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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니체

: 문학으로서 삶

리뷰 총점8.6 리뷰 13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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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15g | 153*224*30mm
ISBN13 9788994054353
ISBN10 899405435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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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네하마스는 니체의 사상을 일상적 삶의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절박한 문제의 지평에서 제시하였다. 그에게 니체는 무엇보다도 기구하고 고단하며 고통스러웠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탁월한 예술가이다. 삶이 곧 작품이며 철학이었던 것이다. 방황, 좌절, 고독, 질병 등 그의 다채로운 경험은 해석되고 또 재해석되어야 하는 작품의 재료였다. 권력의지, 초인, 영겁회귀와 같은 사상은 그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자 자기 서사의 플롯이며 주제였다. 이 점에서 권력의지는 해석을 향한 의지이며 삶은 해석의 험난한 과정이다. 이러한 네하마스의 해석이 옳다고 하면 독자들이 니체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도 역시 강렬한 삶에의 의지이며 권력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를 이해하는 작업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고 초연한 작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개성과 경험, 꿈과 맞물린 작업이다. 때문에 니체를 읽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 임하는 것이다. --- p.13

니체가 분명하게 주장한 견해의 하나가 바로 원근법주의이다. 원근법주의에서 야기되는 모순도 그의 저술의 일부라면 그를 해석하는 연구자들은 언제나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니체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원근법주의는 자체 내에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정당성은 언제나 내부로부터 도전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근법주의는 이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해의 가능성을 원론적으로 부정하는 대상이 된다. --- p.26

니체를 연구하면서 발견한 두 번째 주요 논제는 니체의 유미주의(aestheticism)와 관련된 것이다. 유미주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원근법주의와 연관성이 있다. 첫째로, 유미주의는 니체가 원근법주의를 주장했던 동기를 제공한다. 니체는 예술 작품을 대하듯이 세계를 보았다. 그는 세계를 문학 작품처럼 읽었다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문학 텍스트와 등장인물의 창조와 해석에 거의 직관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나 원칙들을 니체는 세계와 인간에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견해에 이를 수 있었다. 이러한 문학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면 그의 견해들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문학 텍스트에 대해서는 서로 상이하면서 모순적이기도 한 해석들이 가능한 법이다. 이런 다양한 해석을 맨 처음 표명한 사람이 니체였다. 더구나 니체는 세계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및 상황들을 문학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바로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권력의지, 영겁회귀, 자아의 개념, 및 도덕성 등에 대한 이론 및 원근법주의가 도출되었다. --- p.28

니체에 따르면 자아는 지속적이고 안정된 실재가 아니라 형성되고 구성되는 것이다. 모든 사유와 욕망, 행동의 총합이 인간인 것이다. 이때 위대한 자아는 생각이나 욕망, 행동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서 하나의 분명한 스타일을 만드는 인간을 말한다. 자아는 일관되게 결합된 일련의 에피소드이다. 또 니체가 입이 마르게 주장하듯이 훌륭한 자아는, 다수의 강력하고 모순적인 성향이 통제되고 조화를 이룬 것이다. 물론 나약함이나 진부함, 천박성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니체가 찬양하며 우리에게 본보기로 제시하는 스타일은 통제된 다양성과 지양된 모순을 간직한 형태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니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어떠한 인물일까? 어떻게 우리는 그들처럼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과 무도덕주의의 관계가 제7장의 주제를 이루며 “선악을 넘어서”라는 유명한 경구에 대한 해석이 시도될 것이다. 나는 도덕적이나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 니체의 경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선악의 성격과 가치는 관점의 문제이다. 따라서 니체가 경탄하였던 인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나 원칙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34

니체는 개별적 인물이 자신을 아름답게 형성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이용했다. 그러한 개인은 도덕을 넘어서면서도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인물로서, 그것은 작품의 창조자로서 니체였다. 이러한 인물은 모방의 모델이 될 수 없다. 그는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특정한 행동들의 결과, 즉 독특한 글쓰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를 대놓고서 모방하는 사람은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나 짝퉁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성숙을 포기하는 사람이 된다. 니체를 올바르게 모방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독특한 모든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짝퉁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것, 즉 자기만의 창조물을 생산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철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니체는 독단주의적 전통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인간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독단주의를 혐오했음에도 자신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염려가 철학을 문학 작품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의 유미주의는 원근법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나의 니체 해석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 p.35

