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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문학동네시인선-12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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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66g | 130*224*6mm
ISBN13 9788954659987
ISBN10 8954659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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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가 시궁창 같다는 사람이 있었다

정직하게 걸을수록 안전하지 않다

고운 잎이 벌레 먹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

한때 순정을 이지메하던 병동에서 나는 인생 수업을 마쳤다

오늘도 젖은 물방울들이 서로 부서지는 속을 나는 흐르고 있다

2
이사회가 있었던 다음날
영근 형이 전화해서 마구 욕질을 해대었다
속에서 짜증이 올라 불끈 받아치기 직전
한없이 서러운 울음을 쏟아낸다

그 자식
네 끼는 굶은 얼굴이드라 면도조차 안 하고
그럴 거면 명편(名篇)이라도 좀 내놓지
내가 1980년대의 종점인 줄 알았는데 남일이가 종점이었어

갑자기 무장해제되어 얌전하게 꿇어버렸다

형, 울지 좀 마라

3
멀리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제 무덤을 파는 노인처럼 보였다

쉬는 날 마포 삼층에 앉아 담뱃불을 붙일 때면
연기 같은 영혼 천삼백 개가 파는 천삼백 개의 무덤이 보인다

나도 여기 서서 내 무덤을 판다
--- 「나는 여기 서서 내 무덤을 판다」 중에서

나는 모르지
고향집 들판 어스름 속을
혼자 떠난 황새
그것이 너인지 아닌지

발 하나 옮길 때 위태로이 구부리던
줄을 타다 몇 번 쓰러질 뻔했던
어릴 때 곡마단에서
외줄 타던 어머니가 도망쳐
온종일 분장실에 숨어서 울던
그 한쪽 발이 네 건지 아닌지

외롭고 막막할 때 그 애가 되어
하오의 무대를 가로지른 외줄처럼
가지만 올 길은 없는 거라 믿으면서
아 삶이라는 게 정말
가기 위해 있는 건지 닿기 위해 있는 건지
--- 「꼬마 광대에 대한 기억」 중에서

밀래미 사람들은 세 가지 말을 하지 않아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돈이 필요해요. 그런 말 하는 자를 약장수라 했어요. 사람의 귀만 보면 나팔을 불고 손뼉을 치는
--- 「사라진 마을에 대한 기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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