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미있겠는데요? 잘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라야마 부부를 태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층수를 표시하는 램프의 숫자가 바뀌기 시작하자 모로타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히라야마 사장이네요. 대담무쌍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M&A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한자와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도쿄센트럴증권은 도쿄중앙은행의 자회사로, 모회사가 은행이라는 점은 좋지만 업계 경력이 짧아서 M&A 실적은 별로 없었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더욱 그러해서, 자문사로서 고액 수수료를 받을 만한 노하우가 있느냐 하면, 솔직히 말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모로타는 눈에 불을 켜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부장님, 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아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자문사 업무는 거액의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실적이 밑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회사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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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하물며 회사가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준다고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거품 세대 사람들은 회사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잃어버린 세대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지켜줄 것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납니다.”
모리야마는 어두컴컴한 술집 벽의 지저분한 얼룩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오니시에게 했다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문 같았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오니시가 수긍하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자와 부장이든 모로타 차장이든 얼간이 미키든, 개인적인 능력은 우리보다 한참 떨어지는데, 회사 조직이라는 시스템 덕분에 상사가 되어 우리에게 지시를 내리지. 그들에게 있는 건 그것뿐이야. 그들에게서 회사의 직책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그들이 회사에 죽치고 있는 한, 진정한 실력으로 승부하는 회사 조직은 아득한 꿈일 뿐이야.”
오니시는 반정부 혁명의 투사처럼 강력하게 말했다.
“그때까지 능력도 없는 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들의 능력에 걸맞지 않는 인건비를 계속 주면서 경쟁사와 치열하게 싸워야 해. 이런 사정은 어느 회사나 똑같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거품 세대는 회사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바야흐로 세상을 갉아먹는 밥벌레 세대라고 할 수 있어. 아주 심각한 사회문제지.”
결국 앞으로도 계속 손해를 보는 쪽은 우리 잃어버린 세대다. 모리야마는 그렇게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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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대기발령이 날지도 몰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새삼 물을 것까지도 없다. 새로운 파견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은행과 끈이 이어져 있는 게 아니라 편도 티켓이리라. 은행원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신상필벌. 일에서 실수가 발생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오카 사장님의 신조거든. 이번 일은 자네의 관리 미숙이잖나?”
‘신조 좋아하시네’라는 대꾸를 집어삼키고 한자와는 요코야마를 노려보았다. 오카에게 신조라고 할 만한 신념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있다면 오직 자신을 자회사로 쫓아낸 은행에 되갚아주겠다는 비굴한 오기뿐이다.
“그래서요?”
“대기발령이 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네 의견을 들어두려고.”
한자와는 코웃음 쳤다.
“제 의견이 무슨 필요가 있지요? 대기발령을 거절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실 거잖습니까?”
“잘 아는군.”
이 녀석은 바보인가. 하지만 한자와는 그 생각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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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사과해야 합니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마십시오!”
“모로타 차장, 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안 그러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모로타가 돌연 태도를 바꾸더니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재미있군요. 부장님, 나는 이미 은행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모로타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왜 떠나는 사람에게 괜한 트집을 잡는 거죠?”
모로타는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부하직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잘 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과야. 그리고 자네들은 은행에 졌고. 왜 졌는지, 이제 와서 파헤쳐봐야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좀 더 겸손해지는 게 어때?”
한자와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게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 당신이 한 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거야!”
--- p.188~189
“그런 논리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은행원의 특기니까.”
“또 조직의 논리인가요?”
모리야마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자네는 그런 걸 싫어하는군.”
한자와가 그렇게 말하자 모리야마는 확실하게 대답했다.
“네, 싫어합니다. 저희는 여태껏 그런 데 휘둘려온 세대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조직에도 휘둘리고 세상에도 휘둘리고.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과 정면으로 싸워야 할 때도 있어. 힘 앞에 굴복하기만 하는 건 시시하지 않나? 조직의 논리쯤이야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이 세상에 압력이 없는 일은 없어. 일뿐만 아니라 뭐든지 마찬가지지. 폭풍우가 있으면 가뭄도 있어.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걸 극복하는 힘이 있어야 해. 모리야마, 세상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물러서지 말고 철저하게 싸워. 나도 그렇게 해왔으니까.”
마시던 맥주잔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모리야마는 잠시 멍한 얼굴로 한자와를 보았다.
그리고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움켜쥔 맥주잔을 소리가 날 만큼 힘차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싸우겠습니다.”
--- p.256~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