니체에 대한 대부분의 저술들은 대개 그의 스타일에 대한 상투적인 견해로 시작한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닌데, 가장 상투적인 설명에 따르면 그의 사상은 스타일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스타일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의 사상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투적 견해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었으며, 이들 다양한 해석에 의해서 그의 사상과 스타일에 대해 서로 상충되는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였다. --- p.41

1930년대에 하이데거Heidegger도 이미 코프만과 흡사한 해석을 시도했다. 그는 니체의 생전에 출판된 저술이 아니라 『권력의지』가 니체 사상의 정수를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니체가 생전에 출판한 저서들은 그의 표면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철학의 진면목은 출판되지 않은 유고집에서 찾을 수 있다.”9 그는 『권력의지』가 서양의 형이상학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 “극복”을 모색하는 사상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서양철학의 단일한 기획이 출발점과 종착지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와 니체 사이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아이러니한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서, “단편”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p.46

데리다의 니체관은 스타일에 대해 아직껏 제기되지 않았지만 니체 해석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매우 짧았지만 창조적이었던 저술 기간 동안 니체는 경구나 은유, 단편을 비롯해서 여러 스타일과 장르를 자유로이 구사했다. 해석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연구서들이 이러한 스타일의 다원주의를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뜻밖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석의 다원주의의 도마에 오르는 순간에 우리는 다원주의의 기능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니체의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필수적으로 제기되고, 이에 대해 대답해야 마땅하게 되었다. --- p.49

과장법은 학문적이 아닌 수사법이기 때문에 니체가 심오한 사상을 피력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성의 없이 읽고는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독자들, 즉 그가 심오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그 중요한 문제에는 과장법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니체의 문체는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를 하찮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동인 셈이다. 이러한 반응 이외에도 독자를 강력하게 휘어잡는 니체의 비상한 능력으로 인해 그에게 비판적·무비판적으로 사로잡힌 추종자들은 보다 미묘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니체의 과장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철학사의 또 다른 인물인 소크라테스를 상기시킨다. 니체는 그에 대하여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니체와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지만 소크라테스도 목숨을 무릅쓰면서까지 청중들로부터 격렬한 반응을 야기했다. 이 점에서 나는 니체와 소크라테스를 대질시키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내가 제시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될 것이다. --- p.58

니체의 저술의 목표는 위에 인용된 소크라테스의 목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니체와 소크라테스는 매우 독특한 사상가였으며, 그들 주위 사람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소크라테스는 일상을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면에 니체가 추상적이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것을 독자에게 툭 던지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독자의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기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라케스』에서 소크라테스는 검술에 대한 질문을 용기와 미덕, 탁월한 삶에 관한 추상적인 질문으로 바꾸었다. 이와는 반대로 『선악을 넘어서』에서 니체는 진리의 개념, 확실성의 가능성, 자유와 필연성 등의 철학적 개념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 다음에, 그에 대해 기존의 견해에 만족하고 있는 독자들의 도덕성을 묻는 질문으로 바꿔 버린다. 니체는 독자들이 그것들이 질문이라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한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아주 상투적인 대답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 p.61

