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사람은 마치 농부처럼 씨앗이 싹을 틔워 정신이 무르익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명상이란 손을 놓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명상은 현재를 온전히 의식하면서 순수한 정신의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모든 내면의 대화를 멈춰야 한다. 기쁨을 의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열매이다. 실제로 이 배경막에 도달했을 때 나는 평정을 되찾는다. 여러분도 이 같은 체험을 해볼 수 있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냥 앉아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몸과 호흡을 느낀 다음, 배경에 자리를 잡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의식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그저 지나가고 말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렇듯 ‘놓아버림’은 명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체험이다. ---「행복을 위한 명상은 어디에서, 언제, 얼마 동안, 어떻게, 왜」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누가 고통스러워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파탄잘리의 말을 들어보자.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그 원인을 찾아 거슬러 가면 된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 어떤 대상, 욕망, 육체와 동일시된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은 이 모든 것 이상이며, 바로 그 이상이 당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라고 묻지 말고 행동하기 위해 행동하라. 행동,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욕망하지 마라’ 이것이 행복의 비밀이다. 생계를 위해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버스를 향해 달릴 때보다 그저 달리는 것이 좋아 숲 속을 달릴 때 더 행복하지 않던가? 한낱 신기루와 같은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 자체를 위해 행동하라. 그러면 그 어떠한 행위도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승려인 틱낫한(Thich Nhat Hanh, 베트남 출신의 스님이자 시인. 평화운동가로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생불로 꼽히는 영적 스승)도 같은 점을 강조한다. “설거지를 위해 설거지를 하라. 내가 지금 무엇을 실현하고 있는지를 온전히 인식하면서 행동하라.” ---「나는 누구인가?’라고 되묻고 있나?」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점점 자기 자신을 명확히 식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신의 자아는 그 기원을 잊은 채 며칠 낮과 밤을 지내는 동안 무수한 소자아로 확대되고 있다. 구매자, 애인, 걷는 사람, 노동자, 몽상가, 초췌한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등등. 그러나 질문을 던지는 관찰자, 즉 또 하나의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당신이 화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이렇게 질문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이 순간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자신이 우습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관찰자 의식을 키우면 유머 감각을 기를 수 있다. 유머 감각은 우리가 자주 소홀히 하는 정신적 자질이다. ---「나의 욕망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건가?」
아주 보잘 것 없는 수준이기는 하겠지만 여러분도 깊은 명상을 통해 이렇게 세상을 미리 맛보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의식의 근원 안으로 빠져든 후 외부를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세계는 더욱 투명하게 빛나지 않겠는가? 결과적으로 당신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외부 세계의 구조를 혁신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을 보다 나은 존재로 바꿀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인간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먹구름으로 덮여 있는 내면의 풍경을 밝게 비춤으로써, 세상을 더욱 인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타인은 나를 나은 존재로 만든다?」
자신의 입장, 즉 자기 자신에 의해 눈이 멀어 있는 이러한 상황을 당신은 자주 경험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올 것인가?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프랑스의 사상가. 노동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공장으로 들어가서 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기도 하였다)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자신의 정신을 비워 다른 사람이 그 안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주의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정신이 근심과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당신은 그곳에서 타인을 절대 맞이할 수 없다. ---「타인은 나를 나은 존재로 만든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가?
그럼 두 개의 가방을 들고 여행하라.
하나는 주기 위한 가방이고,
다른 하나는 받기 위한 가방이다.”
이러한 여행이 바로 당신의 삶이다. 행복해지려면 “이건 내 거야”라고 부르짖는 에고에 신경 쓰지 말자. 꽉 찬 가방은 남을 위한 것이고, 빈 가방은 남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괴테가 말하는 행복의 비밀이다. ---「남의 입장에서 보기」
몸은 움직여야 한다. 명상을 할 때 어떻게든 자세를 유지하려고 몇 분 동안 억지로 부동자세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 먼저 아주 간단하게 당신의 움직임을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걷고 있을 때, 아니면 다른 활동을 하고 있을 때라도 좋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내부의 움직임을 체험해보자. 그러면 몸짓이 한결 유연해질 것이다. 우리는 정신 수련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몸을 무슨 기계 다루듯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몸을 의식하는 것은 마음의 잡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의무적인 삶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철학자 파스칼은 이와 같은 언급을 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이 단 한 가지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분주한 생활은 정신을 분산시키고 힘을 고갈시킨다. 묵상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긴장 속에 이리저리로 흘러가는 자신을 보라.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조지 구르예프(Georges Gurdjieff)는 대부분의 인간을 자신이 진정으로 선택하지도 않은 삶의 소용돌이에 갇힌 ‘인간 기계’라고 표현했다. 그는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으로 ‘멈춤’이라는 유명한 훈련을 제안한다. ---「의무적인 삶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감각에 활기를 불어넣는 자연의 혜택을 완전히 누릴 수 있을까? 풍경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잊고, 모든 근심을 버리고, 당신과 주변 세상 사이에 놓인 장막을 한쪽으로 치워야 한다. 주체는 모든 감각을 열었을 때 비로소 대상 속으로 침잠할 수 있다. 내면의 모든 언어, 모든 사고, 모든 판단을 내려놓을 때 마음은 드디어 소란한 입을 다문다. ---「소란한 마음을 멈추게 하려면?」
돈 걱정, 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수많은 걱정거리로 마음이 흔들릴 때 당신의 정신은 온갖 퇴적물들로 흐려진다. 당신은 온갖 먼지가 달라붙은 숯인 것이다!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명상을 통해 의식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면, 당신 내면의 하늘은 점차 밝아지고 당신은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다.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차분하게 관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당신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동일한 산물이다. 모든 것은 정신이다. 단지 서로 다른 파장에서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좋은 파장을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행복에 이르는 명상은 어떻게 하나?」
마틴 하이데거는 한 문장으로 분명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멈추어 서는 것으로 충분하다.” 멈추어 서서 우리의 의식 안에 흐르는 시간의 강을 지켜보는 것, 이것이 명상이라 는 것이다. 고통이나 덧없는 일상의 행복들은 지나가 버리지만, 구름 위의 태양처럼 기쁨은 남는다. 현재에 대한 온전한 의식 안에, 나와 타인이 함께 존재하는 이 상황 안에 진정한 기쁨이 머문다. 삶과 생각의 폭주를 멈추고, 의식의 온전한 휴식 시간을 가능한 한 자주 갖도록 하자. 당신의 몸에서 빛나는 삶을 향해, 그리고 밖에 있는 타인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열어보자.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보자. 정신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순간의 영원성 안에서, 당신 안에서, 나와 맞닿은 타인 안에서 정신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정신이 그저 존재하도록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이것이 기쁨에 이르는 비밀이다.
---「진정한 기쁨에 이르는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