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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리뷰 총점8.3 리뷰 19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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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42g | 153*224*30mm
ISBN13 9788994054339
ISBN10 899405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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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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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순례 11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한 순간도 쉼 없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살아 있다. 부단히 움직임으로써 천지만물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세상 속으로 알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변화와 요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러기에 그 어떤 것도 예외 없이 모두 살아 있다. 대개 그 움직임 이 매우 희미하고 감춰져 있게 마련이어서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인식되거나 보이지 않기에 흔히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죽음의 상태로 치부되곤 하지만, 바로 그 속엔 결코 가시화할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 이 도사리고 있다. 가시적으로 한정 지워진 현상세계의 배후엔 자신들의 존재를 현시하고 증명하는 불가사의한 움직임만이 움직일 수 없는 불변의 진실로 자리하고 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이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여행’ 또는 ‘길’에 비유해보고 있다면, 필시 그 사람은 이미 어느 길을 가고 있는 자이다. 동시에 그는 목적지로 가는 걸음을 잠시 멈춘 채 중간 기착지에서 휴식하거나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지 묻는 자이다. 아니면 행여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남은 가야 할 길을 점검하는 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오면서 겪어내야 했던 일련의 사태와 경험들이 바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결국 길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방황하다 길에서 죽는 것이 인생이며, ‘길’을 통해 우리는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의 의미를 묻고 눈앞에 주어진 세계에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그런 면에서 “어쩌다가 집을 떠나”게 된 “나그네”의 음울한 여수나 고독한 여행자의 고립성이나 비연대성과 거리가 멀다. 또한 그것은 일정한 목적이나 목적지 없이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일종의 “떠돌이”로서 단지 혈연과 지연의 “집” 또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동경을 나타내는 것과도 무관하다. 살아 있는 한 “길” 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 ‘나’의 운명을 자각하고, 오히려 그 절망의 “길”을 “희망”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자의 존재론적 전향에 대한 예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흘러”간 과거와 흐르고 있거나 “흘러”올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정거장”에서 “나”에게 던지는 ‘충고’는, 다름 아닌 가장 고유하고 역동적인 “나”로 되돌아가려는 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너다 17
황지우

내가 먼저 대접 받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러나
하루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대안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고독이 사랑을 부른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거나 다가와도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 채워질 수 없는 부재가 고독을 낳고 사랑을 부른다. 제아무리 가깝거나 친밀하다고 해도 없앨 수 없는 거리 또는 부재가 낳은 것이 고독이자 사랑이다. 상대방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그리움이나 낯선 느낌은 원초적으로 하나 될 수 없는 너와 나의 거리감 때문이며,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고독을 낳는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을 제 것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화해 불가능한 고독과 사랑을 일란성 쌍생아로 만든다. 고독이 사랑을 낳고 또 사랑이 고독을 부르는 악순환(?)은, 서로가 완전한 합일이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필시 사랑에 빠진 자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의 질서에서 이탈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의 박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수록 더 간절하고 절실하게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이라는 선택지를 강요하는 게 피할 수 없는 “사랑”의 마력이다. 때로 우리가 생사를 건 새로운 사랑의 모험을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 논리나 어떤 제도적 장치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주 잠시나마 우리는 사랑의 힘에 의해 우주적 크기와 깊이로 진행되는 죽음과 부활의 존재론적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기에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방황하고 있으리라.


찬란
이병률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오랫동안 우린 ‘나’와 마주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의 감정을 품어 왔다. 지금 여기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이나 경험의 배후에 대한 궁금함이 호기심을 낳게 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직접 마주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공포가 두려운 감정으로 다가왔던 까닭이다. 도대체 그 무엇이 한도 끝도 없이 너른 벌판에 수도 없이 서로 다른 종류의 꽃들을 한날한시에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하는가.

도대체 그 무엇이 저 수많은 별들을 밤마다 반짝이게 하며, 또 우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그러한 물음과 의문이 우리로 하여금 이미 ‘나’와 마주한 세계의 신비함을 노래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때로 그 근원을 알 수 없이 엄습하는 그 어떤 서늘함이 우릴 불면의 밤으로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죽어 있는 듯한 “화분”에 돋아난 새싹을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해 밀어낸 사태로 보는 시적 사유 역 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한갓 “흙”조차 “감정”을 가진 인격체로 보는 시적 사유는, 단지 물활론적이고 생태주의 적인 관점 때문이 아니다. 우선 그것은 모든 자연 현상의 외부에 초월론적인 근거를 설정하는 서방적 세계관과 달리, 천지만물의 생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 다름 아닌 ‘기氣’라는 동방의 세계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그것은 궁극적으로 현세 부정의 신학보다 영원히 순환하는 자연성에 대한 순진무구한 긍정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사태조차 “찬란”하다고 노래하게 만든 힘은, 다름 아닌 온갖 생명현상에 대한 한없는 공감과 긍정의 태도에서 온다.