철학자들이 자신의 독단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역사적 기원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보편적 진리로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계보학”이라고 이름을 붙인 방법론을 사용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계보학은 철학자가 원래 자신의 개인적 견해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잊고 진리로 주장했던 것이 사실은 특정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연구방법이다. 숨겨진 기원을 밝히고, 개인적 생각을 진리로 만들어 주는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것이다. 도덕의 영역에서 그의 계보학적 특징이 특히 현저한데, 이러한 이유로 니체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오랜 경험과 실험을 통해 실험되고 증명된 삶의 방식인 도덕은 마침내 인간의 의식에 자리를 잡고서 속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법이 되었다. 그러자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가치와 상황들도 인간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도덕이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진리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도덕의 발전 과정에서 기원의 망각은 필수적이었다. 그것의 기원이 망각되면 도덕은 주인으로서 군림을 한다.”(『권력』, 514; 『선악』, 202 참조) 도덕의 기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역사의 일부이며, 따라서 언젠가 끝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니체는 독단주의가 이러한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한다고 생각하였다. 기원이 망각되어야만 특정한 개인의 창작물이 불변하는 진리로서 무조건적으로 옹립될 수 있는 것이다. --- p.72

니체의 다양한 스타일은 소크라테스와 철학에 대한 그의 관계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그의 문체는 이들의 벌리는 싸움의 일부였다. 그것은 독자와 세계 사이로 파고들기 위한 노력이자 그 결과였다. 니체가 자신의 글을 무한히 다양하게 해석하기를 원해서 다양한 글쓰기를 구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자가 니체에 좋아한다면, 그것은 그의 개인적 가치관과 개성, 목표가 집대성된 그의 개성적인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그는 특유한 글쓰기를 구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의 가치관과 개성, 목표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선택이 힘들고 필연적이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정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선택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관점을 가지고서 다른 선택의 대상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자신의 독자적인 가치관에 입각해서 독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의 견해를 선택하든 스스로의 견해를 만들어내든 양자는 똑같은 어려움을 우리에게 부과한다. 니체는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이러한 어려움을 독자의 눈앞에 제시하려고 하였다. --- p.79

니체의 스타일상의 다원주의는 단지 자신이 주장했다는 이유에서 독단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는 주장을 독단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한, 독단주의에 대한 니체의 해결책이다. 그의 스타일상의 다원주의는 독자들이 읽는 글이 삶과 세계에 대한 그의 개인적 해석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특유한 방법이다. 그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걸림돌이 되어 독자들이 쉽사리 니체에게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런데 쉽게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에 니체를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된 그의 입장은 그것이 많은 다양한 입장 중에서 하나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니체가 원근법주의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원근법주의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다양한 스타일의 덕분이었다. 모든 것이 해석이라는 그의 견해의 기반을 허물지 않고서도 이러한 주장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 p.83

니체는 선험적 종합 판단을 포함해서 “가장 그릇된 판단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삶을 위한 필요나 삶의 증진이라는 기준을 진리대응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지는 않았다. 단지 진리와 지식은 언제나 유익하며 무지와 거짓은 언제나 유해하다는 기존의 가설을 공격했을 따름이다. 우리는 “거짓을 삶의 조건으로서 인식”하는 철학적 입장에 의거해서 우리의 기본적 믿음이 궁극적인 진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니체는 우리의 주된 믿음 가운데 많은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믿음이 인간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유익하다고 해서 그러한 믿음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 p.106

니체는 세계를 우리의 다양한 관습과 삶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는 텍스트로 생각하였다.(예를 들어 『선악』, 22, 230을 보라) 그는 진리라는 개념을 버리고 텍스트라는 은유를 사용하였는데, 텍스트는 해석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해석은 해석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확정된 의미를 가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의미는 해석을 통하여 창조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확하거나 충실한 해석의 문제가 제기될 수 없다. 텍스트에 가해진 기존의 해석을 정확하고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해석의 정확성을 판단할 기준이 없는 셈이 된다. 더구나 어떤 기존의 해석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이 참된 것인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또 다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새로운 해석은 물론 텍스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되는 것을 말한다. 해석이 해석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해석은 원래의 텍스트 해석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결정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다시 해석의 손길을 기다리는 또 다른 텍스트가 된다. 이렇듯 텍스트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해석은 그 대상을 변화시키게 마련이며, 다음에 오는 해석은 변화된 대상과 씨름하여야 한다. 이러한 해석의 과정에서 서로 모순되면서도 불구하고 하나를 선택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유효한 해석들이 등장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제 세계도 변형될 수 있으며, 그 변형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감히 꿈꾸지도 못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삶의 방식은 과거나 현재의 것과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훌륭한 삶의 방식만큼 유효하고 정당할 수 있다. --- p.117

