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천지는 먹줄로 재서 곧게 만들거나 그림쇠로 둥글게 그릴 필요가 없고, 아교로 붙이거나 새끼줄로 묶을 필요도 없으며, 자연적으로 곧아야 하는 것은 곧고, 구부러져야 하는 것은 구부러졌으며, 모나야 하는 것은 모나고, 둥글어야 하는 것은 둥글며, 일부러 애쓰고 기준을 만들고 설교할수록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고 말했다. 참으로 절묘한 말이지만, 인의도덕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성선설에 치우친 논리다. 인간은 그대로 두어도 선하고 원만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서양의 원죄론과 정반대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옳고 그름, 곧음과 구부러짐, 성공과 실패, 가벼움과 무거움, 얻음과 잃음은 모두 상황에 따라 잘 살피고 경험에 비추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변무: 인간은 왜 이렇게 다사다난할까」 중에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발전해 온 큰 도리를 안다면 오랜 옛날이나 먼 미래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에 기대와 욕망을 갖지 않는다. 어쨌든 시간의 변화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것이므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든 미래에 대한 전망이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며 성공과 실패도 역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음, 멀고 가까움, 앞과 뒤, 얻음과 잃음, 삶과 죽음의 이치도 이와 같다. 이 논리는 우리에게 인생무상을 비통해 하고 탄식하기보다는 넓게 생각하고 자아해탈을 실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추수: 영혼과 사변의 광활함」 중에서
장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우화가 풍부하고 화려하고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친다. 술 취한 남자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이야기, 배를 귀신처럼 부리는 이야기, 명검을 부러뜨리지 않고 바람에 날려 온 기왓장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 동야직의 마차 이야기, 환공이 귀신을 본 이야기, 목계의 이야기 등등 장자의 사유는 공자도 맹자도, 노자도 손자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의 우화를 읽다 보면 우화가 주는 교훈은 물론 유머와 풍자, 기발한 상상력, 기지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다만 그의 고사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들이 그가 본래 말하고자 했던 뜻을 잃고 다른 뜻으로 전해진 것이 아쉽다. ‘태약목계’만 하더라도 오늘날 이 고사성어는 장자가 말하고자 했던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마비된 듯 정신이 멍한 상태를 뜻한다. 명언과 우화들이 이천 년 넘는 세월을 거치며 희석되고 일반화된 것에 찬사를 보내야 할까, 탄식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독자들의 생각에 맡긴다. ---「달생 : 취해도 몸은 상하지 않고, 배를 모는 기술이 귀신 같다」 중에서
기발한 논리를 내놓는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특출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사실 중립적인 것들이 매우 많다. 그런 것들은 천자도 사용할 수 있고, 역적도 사용할 수 있으며, 또 잘 사용하면 천자와 역적이 경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다면, 도에도 역시 도둑처럼 위험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자가 주장한 염담무위 속에도 또 다른 위험한 생각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재유: 관리의 한도와 허위」 중에서
옛날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를 한 토막 베어내 제사에 쓸 술잔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는 도랑에 버렸다. 도랑에 버려진 나무 부스러기는 비바람을 맞고 햇볕을 받고 벌레에 갉아 먹히다가 나중에는 썩어서 물에 떠내려갔다. 제사에 쓰는 술잔이 된 나무는 깎이고 파이고 연마되고 색이 칠해진 후 성대하지만 딱히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우매한 사람들의 제사에 사용되었다. 향기로운 술이 가득 부어지기도 하고 비린내 나는 닭의 피가 담기기도 했다. 옛날 들판에서 선선한 바람을 쐬고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살던 때가 그리웠지만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술잔은 마침내 부서져 조각난 후에야 다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온전한 나무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점점 자라서 태양을 가리고 가지가 길게 늘어질 때까지 살았을까?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외롭지는 않을까? 나무는 세 가지 삶을 살 수 있다. 베어지지 않고 온전히 뿌리를 보존한다면 무성하게 자라 고목이 될 것이고, 잘려서 술잔으로 변한다면 세상의 성대함을 누릴 것이며, 술잔이 되지 못하고 부스러기로 버려진다면 자유와 소요를 누릴 수 있다. 이 세 가지 삶 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삶일까?
---「천지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면 온 하늘과 땅이 보석인가 쓰레기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