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소통이다. 소통은 ‘물질이나 기호의 막힘없는 흐름’을 의미한다. 영어 ‘communication’이 정신적 소통을 의미한다면, 우리말 ‘소통’은 물질 자체도 포함한다. 나뉨 속에 ‘함께하고 나누는’ 삶이다.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존재 개인(in-dividual)의 삶은, 이들의 모임인 사회로부터도 나뉠 수 없다. 개인 삶은 다양한 종류와 방식의 물질적 정신적, 보이는 안 보이는, 직접적 간접적 만남과 소통들의 사회적 맥락에서만 생각되어질 수 있다.
‘나뉜 존재’들이 만나 소통하는 ‘함께’와 ‘나눔’이 사회적 삶이다. 여기에서 다름을 보고 대하는 자세와 방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사람크기는 물질크기에 자꾸만 밀리고 눌리면서, ‘나 중심주의’ 내지 ‘위 중심주의’가 우리들의 몸과 맘에 배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스템 속에 ‘나와 너’ 혹은 ‘위와 아래’의 사이가 ‘너무 나뉘는’ 혹은 ‘잘못 나뉘는’ 모습들을 도처에서 본다. ‘작거나 다른 것’을 쉽게 ‘No!’라 하며 밀어내고 부정한다. 일방과 무시 속에 강제하고 배제하는 부정과 폭력의 대부분은 안 보이거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소통과 인성은 서로를 전제한다.
서로 밀어-내고 눌러-내려-‘야 사는’ ‘팔꿈치 사회’다. 일자리는 없고, 있어도 ‘질 나쁜 일자리’이고, 똑 같이 일해도 반만 받는 일자리가 반이다. 부자는 갈수록 부하게 되고 빈자는 갈수록 빈하게 되다가, 급기야 또렷한 양극화로 대립한다. 외적 크기로서 외적 크기를 위해 나와 너가 상하로 ‘너무’ 나뉘어 누르고 눌리며, 자타로 ‘잘못’ 나뉘어 밀어내고 밀어내진다. 자신이 큰 크기든 남이 큰 크기든, 올려 보든 내려 보든, 밀어내든 끌어들이든, 외적, 물질적 ‘큰 크기’만 인정하고 평가한다. ‘일종의 사대주의’다. 외적 큰 크기만 인정하거나 올려보고 끌어들이는 만남과 소통의 함께일 때, 무시와 배제, 폭력과 좌절은 쉽게 일어난다. ‘밀어내는 함께’, ‘따로따로 함께’, ‘겉도는 함께’ 혹은 ‘수직적 함께’인 ‘작은 함께’이다.
국민의 직원을 채용하는 선거에서, ‘높은 사람’이 될 자들은 ‘낮은 사람’들에 ‘몸을 굽혀’ 왕림하여, 함께 울고 웃을 수도 있으며 이들이 먹는 것도 먹을 줄 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높기 위해 낮으려는’ 혹은 ‘다르기 위해 같으려는’ 전략이다. 우리들의 사람크기, 세상크기를 크게 좌우하는 ‘그들’은 다른 후보자들과 자신을, 혹은 이들과 국민들을 분리시키며 국민들과 붙으려 한다. 국민과의 붙음도 곧 국민들에서 떨어지기로 드러난다. 그들은 ‘위-적’으로 살기 위해서, 허사로써 사익을 공익, 민익이라고 말할 줄 안다. 채용해보면, ‘또’ 허사다. 민-이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없고 민-에게 말하는 기회만 있으니, 불통이다. 민주는 ‘다시’ ‘민이 주’가 아니라, ‘민의 주’로 확인되며, 민은 여-전히 ‘객’(客)이다. 민객일수록 민주를 말한다.
남들을 많이 내다보는 문화다. 서로 남들만을 내다-보면서,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지 못하며, 남들의 태도와 시선에 눈치 보면서, 자신을 자신하는 모습이 약하다. 남의 삶 같다. 나의 시선과 관심이 남들에 많이 향하지만, 경청과 이해, 배려의 크기가 작은 소통문화, 예문화다. 신기하다. 이러한 외적 크기, 물질 크기 중심주의와 맞물려, 겉치레와 ‘나를 올려 보이는’ 과시 그리고 ‘남을 내려 보는’ 무시가 탄력을 받는다. 그러나 ‘나를 내려 보이고 남을 올려 보는’ 다름 배려의 ‘수평 예’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람으로 함께 살기’로 향한다.
‘지고 메는 짐’이 부담이다. ‘진리’에 대한 짐 외에는 부담 없이, 서로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수평 예’와 ‘수평 소통’은 서로를 전제한다. 이상해진 일상에서 반복되는 ‘소통 사건들’, ‘만남 사건들’의 크기와 모습에 대하여, 더 캐고 물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만나며 소통하는 ‘함께의 크기’를 키우는 일에서, 제도나 관습, 문화전통과 맞물려 정신적, 물질적으로 보이게 안 보이게 나뉘는 분리와 벽, 경계선들을 잘 묻고 드러내면서, 벽을 헐고 분리를 이어가는 일이 관건이다. 외적 크기를 위한 보이기와 감추기, 올리기와 내리기의 권력 작동의 맥락에서는 ‘위아래’만 있을 수 있고 ‘위아래’만 있으려 하고 ‘위아래’만 있어야 하는 함께의 모습이다. 이때 소통의 크기, 함께의 크기와 함께 사람크기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팔꿈치’ 경쟁 속의 양극화 경제, 수직주의적 예문화 전통, ‘대신 생각해주는’ 전달교육, 군림 위해 왕림하는 ‘겉-짓’ 정치 등의 하부시스템(subsystem)들이 서로 맞-물려 재생산되는 ‘작은 소통문화’의 전체 작용맥락과 이를 넘어서는 방안을, 새로운 개념들로 구체적으로 물어가며 풀어나간다. 의미와 재미를 함께 생각하며, 일상 현장에서 쉽게 묻고 드러내려 했다. 1장은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들인 만남과 소통을 중심으로 ‘나누며 함께하는’ 삶의 기초논리를 물으며, 2장은 작은 소통문화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다각적으로 되돌아본다. 그리고 3장은 작은 소통문화의 일그러진 모습의 원인들을 포괄적으로 추적하며, 끝으로 4장은 같음과 다름, 수직과 수평의 개념 쌍들로 작은 소통크기를 키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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