허무주의적 가설에 때 묻지 않은 니체적 자유정신은 언제나 보다 새롭고 훌륭하게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때로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 물론 훌륭한 해석은 특정 시기에 특정한 이유로 인하여 특정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해석을 말한다. 세계는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초월해 있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들의 손에 잡혀 있지도 않다. “이와 같이 오늘 세계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두려워서 도망가야 하는 수수께끼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으면 따분해서 하품이 나오는 시시껄렁한 대답도 아니다. 우리는 세계가 악하다고 말하지만 세계는 오늘 나에게 인간적으로 선하였다.”(『차라』, III, 10) 자유정신의 소유자는 자신의 창작품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최상인 견해로서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해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견해로 제시하는 독단주의자나 “형이상학자들”(『선악』, 43; 『권력』, 446)의 태도와 대조적이다. --- p.131

니체는 다른 것과 아무 상관없이 사물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관찰자인 우리까지 포함해서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에 대하여 갖는 영향이 그 사물의 특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해석이나 주관성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본질을 사물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그것은 해석이나 주관성이 중요치 않으며 관계의 망에서 분리된 사물도 여전히 사물이라는 잘못된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가설이다.”(『권력』, 560) 이러한 상호관계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이 놀랄 만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만약 한 대상이 어떤 특징들을 가진다면, 이 대상에 영향을 미치고, 또 이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적어도 또 하나의 다른 대상 역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물의 성질이란 다른 ‘사물’에 미치는 영향이다. 만약 다른 ‘사물’을 제거한다면 그 사물은 아무런 성질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떠한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물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권력』, 557) --- p.147

니체의 비판은 이미 논의했던 다음과 같은 견해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사물로 간주하는 모든 결과는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진 바 이러한 상호연관성이 그것의 성질을 결정한다는 견해이다. 사물이나 그것이 수반하는 결과는 다른 사물과 독립해서 존재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들은 미리 결정되어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과의 연관 속에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갱신되고 재해석된다. 새로운 사건들도 물론 불확실하며 유동적이다.(『권력』, 672) 모든 사건의 성격과 본질은 다른 사건의 성격이나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관계는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며 해석학적인 관계이다. 니체는 이와 비슷한 견해를 이미 판단에 대한 헤겔적 성향의 메모에서, “분리된 판단이란 있을 수 없다. 분리된 판단은 결코 ‘진리’가 아니며 지식이 될 수 없다. 다른 판단과 관련되고 연관되어야 확실성이 생긴다”(『권력』, 530)고 말하였다. --- p.158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로 세계에서도 사건을 재해석하는 일은 많은 결과를 재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는 일이다. 독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텍스트”는 다시 씌어진다. 독서가 텍스트의 새로운 부분으로 입력이 되면서 새로운 텍스트가 미래에 탄생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존의 공식을 재해석하는 것도 세계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해석을 “설명이 아니라 의미의 도입(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새로운 해석이란 이제는 기호처럼 되어서 판독이 불가능한 과거에 대한 해석이다)”(『권력』, 604)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새로운 해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해석을 재해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언젠가 미래에 종결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 텍스트는 미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각 부분들을 상호 조정하는 작업은 끝이 없는 진행형이 된다. “부분이 되는 숫자는 일정하지 않다.”(『권력』, 617; 520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차라투스트라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다. “그대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대는 그대가 아버지의 자식이었다는 보완해야 한다. 이렇게 그대는 지나간 것들을 만회할 수 있다.”(『차라』, Ⅲ, 12; Ⅱ, 14 참조) --- p.164

도덕적 관습을 주어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텍스트”로서, 의미를 가진 기호로서, 해석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권력의지의 표현으로서 본다는 점에서 계보학은 일종의 해석이다.2니체는 『계보학』 제3부의 서두에서 제3부는 그것에 제명題銘으로 붙인 경구를 해석(독일어로는 Auslegung)한 내용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계보학적 작업의 해석학적 성격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책을 예술처럼 읽는”(『도덕』, 서론, 8)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3부와 경구의 애매모호한 관계는 지금까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는 이에 대해 내 나름대로 논평을 하기 이전에 해석이라는 용어에 포함된 의미들을 우선적으로 지적하려고 한다. --- p.188

