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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의 아카시아

십이월의 아카시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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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1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04g | 135*194*23mm
ISBN13 9791196283049
ISBN10 11962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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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사는 앞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는데 침묵을 깨고 나올 의사의 말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실은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유방암입니다.”
--- p.11

나는 유난히 겨울을 싫어한다.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그 계절이 데려갔다.
아버지를 할머니를 할아버지를 가장 친했던 친구를 데려가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마저도 그 계절에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갔다. 아마도 내 엄마마저도 겨울이 가져갔을 것이다. 메마른 바람이 부는 겨울은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간 상실의 계절이며 슬픔과 아픔의 계절이다.
매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겨울은 혹한의 시린 바람을 뼛속까지 불어넣어 움츠러들게 하고, 깊은 슬픔이 되어 몸도 마음도 아프게 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계절이지만 누구에게 보다 더욱 시리고 아프게 나를 찾아오는 계절이다.
--- p.130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그 누군가 심어 놓은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를 먹으며 죽음이 나를 데려가면 아카시아 아래 묻어 달라고 이야기했다. 아카시아를 무덤가에 심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근거 없는 미신 같은 말은 베어 내도 자라나고 자라나는 아카시아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카시아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그 끈질긴 생명력을 남모르게 동경했던 까닭에 있었던 것일까? 끈질긴 생명력이라도 있으면 다시는 무엇을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나무가 되고 싶다.
한 곳에 깊이 뿌리내리고 나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르는 나무를 보면서 그처럼 되고 싶은 오래된 염원을 갖게 됐다.
뿌리를 통해 땅을 사랑하고, 가지를 통해 하늘을 사랑하고, 바람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애초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면 상실도 결핍도 없을 것이다. 애련에 물들지 않고, 애환이 서리지 않고, 꿈꾸지도 노래하지도 않을 것이다.
비에 깎이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웃고 울지도 않고, 안으로 삼키고 고요하게 침묵하면서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바람이 가져다주는 세상의 이야기에 그저 귀 기울이는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의 가지를 뻗어 하늘에 빛나고 있는 나의 별을 사랑하면서 바람에게 들은 세상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실려 보내고 싶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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