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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들

혁명가들

: 마르크스에서 시진핑까지, 세계공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

[ 양장 ]
리뷰 총점7.5 리뷰 2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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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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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5월 0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852쪽 | 1262g | 160*230*40mm
ISBN13 9788932024011
ISBN10 893202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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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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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청년 마르크스와 24세 청년 엥겔스가 만났을 때, 엥겔스의 표현으로, 두 사람은 모든 이론 분야에서 금세 완전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높이 평가했다. 엥겔스는 뒷날 마르크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는 우리들 모두보다 더 높이 섰고 더 멀리 봤고 상황파악을 더 넓고 더 빨리 했다. 마르크스는 천재였다.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기껏해야 재주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p.39 「1부 01장,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들」

원래 베른슈타인은 베를린의 가난한 유대인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에 빠져 사회민주주의자가 됐던 혁명지망생이었다. [……] 그러나 그는 영국에서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면서 영국형의 점진적 개혁주의운동이 거둔 성과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망명생활에서 풀려 귀국한 뒤에는 자신에 대한 매도가 쏟아질 것을 각오하고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을 비판함과 아울러, 의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통한 평화적 개혁노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것은 베른슈타인이 자본주의체제의 자기변화능력을 중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대해 독일사회민주당원들 가운데 대부분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만큼 수정주의의 분위기는 익어왔던 것이며, 그렇기에 당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노이에 차이트』의 편집장인 카우츠키가 게재를 허용했던 것이다. 이 무렵에 카우츠키는 그 이전 시대에 비해 훨씬 더 의회민주주의적이면서 점진적인 개혁주의로 기울고 있었다.--- pp.91-92 「1부 03장, 독일제국의 공산혁명가들」

나치와의 전쟁 시기에 흐루쇼프는 육군중장의 계급을 단 채 여러 전선에서 정치위원으로 활약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공화국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을 지닌 채 우크라이나공화국 총리를 겸했다. 전후 시기인 1946~47년에 흐루쇼프는 잠시 몰락하는 것 같았으나 1948년에 제자리를 찾았다. 1949년에 그는 다시 모스크바 시 및 지역 당 제1비서로 영전됐다. 말렌코프와 베리야의 연합세력, 특히 베리야를 견제하려는 스탈린전략의 결과였다. 우리가 앞 장에서 살폈듯,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뜻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러했기에 1953년의 스탈린사망은 흐루쇼프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폈듯, 흐루쇼프는 우선 베리야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어 경쟁자 말렌코프를 제치고 그해 9월에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만 59세였다.--- p.234 「1부 08장, 같은 곳에 잠든 두 정적」

헝가리의 최고권력자로 30년 이상 군림한 카다르에게도 종말이 왔다. 중부 및 동부 유럽의 공산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자유화의 물결이 닥친 헝가리에서 1988년 5월에 퇴진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의장이라는 한직 하나만 지닌 채 사실상 정치적 은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자유화의 파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카다르는 당의장직마저 내놓게 됐다. 같은 해 6월 16일에 너지의 추모식과 재매장이 이뤄졌을 때 그는 너무나 상심했다. “너지의 비극은 내 개인의 비극이기도 했다”라고 대답하는 것밖에 더할 말이 없었다. 상심이 컸던 탓인지 그때로부터 3주가 지난 1989년 7월 6일에 카다르는 77세의 노령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자연사했다.--- p.351 「1부 13장, 노선을 두고 엇갈렸던 헝가리의 공산주의자들」

(쑹자수의) 3남 3녀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이는 세 딸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다. 아이링은 뒷날 미국 예일대학교 경제학석사로 중국 최고·최대의 전당포연쇄망을 소유해 중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고리대금업자라는 말을 들었던 쿵샹시의 아내가 되고, 칭링은 뒷날 쑨원의 아내가 되며 쑨원이 죽은 뒤에는 중국공산당을 따라가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메이링은 장제스의 아내가 된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아이링은 돈을 사랑했고, 칭링은 조국을 사랑했으며, 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p.405 「2부 01장, 중국공산당의 성장에 디딤돌을 놓은 민족주의자들」

수백만의 홍위병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벌이는 가운데 이른바 혁명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국가와 당의 간부들은 물론 지식인들과 예술가들 가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상검증의 광풍’ 속에 구타나 투옥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했다. [……] 이렇게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철저히 파괴하면서, 마오는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를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관공서와 학교마다 그의 사진이 내걸렸으며, 당원들은 물론 일반 청소년들은 마오의 ‘어록’을 담은 ‘작은 붉은 책’을 언제나 들고 다니며 마오를 찬양했다.
마오쩌둥의 부단혁명론은 같은 시기에 서유럽의 과격한 반체제적 학생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그들은 마르크스Marx, 마오Mao, 마르쿠제Marcuse의 ‘3M’을 부르짖으며 가두에 나서 자본주의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화대혁명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20년, 아니 30년이나 후퇴시킨 큰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p.478 「2부 03장,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

호찌민은 대체로 베트남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다. 베트남을 애인으로 삼아 결혼도 거부한 채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의 애국심, 프랑스와 일본 및 미국 등 세 강대국에 차례로 맞서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성취한 민족주의적 지도력,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균형 있게 운신함으로써 국가의 이익과 위신을 지킨 외교력, 이루 말할 수 없이 검소했던 생활, 죽어서도 남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청렴결백한 삶 등이 사랑과 존경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에 대한 반론이 없잖다. [……] 호찌민은 필명을 사용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두 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부이틴은 또 호찌민의 지도력에 한계가 있었다고 썼다. 특히 1950년대 중반의 농업개혁 시기에 베트남사람들은 그 방법을 둘러싸고 분열됐는데 호찌민은 통합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호찌민이 오늘날까지도 베트남국민들로부터 국부로 존경을 받고 있음은 사실이고, 그가 통일을 위한 베트남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음도 사실이다. [……]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그의 이름을 따서 호찌민으로 불리고 있다.--- pp.723-724 「2부 11장, 베트남의 독립영웅」

일본공산당은 1932년의 검거로 완전히 해체돼 지하로 들어갔고, 전위조직들도 모두 와해됐다. 그리하여 1933년부터 일본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은 몇몇 작은 그룹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그 그룹들이 통일됐던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들은 늘 서로 충돌했고 그나마도 모두 경찰에 검거됐다. 이로써 베크먼 교수와 오쿠보 교수의 공저 『일본공산당, 1922~1945』가 지적했듯, 일본공산당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후퇴의 세월’을 경험했던 것이다.
--- p.779 「2부 14장, 후퇴의 시기와 합법화시대의 일본공산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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