니체에 의하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야망을 실현할 수 없으며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자는 고통을 주어진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룩하지 못한 야망의 증상이 아니라 죄에 대한 징벌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우리는 감각적이거나 자만심이 있고 잔인하거나 야망이 많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욕망이 만족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러한 욕망의 충족을 원할 수도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행동의 도덕적 특징을 동기와 의도에서 찾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금욕주의는 귀족들이 미덕으로 간주한 특징들을 자신도 갖기를 원하는 사실로부터 죄의 개념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이 욕망은 미덕이든 아니든 그것을 충족하려는 욕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가 없다고 니체는 생각했다. 이러한 욕망과 이에 따라서 행동하려는 경향은 인간의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징벌은 계속해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금욕주의는 고통을 제거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이유를 성공적으로 제시했다. --- p.209

사상사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니체는?그의 글의 목적에는 필수적이었는지 모르지만?많은 불이익을 당했다. 독자들이 그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견해를 주장하고는 아무 정당한 근거도 없이 그것이 너무나 시대에 앞선 것이라고 옹호하는 사상가이거나, 아니면 가르침이 아니라 충격을 주기 좋아하는 사상가로서 그를 매도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그의 글이 제공하는 것이다. 니체가 독자에게 충격을 가하고 싶어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충격이 가르침과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가르침에도 열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많은 견해 중에서도 가장 난감하기 짝이 없는 영겁회귀 사상의 경우 그가 가르침에도 열심이었다는 주장이 상당히 의심스러워진다. 그럼에도 차라투스트라(『차라』, III, 13)와 니체는(『우상』, X, 5) 자신이 영겁회귀의 교사라고 주장했다. --- p.236

니체는 세계의 모든 것들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은 세계 전체가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악마의 제안에 대한 두 가지 반응만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았다. 만일 내가 자신과 자신의 삶의 작은 일부라도 긍정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세계의 모든 것도 동시에 긍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반면에 내가 아무리 사소하고 무의미한 부분이라도 거부한다면 나는 삶 전체와 세계 전체를 거부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대립 사이에 중간 지점은 없다. --- p.259

니체에게 있어서 삶의 정당성은 현재를 긍정하면서, 또한 모든 과거도 긍정하는 순간에 주어진다. 비록 과거의 어떤 특정한 사건을 싫어해도 우리가 이제 그것이 달라지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일부가 되고, 그것은 우리의 행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친구여, 어머니가 아이에게 각인되어 있듯이 그대의 모든 행동에 그대가 각인되도록 하라. 이것이 미덕에 관한 그대의 격언이 되도록 하라.”(『차라』, Ⅱ, 5) 삶은 잘 조직된 유기체로서 그것의 한 부분이라도 바뀌면 모든 것이 일시에 와해되고, 또 한 가지 측면이 변하면 다른 모든 측면도 한꺼번에 변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겁회귀는 “가장 지고한 긍정의 처방”인 것이다. 회귀적 인간은 일단 일어난 사건과 삶의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람은 장차 일어날 모든 불확실한 사건도 모두 긍정하는 자, 과거이건 현재이건 우연이건 의도했건 선이건 악이건 세계의 모든 것의 영겁회귀를 긍정하는 자이다. --- p.269

