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을 수행하는 데 제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사업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상대의 빈곤감, 상대의 결핍을 자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태를 불만족스럽고 무언가 부족한 상태로 보게 하고, 남들에게는 있으나 나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강조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p.49
너희 무중구는 우리 르완다의 불행을 먹고 살아간다. 너희는 남의 나라의 비극을 알리고 그렇게 르완다를 위해 모금된 돈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르완다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가만 보면 너희들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돈이 꽤 된다. 그리고 모금된 전액을 르완다에 보낸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p.56
분명한 것은 지역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에 우리 사이에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굿네이버스가 그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이렇게 열심히 해내는 지역주민이 처음에는 왜 그렇게 시큰둥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NGO와 지역주민이 서로를 신뢰하는 것은 사업을 진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말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맨 처음 이 논의가 진행될 때 저는 개인적으로 걱정이 앞섰습니다. 지역주민의 수는 많은데 양어장 두세 개로 소득증대가 일어날 수는 있을 것인지, 소득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양어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대와 소망을 일으킬 수 있을지 …… 자신이 없었습니다. 책임자로서, 더 크고 멋진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양어장사업은 첫 시작이라는 의미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큰 기대도 바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돌아본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지역개발이라 부르고, 어떤 사업이 지역주민을 개발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창피했습니다. 깊은 부끄러움에 쉽사리 잠들 수 없는 긴긴 밤이었습니다.--- p.90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개발을 진행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것입니다. 끝까지, 내가 있는 이 땅,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는 자세 말입니다. 당장은 그럴싸한 열매가 열리지 않더라도, 우리와 함께하는 지역주민을 믿는 것. 언젠가는 그들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개발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북돋아주는 것. 이는 결국 우리가 이 길을 지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지역주민과 뒤엉켜 함께 웃고 울고 …… 때론 서로를 원망도 하면서 말이죠.--- p.109
우리가 지하수를 파주겠다고 장비를 갖고 마을에 들어가면 그 마을은 이미 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가뜩이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족들인데 우물을 파준다니, 주민들은 우리가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한바탕 춤을 추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요. 물론 때로는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안내하지만 이미 깨끗한 물을 마실 생각밖에 없는 지역주민들에게 그 이야기가 들릴 리 없습니다. 마을의 어린아이는 작업현장을 떠나지 않고 우리를 부담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하루 이틀을 기다렸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그 실망감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쓰립니다. 그들의 좌절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철수해야 할 때는 정말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열악한 장비와 부족한 경험을 뼈저리게 느끼며 다시 꼭 돌아오겠노라 다짐을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하수를 개발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면 수도로 다시 복귀해서라도 파트너를 수소문해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나이로비로 올라오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열악한 장비와 경험의 부족으로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pp.216-217
새로 개발된 고무패킹을 받아 들고 현장에 가서 처음으로 기존 부품을 교체했을 때, 최근 유행하는 적정기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무척 신이 났습니다. 개발 현장에도 깊숙이 뿌리내린 시장경제의 논리에 반대하며 지역주민들에게 좀 더 오랫동안 펌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려는 노력과 고민, 이윤이나 다른 어떤 목적 없이 순수하게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 모여 이제 지역의 펌프는 지금까지보다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부분은 아니지만 결국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이룬 협력이야말로 바람직한 기업참여형 민관협력(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p.235
이로써 하나의 지역공동체 안에 전통적 리더들과 젊은 리더들 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구호단체의 입장에서는 제한된 기간 내에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원조사업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지는 이해관계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로써 파급되는 부족 내 갈등, 심지어는 지역공동체가 해체되거나 분쟁을 겪기도 하는 부작용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년 사업을 진행하고 나면 남는 것은 파괴된 지역과 스태프로 활동했던 현지인에 대한 반목, 지역 안에서의 빈부 격차, 상대적 박탈감 등 다양한 부작용만 남고 단체는 스스로 사업 잘했다고 평가한 후 떠나버립니다. 외부의 지원은 어떠한 식으로든 지역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p.237
지역정부는 영원하다. 원조사업은 어디까지나 지역정부의 팔과 다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원조사업 현장에 있으면, 이 단순하고 자명한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필자 역시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주어진 시간 안에 목표로 한 사업비를 지출하고 사업 요소들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더 근본적인 원칙들을 간과할 때가 많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해 어쩌면 반드시 밟고 건너야하는 징검다리일 수 있다. 사업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낀 교훈들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또 하나의 돌다리를 놓는다는 생각으로 사례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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