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미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수준은 1978년의 수준과 비슷합니다. 3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실질임금이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역사에서 상전벽해와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반면에 익히 알려져 있듯이 지난 30년 동안 노동자의 생산성은 크게 올랐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노동자가 전과 동일한 시간을 일한다고 할 때 기업주를 위해 더 많이 생산했지만, 기업주는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pp.32~33
현재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2,000만이 넘는 미국인에게 자유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은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양질의 일자리를 갖는 자유를 부정당하기만 했어요. 2,000만 이상의 미국인이 하나같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 별안간 일자리를 잃었거나 원하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처지에 내몰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를 분배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 p.42
기업주는 나날이 늘어나는 이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노동자에게 고맙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과는 180도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일종의 민속신화 같은 것을 퍼뜨렸어요. CEO의 천재적인 경영 능력 덕분에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누린다고 주구장창 떠들어댔습니다.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 GE의 잭 웰치Jack Welch 등 한 가닥 하는 CEO를 신화 속 영웅으로 만들었어요. 이들이 신비롭고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생산성을 끌어올린 덕에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고 미화하는 책이 쏟아져 나와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습니다. 노동자가 아닌 CEO를 생산성 증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CEO의 경영 능력을 일방적으로 찬양한 책을 읽기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노동자의 임금과 생산성의 추이를 분석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기업의 이익이라는 게 어디서 생기는지 뻔히 알고 있으니까요. 경영 신화라는 것은 한마디로 노동자의 등골을 빼먹은 결과입니다. 거기에는 신비로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적인 CEO가 된 게 결코 아닙니다. --- p.49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왜 자본주의는 부자만을 위해 작동하는가를 놓고 근본적으로 따져보지 않은 채 굴러가는 대로 내버려둘 경우 이번의 경제위기는 정말 오래갈지 모릅니다. 일본이 지난 10년, 아니 20년 이상을 시달려온 불황이 미국에서도 재연될 공산이 커요. 현재의 자본주의를 확 바꿔놓든지, 그러기 싫다면 좀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다른 어떤 경제 시스템으로 옮겨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교육, 의료, 교통 등 기본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한다면 경제 시스템부터 바꿔야 합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해야만 해요. --- p.55
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도 고장 난 냉장고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때 올바른 현실 인식을 가로막는 걸림돌 하나가 구태의연한 냉전의식입니다. 낡은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본주의가 완전히 고장 났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선뜻 내뱉지 못하는 거지요. 물론 사회 전체를 보면 희망적인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성숙해진 편입니다. 예컨대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고장 났음을 인정할 분위기가 상당히 많이 싹텄어요. 현재의 정치 시스템 갖고는 경제 시스템의 고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밝히거나 수리할 수단은 무엇인지 찾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인 만큼 자본주의에 관한 대대적인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자본주의의 장점과 약점, 자본주의가 얼마만큼 바뀌어야 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욕심을 좀 내서 자본주의가 고장 난 냉장고와 같은 상태에 있다면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 pp.68~69
기업은 옛날부터 노동자가 절실히 원하고 필요로 하는 임금이 늘어나는 것을 저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노동자에게 거창한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버스 운전기사는 운송 엔지니어가 되었고 쓰레기 청소원은 폐기물 관리자가 되었지요. 그 예는 이루 헤아리기 힘듭니다. 그렇습니다. 저임금을 지급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월마트 역시 노동자에게 근사한 칭호를 붙여주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노동자에게 당신은 동료다,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꽤 오래전부터 몇몇 미국 기업, 특히 은행은 수많은 중간관리자에게 전부 ‘부사장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붙여주고 있어요. 직함만 그렇지 실제로는 과장급도 안 되는 말단관리자인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 p.135~136
| 워싱턴 정가의 로비스트인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가 어찌나 극성스럽게 활동했는지 마침내 세금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으니까요. 예컨대 상속세는 현재 사망세로 불립니다.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이 말을 한다면, 죽을 때도 마음 편하게 못 죽고 세금을 내야 하는구나 하며 분개할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나름 영리한 말장난을 하는 거지요. 이와 관련하여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대다수 미국인의 이익을 대변할 ‘용어’를 만드는 겁니다. 이를테면 재산세라는 말 대신에 특권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봅니다. 특권세의 과세 대상을 넓히자, 이렇게 주장하는 거지요. 그래서 특권세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면 도대체 누구의 특권에 세금을 매기는 거냐고 궁금해 할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그럴 때마다 부유한 대학, 주식과 채권 포트폴리오에 거액을 투자한 부자가 재산세를 면제받아서 누리는 일종의 ‘특권’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설득력이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합니다. --- p.157
| 기업을 점령하자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기업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미국인이 지지하고 옹호해야 하는 민주적 가치가 기업에서 실현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거지요. 생각해봅시다. 기업이야말로 우리 대부분이 성인이 된 이후 많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는 직장 아닌가요? 수많은 노동자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직장인 기업에서 주 5일 동안 근무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존중해야 할 가치라면 다름 아닌 기업, 즉 일하는 직장으로서의 기업에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범위를 더 넓혀 굳이 기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하는 모든 곳, 예컨대 정부 사무실, 공장, 상점 등에서 민주주의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미국인의 다수를 점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이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사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노동자이므로, 민주적 가치를 존중한다면 노동자가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어떤 기술로 생산해야 하는가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그 기술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노동자이므로, 민주적 가치를 존중한다면 노동자가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화학물질의 독성 등에 관해 어떤 의사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노동자는 그 결과를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점에서 노동자는 이 모든 것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합니다. 서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열대여섯 명 남짓한 이사나 1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대주주가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독재입니다. 금권 지배라고도 하지요. 옛날의 왕국이 그렇게 운영되었지요.우리가 독재, 금권 지배에 반대한다면 경제를 점령하고 자본주의에 도전하며 기업을 민주화해야 합니다.
--- pp.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