밥 위에 재스민 차를 부으셨는데, 연한 호박색 액체 안에 밥 알 몇 개가 떠오를 만큼만 부으셨죠. 우리는 바닥에 앉아 향긋한 김이 나는 그릇을 전달했어요. (……) “진짜 농부의 음식이지.” 할머니는 활짝 웃으셨어요. “이게 우리의 즉석요리란다, 리틀독. 이게 우리의 맥도널드야!” 할머니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커다랗게 방귀를 뀌셨어요. 저도 할머니를 따라 한 방 뀐 다음, 우린 함께 눈을 감고 웃었죠. 그러다 할머니는 멈추셨어요. “마저 먹어라.” 고갯짓으로 그릇을 가리키셨어요. “우리가 남긴 밥알 하나가 지옥에서 먹게 될 구더기 한 마리야.” 할머니는 손목에서 고무줄을 빼 머리를 동그랗게 묶으셨어요.
--- p.36
“영어 좀 해봐.” 노란 바가지 머리를 한 애가 그렇게 말했어요. 늘어진 턱살이 홍조를 띤 채 잔물결 치고 있었죠. (……)
“야.” 턱살 녀석이 몸을 기대더니 제 뺨 옆에 시큼한 입을 들이밀었어요. “말해본 적 없어? 영어 못해?” 그 애는 제 어깨를 움켜쥐더니 자기를 보라며 돌려세웠어요. “내가 얘기를 할 땐, 날 보란 말이야.” (……)
바깥에는, 더러운 돈다발처럼 두툼하고 축축한 낙엽들이 창을 가로질러 떨어지고 있었어요.
--- p.44
저는 그 아이, 저보다 머리 하나가 큰 그 아이를 올려다보았어요. 살짝 젖혀 쓴 군용 철모 밑으로 보이는 섬세한 골격의 얼굴에는 흙이 묻어 있었고, 왠지 모를 미소는, 마치 란 할머니의 이야기 한 편에서 제가 속한 시간대로 방금 걸어 나온 것 같았어요.
--- p.139
도시의 세세한 것들을 뒤덮은 눈처럼, 사람들은 우리라는 사건이 일어난 적 없다고, 우리의 생존이 신화였다고 말할 테죠. 그러나 그들은 틀렸어요. 엄마와 저, 우리는 진짜였지요.
--- p.276
“야.” 그 애가 반쯤 자며 물었어요. “나를 만나기 전에 넌 뭐였지?”
“내 생각엔,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 같아.”
잠시 침묵.
“그럼 지금은 뭔데?” 그 애가 잦아드는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저는 잠깐 생각했고요. “물.”
“꺼져.” 그 애가 주먹으로 제 팔을 쳤어요. “그럼 자라, 리틀독.” 그러더니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그 애의 속눈썹들. 어쩌면 그것들이 생각하는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 p.338
저는 엄마가 윤회를 믿으신다는 것을 알아요. 저 역시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짜이기를 바라고요. 왜냐하면, 그렇다면 아마 엄마는 다음 생에 이곳으로 다시 오실 테니까요. 엄마는 아마 여자아이로 태어나 이름은 또다시 로즈일 것이고, 전쟁이 건드리지 않은 나라에서 베갯머리 이야기를 읽어줄 부모와 책으로 둘러싸인 방을 갖게 되실 거예요. 아마도 그때, 그 삶과 어느 미래에 이 책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알게 되시겠죠. 그리고 엄마는 기억해내실 거예요. 아마도.
--- 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