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평전을 쓰는 동안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 어떤 때는 작업을 멈추어야만 했다. 이 분노가 카미유 클로델을 향한 것인지, 로댕을 향한 것인지, 당시 사회에 대한 아쉬움인지,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원망인지, 그 대상이 모호했다. 어쩌면 그 모두였을 것이다. 작품보다는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갖는 세상. 그녀를 보호해 주어야 할 연인과 가족들은 오히려 그녀를 외면했다. 카미유 클로델이 미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삶에 비중을 둘 것인지, 아니면 불꽃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예술적 업적을 짚어 본다는 이 시리즈 본연의 의미를 생각해 그녀의 작품과 생애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아무쪼록 그녀가 지녔던 광기와 천재성, 그리고 외로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카미유는 표정 없는 얼굴을 뭉개 버렸다. 폴의 표정을 다시 살려야 했다. 잘 반죽된 흙은 그녀의 손끝에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카미유는 폴의 눈빛을 살리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폴의 눈빛이 반짝이는 듯했다.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
“안녕, 폴.”
카미유는 자신이 방금 빚은 동생에게 인사를 했다. 폴은 웃고 있었다.
“누나의 세상에 온 걸 환영해.” ---p. 25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조각 생각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좀 더 생생한 표정을 얻을 수 있는지, 면과 선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흙과 나무와 돌멩이의 서로 다른 질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을 뿐이다. 흙은 부드러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무리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 나무 또한 부드럽되 곧아, 나름대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돌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다룰 수 없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미유는 누군가한테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위에 가르쳐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더 힘들었다.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어머니의 사랑을 잃는 것보다 더 카미유를 괴롭혔다. ---p. 51
파리. 파리가 카미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파리는 아직 카미유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파리에게 카미유는 단지 시골 출신의 순박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깃과 발등을 덮는 치마, 낡은 구두에 질끈 묶은 머리, 꼭 다문 입이 전형적인 시골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미유는 생각했다. 이제 조만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 꼭 그렇게 만들고야 말리라고. 카미유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물었다. ---p. 83
“대단한 작품이군요. 표정이 살아 있어요.”
알프레드 부셰는 폴 뒤부아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바로 이 숙녀분이 만들었답니다.”
“정말입니까? 어떻게 당신 같은 아름다운 숙녀분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로댕에게 지도를 받은 모양이군요.”
폴 뒤부아는〈다윗과 골리앗〉과 카미유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로댕이라니. 카미유는 꼭 끼는 단추 때문에 답답하던 가슴이 로댕이라는 말에 더 답답해졌다. 카미유는 아직까지 로댕을 만나 본 적도 없었지만 화가 났다. 마치 자신의 창작품을 도난이라도 당한 심정이었다. 순전히 자신의 손과 아이디어로 만든 작품을 로댕과 연관시키다니. 카미유는 이때까지 지니고 있던 로댕에 대한 호기심이 반감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가 있는 한 자신은 빛을 보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아니, 아니에요. 저는 로댕을 몰라요.”
카미유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카미유의 단호한 소리에 폴 뒤부아와 알프레드 부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사과하지요. 작품이 훌륭해서 하는 말이었으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pp. 112~113
그는 여전히 예술가들의 모임에 나올 것이다. 로댕을 버리고 드뷔시를 만나 결혼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카미유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로댕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보다도 더한 것을 원했다. 숭고한 것, 자신의 존재를 걸 만큼 위대한 것.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 그것은 바로 조각이었다. ---p. 187
〈나이 든 엘렌〉, 〈열여섯 살의 폴〉, 〈샤쿤탈라〉, 〈왈츠〉, 〈어린 소녀 샤틀렌〉으로 이어진 연이은 성공에 카미유는 고무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의 내면은 열정으로 가득했고, 형상화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호평에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내부에서 이는 강렬한 인상과 감정대로 손을 움직여 나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억지로 아름다움을 만들려 하지 않고, 내면의 고통과 기쁨을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끌어내려 했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이면 어딘지 과장되고 어색했지만, 내면에 이끌려 가다 보면 선과 면이 부드럽게 살아났다.
카미유는 이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과 세계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도 흉내 낼 수도 없고, 따라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카미유 클로델, 자신만의 것이었다. ---p. 192
연이어 성공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추측대로 카미유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품의 성공과 현실은 달랐다. 카미유는 여전히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음 작품을 하기 위해 당장 지불해야 할 대리석 비용과 모델료를 걱정해야 했고, 집세도 번번이 밀렸다. 무엇도 나아진 게 없었다. 게다가 카미유는 제작 조수를 구하는 데도 애를 먹어야만 했다. 우선 그들에게 지불할 급료도 없었지만 아무도 여자인 카미유 밑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 195
“뭘 그렇게 보고만 서 있어요? 어서 이것들을 치워 버려요. 가져다 묻어 버리라고요. 몹쓸 것들. 이제 죽었으니 꼭 땅에 묻어요.”
카미유는 그 말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가 파리의 거리를 떠돌다 유령처럼 돌아와서는 다시 유령처럼 작업실에 처박혔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자신의 삶도, 사랑도, 작품도 다 끝이었다. 분노는 엉뚱하게도 자신에게 향했다. 그렇게 한 며칠 수굿하게 있다가도 카미유는 또다시 무엇엔가 휘둘리는 사람마냥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는 그나마 작업실에 남아 있던 집기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벽지를 찢고, 흙덩이들을 집어 내던지고, 대리석들을 망치로 깨부수었다.
---pp. 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