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힘. 습관의 행복. 가족 간에 굳어진 일상이 주는 변함없는 기쁨. 하루하루의 이 소소함이 우리를 만들고 모든 것을 바꾸죠.
--- p.24
난 최고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최고의 엄마와 나, 그사이는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최고의 엄마는 은하계 저 멀리서 나를 비웃는다.
--- p.32
루이는 여러 차례 자신의 아빠에 관해 물었고, 엄마는 여러 차례 루이의 아빠에 관해 물었다. 엄마가 거의 맞힐 뻔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늘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지킬 수 없는 삼각관계보다는 엄마와 아들이라는 심플하고 독점적인 관계가 더 좋았고, 재구성된 가족보다는 해체된 가족으로 남는 편을 택했다.
--- p.59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개봉 당시 10대였던 나는 이 영화에 완전히 매료되고, 압도되었다. 강인하면서 섹시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두 주인공은 나의 절대적 기준, 그러니까 일종의 이상적인 여성상 같은 것이 되었다. 신이라고는 믿어본 적 없던 내가 이 영화에서 운명의 계시 같은 것을 본 것이다. 델마라는 이름은 옛날 디스코 노래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상징성을 띠게 되었다. 그다지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내게 긍정적인 흔적을 남겼다. 델마와 루이스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여성, 결코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 스스로 헤쳐나가는 여성의 상징이었다.
임신했을 때, 아이를 낳기로 그리고 아빠 없이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이 아이가 딸이길, 그래서 이름을 루이스로 짓길 바랐다. 하지만 루이스는 보다시피 아들로 태어났다. 그렇게 됐고, 그대로도 정말 좋았다. 루이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남자다.
--- pp.104-105
사회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멋진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인맥은 많았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없었다. 사랑과 우정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노력을 오래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루이의 아빠를 떠나면서 그만두기로 했다. 루이의 사고 이후 내 소식을 묻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나는 답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많은 친구가 있었고, 실생활에도 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그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내 우선순위는 늘 분명했다. 루이를 잘 키우는 것,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
--- p.108
“넌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여자도, 완벽한 딸도 아니야. 이건 내가 장담하지……. 하지만 넌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한단다.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헤쳐나가는 거야. 완벽한 엄마 따로, 바보 같은 엄마 따로 있는 게 아니란다, 우리 예쁜 야옹이. 내가 너와 루이가 함께 있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잖니. 루이의 눈에 너는 완벽한 엄마야. 왜냐면 너는 그 애 엄마니까. 이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말렴. 루이가 지금의 루이일 수 있는 건─내 손자여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똑똑하고, 똑 부러지고,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지─네 덕분이야. 루이를 기른 건 너야. 넌 그걸 자랑스러워해도 돼. 아니, 아무 말 마라. 고개를 흔들어대는 걸 보니 너보다 더 바보 같은 말을 하려고 그러지. 넌 널 자랑스러워해도 돼.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엄마는 딱 필요한 순간, 삶에 관한 장광설로 내가 눈물을 쏟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이 또한 엄마의 역할이겠지.
--- pp.153-154
한 아이와 둘만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루이와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일에만 얽매여 있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는지. 조용히 눈물이 차올랐다. 언제부터 나는 루이와 단 두 시간, 길지도 않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게 된 걸까? 눈물에 수치심이 뒤섞였다. 수치심이 이끌고 온 말들, 델마, 너는 나쁜 엄마였어,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훨씬 잘했어야 했는데, 이 무겁고 끔찍한 진실의 말들이 나를 짓눌렀다.
--- p.164
악몽을 꾸고 난 후에는 늘 새로운 날이 밝는다. 나는 루이의 사고 이후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려앉은 어둠이 아무리 짙더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길은 언제든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