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좌절, 방황으로 점철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른 나이에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보험회사 직원, 출판사 세일즈맨, 염색 공장 근로자 등등 안 해본 일이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나 그대로 머무를 수는 없었다. 특별히 배운 것도 가진 게 없는 삶이 너무 억울해 밤마다 잠을 쪼개 수천 권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주경야독한 끝에 30대에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서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정책연구소 초대소장, 한국자치발전연구원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가리켜 고난과 역경 속 좌충우돌의 삶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젠 깨달았다. 가시
덩굴 속에 장미꽃이 핀다는 것을. 그는 게임에도 막판뒤집기가 있듯이 인생에도 한판 뒤집기 승부를 걸어볼만 하다고 말한다. 사막에 강을 만들고 길을 닦는 심정으로 이 글을 썼다.
대한민국 공무원노동조합 총연맹을 창립하여 초대와 2대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국회의원 정세균 노동사회특보,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졸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졸, 연변대학교 초빙교수, 군장대학교 객원교수, (사)대한행정사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밖에도 좋은시장학교(GMA) 3기 동문회장, 서울 주얼리산업협동조합 상임자문위원, 서울행정심
판소 자문위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글을 썼다.
현재 행복한세상만들기운동본부 회장, Korea 미래창조포럼 대표, 낙동강뱃길복원운동본부 대표 등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제19대 총선 대구서구에 출마하기도 한 그는 젊은 날에는 ㈜ 풍국산업, ㈜애경유지 등 기업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으며, 공직에 있을 땐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전국공직협발전연구회 공동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그리고 공직을 명퇴한 후 ㈜승산 대표이사, 공동체 다겸 대표 등 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꿈꾸던 미래를 위해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