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대부분의 내 기억에는 날짜가 없다. 나의 기억력은 아주 불확실하다. 너무도 불확실하여, 때로 나는 그 불확실함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대치 무엇을 증명하는가란 문제에 이르면,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애당초 불확실함이 증명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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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먼저 제목에서 시작하였다. 내가 쓴 단편소설은 다수가 제목에서 시작된다. 내용은 정하지 않고, 우선 제목을 생각한다. 그리고 첫 장면을 일단 쓴다. 그런 후에 비로소 스토리가 전개된다 ― 그런 방식이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런 방식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여 도중에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말해 이 방식은 상당히 내 성격에 부합되는 듯하다. 소위 소재니 테마니 하는 딱딱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더듬어 추구해 나가는 사이에, 자발적으로 줄거리가 점차 퍼져나간다. 써나가는 동안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자연방출적인 작업 자체가 내게는 상당히 스릴 있고 흥미롭다.
이 작품은 내가 쓴 기념할 만한 ― 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첫 단편소설이고, 그 제목을 먼저 정하고 쓰는 방식의 선구적인 작품이기도 하다(『1973년의 핀볼』도 실은 제목부터 시작하였지만, 장편이므로 단편과는 방식이 약간 다르다). 물론 예의 소니 롤린스의 연주로 유명한 ‘온 어 슬로보트 투 차이나’에서 제목을 땄다. 내가 이 연주와 곡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중국행 슬로보트』란 말로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나 스스로도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꽤 많았다. 하지만, 스스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제법 열심히 건투를 하지 않았나 싶다. 서투른 나름으로 열심히, 거친 말을 길들이듯, 마지막까지 낙마하지 않고 소설에 매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골치 아픈 얘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당시에는 뭐가 어렵고 뭐가 어렵지 않는 것인지 잘 몰랐으므로 전력을 다해 썼다. 전집 수록에 임하여 중반부 이후에 상당한 손질을 하였다. 가능한 한 오리지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세부를 교통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역시 다소 색깔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 무라카미 하루키 '내 작품을 말한다' 중에서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이 도쿄의 지하철 차내와 택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의 대합실과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 그리하여 어느 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거리마저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 밖에서 느닷없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전철표를 꼭 쥐고 그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뿌려지고 ,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한다. 그것은 차츰차츰 상실되어간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상실되고,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어느 사인가 뿌옇게 사리져간다. 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러 여겨졌던 따분한 청춘기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였던 시절의 미미한 자부심이나마 트렁크 바닥에 채워,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에 언젠가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리리라. 그리고 중국 거리의 반짝이는 지붕을 그리고, 그 푸르른 초원을 생각하리라. 상실과 붕괴 뒤에 그 어떤 것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내야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만약 그것이 정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나 친구여, 중국은 너무도 멀다.
--- pp. 42-43
그리고 그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앉은 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빈 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시계는 이미 열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그 밤에 저지른 두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아홉시간이나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너무도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는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성냥곽까지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힘 닿는 한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번호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의 학생과에도 문의를 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그 이후 그녀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내가 만난 두번째 중국인이다.
---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