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 한없이 매료되었었다. 이는 단지 문학 텍스트 속에서 너무나 평범한 우리네 삶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다운 벗과 더불어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한껏 여유를 부리던 양반들과는 달리, 너무도 퍅퍅한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네들의 ‘열정’을 자간마다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열정의 중심엔 바로, ‘웃음’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설시조를 사설시조답게 만드는 문학적 속성소를 밝혀내기 위해 이 갈래가 유발하는 웃음에 주목하게 되었고, 철학과 문학 비평 경향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방향에서 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사설시조 웃음의 미학적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나왔고, 그것이 이 책의 1부를 구성하고 있다. 1부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사설시조의 웃음 해명을 위한 단서로서, 관련 연구사 검토, 웃음 유발 사설시조 찾기, 웃음 미학과 담론과의 상관성, 웃음의 개념과 문예 미학적 배경, 미적 범주와 한국 문학의 웃음 체계 등을 다루고 있다. 새로운 이론이 중심이 된 만큼, 독자에 따라서는 이론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2장은 웃음 생성 원리와 이에 따른 각 유형별 특징들을 실제 작품 분석을 통해 밝힌 부분으로서 사설시조의 웃음이 총망라 되어 있으며, 3장은 사설시조의 웃음 유형이 이 갈래의 담론 유형과 표리 관계임을 밝혀냄으로써 ‘웃음 미학’과 ‘담론’의 상관성을 증명해낸 부분이다. 4장은 연행 환경, 주체-대 주체의 문제 속에서 사설시조의 웃음 미학을 장르적 성격과 함께 오롯이 드러낸 부분이며, 5장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총정리 한 부분이다. 대체로 학위논문의 기본 논지는 그대로이지만, 거친 표현이나 오, 탈자 등 분명한 오류는 눈에 띄는 대로 바로 잡았다.
한편 2부는 ‘논의의 주변[補論]’으로서 사설시조와 관련한 조각 논의들이다. 총 5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모두 학계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게재된 논문들인데도 다시 보니 오, 탈자를 비롯해 미진한 부분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 읽는 과정에서 수정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의식이 싹 터 새로운 논의거리만 잔뜩 아이디어 노트에 적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모두다 사설시조와 만나는 한 과정이라 생각하니 무척 즐거웠다. 실린 순서는 어떤 특정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 끌리는 주제에 따라 맘대로 골라 읽어도 되지만, 1장과 4장만큼은 1부에서 살펴본 이론적 논의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다소 읽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1장과 4장은 각각 ‘웃음’과 ‘담론’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겠는데, 모두 1부의 논의를 평시조까지 확장해 봄으로써 그 이론적 검증을 시도해 본 결과물들이다. 즉 1장은 1부에서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간, 두 가지 웃음 이론(우월론, 불일치론)에 따른 한국 시가의 웃음 유형을 보다 깊이 살펴보고 이를 평시조에까지 확장시켜 봄으로써 거시적으로 한국 시가의 웃음 유형과 그 미학적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며, 4장은 담론 방식의 측면에서 평시조와의 同異를 밝혀보고 이를 통한 평시조-사설시조 간의 세계관적 차이와 그로 인한 시학적 함의의 차별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장은 1부와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때론 과감히 생략하였고(연구사 부분), 때론 논문의 이해를 위해 그대로 두기도 했다.
한편 5장은 갈래별 간 웃음에 대한 비교 양상을 펼친 논의이다. 특히 이 논의는 ‘웃음= 조선 후기의 산물’인양 인식되어 온 저간의 사정에 대한 반성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 후기 이전의 시가 갈래들 중 먼저 고려속요를 주목하고, 이 갈래가 유발하는 웃음이 사설시조와는 어떤 같고 다름이 있는가를 여러 측면에서 살펴 본 글이다. 이 논의는 지금까지 고려속요에서 웃음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 외에도, 미학적인 측면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 문학 간에 연속성을 발견하려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제목 상으로만 본다면 전체적으로 이질감을 살짝 안겨주기도 하지만, 사설시조의 웃음 논의 속에서 함께 다루어질 때 더욱 그 빛을 발할 성싶어 함께 실어두었다.
한편, 2장과 3장은 사설시조 자체 내에서 더욱 논의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이슈화시켜 본 것들로, 2장이 ‘웃음’ 논의 중에서도 슬픈 웃음(희비극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담론’ 중에서도 ‘일상성 담론’이라는 차원의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모두 현재 사설시조 연구에서 최대 난제인 ‘근대(성)’의 단초를 밝혀내는 작업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인다.
3부는 논의대상이 된 작품을 포함해 사설시조 전체 작품 수(399수)를 모아 놓은 것으로, 일종의 자료집적 성격을 띤다. 지금까지 주목할 만한 시조 관련 자료집이 더러더러 제출되었지만 정작 ‘사설시조집’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손꼽아 몇 안 되고, 연구자들마다 ‘사설시조’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해당 편수도 각양각색인 것이 사실이다. 이에 사설시조 연구자들이 자료집 선정에서부터 연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해서, 일단 아쉬운 대로 『정본 시조대전』(심재완 편)을 대상으로, 필자가 설정한 사설시조 개념에 따라 해당 작품을 발췌해 놓기로 한 것이 3부의 작품들이다. 발췌역 과정에서 의심나는 부분이 있거나 재차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나온 시조자료집을 비롯해, 실제 가집 모두를 한데 모아 놓고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그간 先學들의 노고에 새삼 숙연해지곤 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첫 책에서는 발췌역을 하면서 확인 과정과 조금 다듬고 덧붙이는 작업에 그쳤지만, 언젠가 공부가 무르익어 학문의 깊은 향기가 절로 배어나올 때 즈음, 보다 멋진 자료집 관련 작업을 한번 해 보리라고 다짐해 본다.
--- 들어가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