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꽃들은 허물어진 화단에서 저 혼자 피고 졌다. 나는 풀이 무릎까지 수북하게 자란 마당에서 일회용 봉지커피를 타 마시며 노근리 쌍굴을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 노을이 지면 마당의 풀들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드러눕는데 어떤 꽃도 폐가의 풀만큼 아름답진 않았다.
나는 CAL30 M1919 기관총 사수였다. 제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했던 그것을 들고 노근리 쌍굴을 지날 때마다 묘한 기시감에 시달렸다. 쌍굴 벽의 무수한 탄흔이 다름아닌 내가 메고 있던 CAL30 실탄 자국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의 부대는 그곳에 있었고, 제대 육 년 후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이현수 작가의 등단 현장에 내가 있었다. 그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그도 왠지 대답해주지 않았다. 1999년 AP통신이 첫 보도를 했고, 2002년 BBC가 다큐로 조명했다. 이제 우리 소설 차례다. 마침내 이현수의 대답이 나온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육십삼 년 전 7월의 ‘나흘’로 돌아간다. 그가 썼고, 내가 읽었다. 그가 얼른 대답해주지 않았던 아픈 까닭을 알았다. 이제 여러분이 읽을 차례다. 구효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