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은 “How are you?”라고 인사하면 대부분 “I’m fine. Thank you”라고 대답하거나 “Very good”, “So so”, “Not bad”라고 대답한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안녕하십니까” 또는 “잘 지내십니까”라고 물으면 “죽을 맛이다”, “죽지 못해 산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지”라고 대답하기 일쑤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예부터 높은 지위에 오르더라도 “죽겠습니다” 하고 몸을 낮추었다. 자리가 높아지고 돈을 더 벌수록 겸손하게 행동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한국인들의 세상 사는 지혜였고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p.20
오랫동안 농경 정착 사회로 살아온 동양 사회는 인간의 관계를 중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한곳에 정착해서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니, 인간 사이의 예와 신의,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립이 무엇보다 우선이었고, 자연히 이에 관한 학문과 철학이 고도로 발달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은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려 조심하게 되고, 설사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체면이나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이를 강력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괜찮다’는 상대가 불편해질까, 마음이 상할까 해서 배려하는 ‘관계의 언어’로 한국인의 인간관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말이다. ---p.65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의 틀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이다. 굳이 다른 말로 옮겨야 한다면 love and hatred relationships 정도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인과 근거를 따져서 합당하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애정이 생기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객관적인 조건을 뛰어넘어 상대의 단점이나 모자란 행동도 모두 수용하는 너그러움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바로 이 ‘미운 정’이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다. ---p.98
한국들인은 전통적으로 불행이나 불운을 적극적으로 타파해서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불행과 불운을 팔자소관이라고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성향을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지금보다 더 불행한 경우를 상정해 놓고 “그만하기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현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으로 삼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행’, ‘불행’을 삶 그 자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현실을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p.107
한국인의 체면 의식은 본래 공동체를 중시하고 함께하는 문화와 배려심에서 비롯된 한국인들의 미덕이었다. 체면을 차린다는 것은 한국 문화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의 근본 질서이기도 했다. 어른의 체면을 세워 드리기 위하여 아랫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어른들은 자신에게 걸맞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베풀 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이런 한국 문화를 잘 나타내는 경어법이나 공손법의 사용은 체면을 중시해 온 한국 문화인 예의와 직결된다 할 수 있다. ---p.143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수직적·일방적·안정 희구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본질적인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사회적 덕목 이전에 빈부나 귀천이라는 구분과 상관없는 상호 화해적 덕목이 사회 저변에 형성돼야 하는데, 그 덕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충서(忠恕)이다. (……) 충서는 자신의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즉 ‘정성과 공감’이다. 충서는 자신의 완성을 통해서 사회적 봉사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는 덕목이므로 사회적 화합과 화해의 필수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충서는 수평적 · 상호적 · 화해 평등적 덕목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 사회는 기부 문화가 아닌 배려 문화에 의해서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김일환, 유교사상연구 제32집, 200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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