나무 흔들리는 소리
허수경

일테면 전파를 안아 세계의 소식을 듣는 것처럼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우리가 숲에서 들을 때

그 숲에서 죽은 새와 다람쥐가 이끼와 고사리 곁에서 썩고 그 곁으로
아주 작은 시내가 전파처럼 세계를 흐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 종으로 살아온 시간을 아쉬워하며 눈을 뜨고 다
시 세계를 보려 하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이 세계의 마지막인 양 귀를 부실 때

이 지구에 살던 사라진 종들이 사라진 시간을 살아갈 때 그때 다시 무
기를 들어 타인의 눈을 겨냥하는 많은 이 들의 가슴에도 나무 흔들리는
소리,

오 그 소리, 일월성신이 인간이라는 종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소리

흔히 인간을 ‘우주 진화의 꽃’이라고 한다. 창세기 이래 우주의 창조적 진화의 결정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의식’이 깨어난 것은, 그동안 거대한 침묵에 쌓여 있던 우주적 의식이 깨어난 대사건으로서 우주의 탄생을 알리 는 ‘빅뱅Big Bang’에 비견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우주 진화의 꽃’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현존하는 생명체 중에서 먹이사슬의 최 고 정점에 서 있는 인간이 여타의 생명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잘 활용해왔다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을 둘러싼 식물과 동물, 광물과 에너지 등을 포함한 우주가 현재의 인간을 꽃피우고 지탱하게 한 원동력 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미세한 전파나 파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살아 있는 나무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우주와의 교신을 시도하는 이들은 나무들을 우주와 교류하는 가장 좋은 수신기로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한 그루 나무가 발산하는 온갖 존재의 음성을 경험하고 사유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지속적으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일월성신”으로 대변되는 신성이 “인간이라는 종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천지자연에 깃들어 있는 불멸성을 획득하는 순간 이자, 실현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우주적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순간을 나타낸다. 특히 한낱 “나무”가 “흔들리”며 내는 “그 소리”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궁극적 실재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매우 희미하지만 마치 천둥처럼 다가오는 그 어떤 소리라 할 수 있다.


자화상
김 중

내 영혼에 집 짓고 사시는 병든 귀신들이여
완고한 마귀들이여, 요절한 조상들이여

일생의 고통이란 지나가는 바람처럼 헛되지만

모든 헛것들과 나 순한 마음으로 싸우고 있으니

내 앞에 이제 겸손하게들 나타나시지

가여운 원한과 노여운 원망일랑
내가 이제 풀어드리리

내 육신에 집 짓고 사시는 병든 귀신들이여
완고한 마귀들이여, 요절한 조상들이여

이제 그만들 퍼먹으시지, 거두시지 숟가락들을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미치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니, 행여
나 미치거나 죽으면 어디에 집 짓고 또 사는가?

뜨거운 목욕물에 머리를 박고
울음도 웃음도 없는 가쁜 숨을 달게 쉬며

물 위에 어른거리는 병든 너희들을 씻어준다
일그러진 저 얼굴들을 보라

오! 나의 자화상이여

어떤 이가 스스로 행복하거나 평안하다고 느낄 때 오히려 ‘나’는 없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지낸 시간이 별안간 낯설어지고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때 ‘나’는 비로소 ‘나’의 문제가 된다. 갑자기 들이닥친 생의 위기나 허무감이, 그 어떠한 존재들로 환원되거나 대체할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다가오는 ‘나’와 마주서게 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그것의 가치가 무엇인가 묻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고 유지케 했던 돈이나 명예, 가족이나 연인, 국가와 신마저도 그 의미를 상실한 채 더 이상 자신이 의지할 그 어떠한 존재자도 없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존재 의의를 캐물으며 새로운 ‘나’를 모색한다.

모든 자화상 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단지 한 개인이 지나온 삶의 기억일 수만은 없다. 제 안의 “헛것”들을 통해 참다운 “나”의 실재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이자 “나”의 정체성과 세계를 파악하는 한 방법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자아 수준에 머무는 자기상을 넘어 자신 밖의 세계와 진정한 합일을 모색하는 게 자화상쓰기의 본질이다. 한낱 지적이고 의식적인 구성물일 수도 있는 형식화되고 격식화된 헛된 ‘나’의 자아로부터 탈출하여 거짓 없고 거침없이 고백하고 발견하는 데 자화상 쓰기의 참된 의의가 있다.


