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내가 복음주의적 성공회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곰곰이 생각하며 이 서문을 쓰는데, 호주에서 성공회는 1788년 1월 26일에 첫 선단이 시드니 코브에 도착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선단과 함께 복음적인 성공회 사역자가 목사로 부임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리처드 존슨(약 1756~1827년)이었다. 같은 해 2월 3일에 존슨은 호주에서 기독교 복음을 최초로 설교했다. 시드니 도심지에 세워진 기념비는 존슨이 설교한 장소를 표시하며, 이 설교가 행해진 날짜와 설교 본문이었던 시편 116편 12절을 기념한다. 또 한 사람의 복음적인 목사가 존슨의 뒤를 이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새뮤얼 마스던(1765~1838년)이었다. 1792년에는 경건하고 복음적인 신자였던 토머스 무어(1762~1840년)가 배를 만드는 장인으로 브리타니아 호에 승선했다. 1796년에 무어는 뉴사우스웨일스 자치령의 정식 선박 제조자가 되었는데, 이후에 계속해서 시드니 남서쪽 32킬로미터에 위치한 리버풀에서 성공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세웠다. 1840년에 세상을 떠난 토머스 무어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뉴사우스웨일스 자치령에 소재한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특별히 무어는 “기독교 지식의 원리로 젊은이들에게 개신교 신념을 교육하기 위한” 대학을 설립하는 데 많은 금액을 할당할 것을 지시했다. 1856년에 2대 시드니 주교 프레더릭 바커(1808~1882년)는 토머스 무어의 유지를 받들어 리버풀에 있는 무어의 소유지에 신학교를 설립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3차 교육 기관 중 하나인 무어 신학교는 세 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는데, 내가 글을 쓸 시점에는 학생수가 100배로 증가했다. 1891년에 무어 신학교는 뉴타운 근교에 소재한 시드니 대학교 인근 지역으로 이전했다. 바커는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는데, 캐임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찰스 시므온(1759~1836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시드니에서 복음적인 기독교가 언제나 순탄하게 발전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중국 서부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복음적인 주교 하워드 몰(1890~1958년)이 1934년에 시드니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몰은 시드니 교구에 복음주의의 특성을 확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교회 선교회 회장이었던 토머스 채터튼 해먼드(1877~1961년)는 1935년에 무어 신학교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비록 강조점과 양식이 독특하기는 했지만, 해먼드가 보여 준 단호한 복음주의적 태도는 무어 신학교와 시드니 교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나는 이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 유산을 시드니 교구의 일반 신도 및 성직자들과 공유한다. 내가 이 책을 헌정하는 도널드 로빈슨 박사님과 공유하는 것도 바로 이 유산이다. 나는 이 유산이 하워드 몰을 계승한 대주교들과 해먼드를 계승한 학장들의 지도 아래서 발전하는 과정을 목격해 왔다. 하워드 몰 대주교는 내가 무어 신학교의 학생이자 강사로 있었던 1958년에 나에게 성공회 성직을 서품했는데, 해먼드가 임기를 마치면서 했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도널드 로빈슨 박사님과 나는 시드니 교구의 이런 기풍을 공유할 뿐 아니라, 캐임브리지 대학교 신학 교수들의 기풍도 공유한다. 로빈슨 박사님은 성경신학을 별개의 학문 분야로 이해하는 접근법을 지지하시는데, 이런 접근법으로 이 연구를 진행하도록 동기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로빈슨 박사님께 신세를 진 셈이다. 로빈슨 박사님은 신학교에서 나의 은사이셨고, 내가 무어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동료가 되었으며, 이후로도 줄곧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이셨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사고와 삶을 형성하는 데 은혜를 입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작품에 기여한 다른 지도자와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마커스 로언, 데이비드 브로틴 녹스, 앨런 콜, 브루스 스미스, 그레이엄 델브리지, 존 채프먼 등과 같이 시드니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포함된다. 캐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피터 아크로이드, 찰리 모울, 데이비드 윈튼-토머스, 헨리 하트의 수업을 듣는 혜택을 누렸다. 이후에 버지니아 주 소재의 유니언 신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나는 존 브라이트와 패트릭 밀러의 지도를 받으며 큰 유익을 얻었다.
1973년과 1974년에 나는 무어 신학교에서 성경신학 객원 교수를 지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로빈슨의 도식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성경신학 개론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은 이 강의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라고 나를 격려했는데, 애초에 내가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생각했던 이 기획은 마침내 현실화되어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1981년)로 빛을 보게 되었다. 패터노스터 출판사가 이 책과 다른 두 논문을 추가로 간행했다. 나는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1991년)의 출판을 통해 국제 기독교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인연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 데이비드 킹던, 그리고 더욱 최근에 국제 기독교 출판사 신학 서적 선임 자문 편집인으로 있는 필립 듀스 박사에게서 세심한 제안과 논평과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점에 대해 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내가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면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시드니 교구에 있는 우리 교회와 국제 복음주의 학생회 호주 지부 산하 단체인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이다.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은 국제 기독교 출판사와 관련된 기독학생회에서 시작되었는데, 시드니 교구와 무어 신학교의 복음주의는 모두 영국 복음주의에 공통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영적인 토대, 교리적 신념, 기독교 정신을 공유하는 출판사와 좋은 실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대단히 흡족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기획을 완성하기까지 나처럼 도널드 로빈슨 박사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도움과 격려를 받았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45년 동안 내 곁에서 끊임없이 나의 사역과 연구를 내조한 나의 아내이자 복음의 동반자인 미리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레엄 골즈워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빌람빌 하이츠에서
---저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