니체는 권력의지를 주체에 적용함으로써 행위 주체를 행동들의 총합으로서 파악했다. 권력의지 사상에 의하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이것이 다른 것들에 미치는 영향의 결과로, 이러한 사상은 전통적인 의미의 사물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우리가 개괄적으로 논의했던 문제로서 자아와 관련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어떤 행동을 우리가 행위자의 행동에 속하는 것으로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행동이 전부이다.”라는 말이 적용될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더해지면 더욱 이해가 힘들어진다. “생각하는 것으로서의 ‘정신’은 ‘생각’을 믿는 그릇된 자기성찰로부터 두 번째로 파생된 개념이다. 전혀 일어나지 않은 ‘생각’이라는 행동이 우선적으로 가정된다. 그 다음에는 모든 생각 활동의 뿌리가 되는 주체로서의 실체가 가정된다. 다시 말하면, 행동이나 행위자 모두 허구이다.”(『권력』, 477) 이러한 이중의 부정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상도 남겨 놓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우선 주체를 일련의 행동으로 파악한 니체의 주장을 현상과 실체의 구별을 거부한 그의 견해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쾌한 과학』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나에게 현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녕 과학의 반대는 아니다. 현상의 속성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본질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과학』, 54) 현상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우리의 관심의 대상인 문구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 p.285

니체의 방법론에 포함된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인간은 사유 및 욕망의 내용을 다른 내용으로부터 분리해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각각의 정신적인 활동이 다른 정신적 활동의 내용과 독립해서 어떤 독자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저러한 사건을 판단하는 사유가 이미 거기에 주어져 있어서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며 행하든지 그것은 변치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유가 잘못된 것으로 증명되는 경우에도 그것의 중요성은 이미 확실하고 영원한 것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적 활동의 내용을 서로 구분해놓은 다음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각 활동의 내용을 그것을 의도한 활동으로부터 구분한다. 그러면서 생각은 그것의 의도나 관심과 독립된 사건이 된다. 이와 같은 두 단계의 “추상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생각이나 관념과 같은 일단의 동질同質적인 통일체를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것을 주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주체는 이러한 동질적이고 조화로운 활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가정되기 때문에 주체가 통일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 p.295

살아 있는 한 우리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생각과 욕망에 사로잡히며 계속해서 새로운 행동을 한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과 욕망, 행동의 관점에서 우리는 이전의 것을 재해석하거나 재조정하고, 심지어는 폐기처분해야 할 필요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선회하라. ‘더욱 훌륭해지거나’ 달리 바뀌지 않을 욕망은 없다”(『권력』, 425; 『차라』, Ⅳ, 19 참조)는 니체의 주장은 끊임없는 발전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나 자신으로 남아 있고 싶은 욕망을 어떤 특정한 개성 특징을 변치 않게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 욕망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p.311

니체의 심리학적 가설에 따르면 잔인함이 숭고해지면 정직성이 된다. 여기에서 이러한 가설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이러한 가설은 선한 자질을 갖기 위해서는 악한 자질이 필요하다는 견해나 악한 자질도 상황이 변하면 선한 것이 된다는 견해와 모순되지 않는다. 니체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인간의 공격적 성향을 아무리 통제하고 교화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예외적이라고 말이다. 약간이라도 자극을 받으면 잔인하고 냉혹한 성향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강렬한 모습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타인들과 사회를 짓밟으며 이러한 충동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자족감을 잃고 당혹과 공포로 말문이 막힐 수 있다. 니체는 정직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잔인함도 증가한다는 견해를 하나의 원칙처럼 가지고 있었다. 특정한 환경에 놓이면 정직이 끔찍한 잔혹함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그는 위험 그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에서 행동에 대한 그의 입장이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의 하나이다. 이러한 위험은 악몽처럼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푸트가 지적했듯이 그는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위험으로부터 몸을 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경이와 찬탄을 아끼지 않았던 디오니소스의 입을 빌려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디오니소스는 출산과 부패, 삶과 죽음, 선과 악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신. 이러한 대립적 가치들을 동시에 찬양하는 신이다. --- p.355

