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남자들이 삼삼오오 서 있는 쓸쓸하고 지저분한 역내를 걸어가면서, 카프카적 상황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 말은 에나리 카즈키가 카레 광고에서 패러디를 했을 정도다. 오늘날의 부조리한 세계에서 카프카Franz Kafka는 점점 중요한 작가로 부상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리얼리티를 더할 것이다. 요전에 쓰지하라 노보루씨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카프카의 『변신』은 ‘49일’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죽도록 일하다가 과로사한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독충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을 상징하며, 이후 그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비탄하다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미래에 맞서게 되기까지의 가족 간의 갈등 얘기라는 것이다. 쓰지하라 씨 왈, 이 얘기가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가 약 한 달 반이라는 것. 과연 그렇다.
_‘체코 만화경’ 중에서
밤은 이르고 고요하다. 어딘가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낮게 울려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런 밤은 묘한 기분이 든다. 학생 시절에 친구와 여행 가서 머물렀거나 어릴 때 가족끼리 머물던 민박이 생각난다. 어디에나 이런 정적은 있었고, 어디든 이런 방이었다. 여행지의 밤은 언제나 같은 밤이었던 기분이 든다.
_‘딱 알맞은 거리, 딱 알맞은 넓이-구조하치만’ 중에서
세상에는 소설가가 널려 있고 서점에는 신간이 넘쳐 난다.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쓸 사람이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빨리 은거해서 일개 독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구쳤다. 이런 생각은 평소에도 수면 밑에서 끓고 있다가 대개 반년마다 한 번씩 불쑥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일단 이런 상태가 되면 여간해서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를 볼 마음도 안 생기고, 어떤 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할 때는 잘 모르지만, 집에 있을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겁이 난다. 올해는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동기를 영 찾지 못해 질질 끄는 중이다.
_‘『인 콜드 블러드』와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무덤-닛코’ 중에서
여행지에서 구름을 볼 때마다 언제나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지금은 절판된 우치다 요시미의 만화 『별의 시계 Liddell』의 등장인물이 하는 대사이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예감이야.”
마찬가지야, 나도 중얼거렸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도쇼 궁에 있는 잠자는 고양이상像을 보기 위해서도, 삼나무 길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소설의-아니, 소설뿐만 아니라-그저 ‘무언가’의 예감을 찾기 위해서이다.
택시는 3시가 지나서야 호텔에 도착할 것이다.
비는 금방 고개를 넘어 여기까지 쫓아왔다.
그렇다면 빗소리를 들으며, 방에서 느긋하게 『인 콜드 블러드』를 읽어야지.
_‘『인 콜드 블러드』와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무덤-닛코’ 중에서
순례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순례자』를 읽고(이 책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한 영적 체험에 대해 쓴 것), 무언가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고민하다 문득 깨달았다. 그랬다. 게임 공략본과 비슷했다. 즉,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자신의 영혼을 단련해 나간다는 목적은 RPG와 같은 것이었다. 방정맞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작가도, 옛 순례자도, 바라는 것은 자기 마음의 성장과 무언가를 완수했다는 성취감, 또 그 결과 얻게 되는 영혼의 평안함이 아닐까.
_‘스페인 기상곡’ 중에서
예전에는 여행 일정이나 몸소 겪었던 일을 고스란히 소설 소재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주로 이미지와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단 한 곳의 풍경, 단 하나의 이미지만 얻을 때도 있다. 여행에서 그 무언가와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철야로 원고를 완성하고 비틀거리며 역으로 향한다. 그런 풍경과 이미지가 몸 한 구석에 남는다. 그것이 여행에 얽힌 걷잡을 수 없는 문장을 정리한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_‘후기를 대신해서’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