배꼽을 위한 연가 5
김승희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여
당신이 평생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날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하나의 알이 새가 되기 위하여
껍질을 부수는 것이
죄일까요?
그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와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흔히 ‘여성 속의 남성’을 뜻하는 ‘아니무스’가 그중의 하나이다. ‘남성 속의 여성’을 뜻하는 ‘아니마’와 더불어 ‘아니무스’는, ‘자아’또는 ‘나’의 통제 밖에서 마치 독립된 인격체처럼 고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여성 안에 숨겨져 있는 ‘심혼’을 가리킨다.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이성’으로서 ‘남성적인 요소’가 바로 ‘아니무스’이며, 각기 여성의 무의식 속엔 그와 같은 남성적 속성의 내적 인격이 살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통념적이고 집단적인 여성 개념에 대응하는 무의식의 내적 인격 중의 하나인 ‘아니무스’의 존재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며 살아간다. 한 사회가 부여한 여성으로서 정체성에 자족하거나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아니무스’의 호소를 회피하거나 외면한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진 여성의 리비도는 거대한 무의식의 포로가 되고, 바로 그것이 그때까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아니무스의 존재를 활성화시킨다.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거대해진 아니무스는, 한 여성의 의식적 자아를 압도하여 결국 그녀의 전인격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한 여성이 자신의 아니무스를 창조적으로 자각하고 의식화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아니무스의 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 “애벌레가 나비”로 몸 바꾸는 것과 같은 고통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칠 때 아니무스는 위협이 아니라 창조의 힘이 된다. 하지만 지나친 억압이나 무관심으로 “우리”들이 그 무의식의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의식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자기 비하 내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한 여성의 내면에 내재한 ‘아니무스’의 요구들을 “각자가” 겸허히 “배우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무의식의 소리들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시어미가 며느리년에게 콩 심는 법을 가르치다
하종오

외지 떠돌다가 돌아온 좀 모자라는 아들놈이
꿰차고 온 좀 모자라는 며느리년 앞세우고
시어미는 콩 담은 봉지 들고 호미 들고
저물녘에 밭으로 나가고
입 이 한 발 튀어나온 며느리년 보고
밥 먹으려면 일해야 한다고 핀잔주지는 않고
쭈그려 앉아 두렁을 타악타악 쪼고
두 눈 멀뚱멀뚱 딴전 피우는 며느리년 보고
어둡기 전에 일 마쳐야 한다고 눈치주지는 않고
콩 세 알씩 톡톡톡 넣어 묻고
시어미가 밭둑 한 바퀴 돌아오니
며느리년도 밭둑 한 바퀴 뒤따라 돌아와서는.
저 너른 밭을 놔두고 뭣 땜에 둑에 심는다요?
이 긴 하루에 뭣 땜에 저녁답에 심는다요?
며느리년이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가장자리부터 기름져야 한복판이 잘 돼지.
새들도 볼 건 다 보는데 보는 데서는 못 심지
시어미도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다 어두운 때 집에 돌아와 아들놈 코고는 소리 듣고
히죽 웃는 며느리년에게 콩 남은 봉지와 호미 쥐어주고
시어미가 먼저 들어가 방문 쾅 닫고

모든 세상의 발전이나 진화는 부분적으로 초월의 과정이다. 언제나 기존의 것을 넘어가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새로운 삶의 질서가 생겨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그전에 존재했던 것들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로 그것들을 포함하면 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보다 높은 단계의 새로움을 향한 초월을 향한 과정 속엔 이전의 사회나 자연 세계를 구성했던 생활사의 기억이 포함되어 있다. 흔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들을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이지만, 초월하면서 포함하고 또 포함하면서 초월하는 과정이 인류 발전의 역사이자 생물학적 진화의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이른바 민중시 또는 농촌시의 한 전형 이라고 할 수 있는 하종오의 시 「시어미가 며느리년에게 콩 심는 법을 가르치다」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지 이 시는 농촌에서 살 수 없어 도시로 나갔지만 거기에서도 적응할 수 없어 농촌으로 재귀환한 후 벌어지는 “시어미”와 “며느리 ” 사이 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콩 심기”를 둘러싼 고부익살스런 실랑이 속엔 모든 사회적 발전 단계에서 마땅히 치러야 할 혼돈이나 대가가 나타나 있다. 특히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모색에도 과거문화의 위대한 성과나 지혜를 동반할 때 더 풍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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