무엇이 위대한 작품의 일부이며, 또 그래야 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은 없다. 니체는 삶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예술 운동은 전통적 예술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배재했던 요소가 새로운 장르의 원천이자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성공을 거두곤 한다. 똑같은 디자인과 똑같은 주제, 똑같은 서술 기법, 똑같은 종류의 변화가 어떤 작품에는 위대성을 부여하면서도 다른 작품에 거부감을 줄 수 있다. 니체는 어떠한 예술적 특징도 자체로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는 비교적 논쟁의 여지없이 타당한 관점을 니체는 어떤 행동이나 성격 자질도 자체로서는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극단화한다. 그리고 선악의 특징은 다만 해석의 결과이며, 선악의 가치는 행동이나 성격적 특징들이 전체적 인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정도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특징이라는 것도 자체로서는 아무런 내재적 가치가 없지만 하나의 전체의 일부로 자리를 잡을 때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전체는 만족스러운 것일 수도, 끔찍한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만족스럽고 끔찍한 것일 수도 있다. --- p.372

니체의 텍스트에 예시된 인물은 너무나 개성적이고 독특해서 지금까지 이를 모방하려 했던 시도는 단지 우스꽝스러운 결과만을 남겨놓았다. 그가 독자에게 따르도록 권하는 윤리적 규범은 모호하고 막연하며 도식적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그가 혐오스럽고 끔찍하며 위험한 행동을 부추긴다고 판단할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의 창작을 위한 매뉴얼처럼 니체의 충고를 글자 그대로 따르면 우리는 단지 평범한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매뉴얼과 달리 니체의 저서는 뛰어난 문학적·철학적 작품이라는 점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행동에 대한 그의 견해를 수용하고 그의 저서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저자에게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가 소묘한 인물이 매우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며,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매우 경이로운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p.377

니체는 자기 자신의 소크라테스를 창조하는 플라톤이기를 바랐으며, 사실 그러했다. 그는 선과 악을 넘어선 사람들의 행동을 찬양하면서 도덕적 가치평가를 넘어선 지점에 설 수 있었다. 선과 악의 문제보다 자신의 자아가 훨씬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니체가 기존의 관념이나 가치관, 습관, 감수성 등을 공격하고 잔인함을 예찬했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저서를 읽고, 설혹 그의 의견을 수긍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경탄해야 한다. 그와 씨름할 때 우리는 니체라는 비참했던 한 인간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에서 점차 모습이 드러나는 철학자, 그의 텍스트가 소묘한 탁월한 인물, 권력의지가 주장하듯이 자신의 행위의 효과로서 행위자, 즉 저서가 자기 자신인 주체와 씨름하는 것이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독자였던 니체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술가의 것이든 철학자의 것이든 ‘작품’은 그것을 창조한 인물, 그것을 창조한 것으로 가정되는 인물을 재창조한다. 비록 찬양되기는 하지만 ‘위대한 인물’은 한심한 2류 소설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다.”(『선악』, 269)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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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책으로 텍스트 모델에 입각하여, 즉 마치 세계 자체가 텍스트처럼 서로 긴밀하게 엮어져 있고 우리 자신도 텍스트의 구조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니체의 철학을 해석한 것이다. 이 책은 니체의 글이 그러하듯이 통쾌하고 명징하며 날카롭고 대담하며 세련되어 있다. 이 책에는 니체를 예언자로 떠받드는 무리들의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지 않는다. 네하마스의 책은 니체가 지켜보았다면 흐뭇한 미소를 자아냈을 일종의 경쾌한 춤과도 같다. 니체의 책들은 음악과 빛의 정신이 빚어낸 창작품들이 아니었던가…… 신선하고 도발적인 이 책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고 또한 범세계적이기도 하다.
- 아서 단토

훌륭한 작품, 네하마스의 주장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면서 동시에 불멸의 것이기도 하다. 현대 철학자들과 문학이론가들의 관심사를 첨예하게 부각시킨 이 책은 니체 연구서의 고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 데이비드 호이

알렉산더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 삶』은 그 명징성과 니체의 텍스트의 강력한 해석에 있어서, 또 그 독자를 사로잡는 설득력에 있어서 매우 독창적인 책이다. 우리는 커다란 기쁨을 가지고 네하마스가 니체 해석의 제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지혜를 읽을 수 있다. 포괄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리의 전개가 엄밀한 이 책으로 인하여 니체 이해의 중요한 새 장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힐리스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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