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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살인자에게

김선미 | 연담L | 2020년 02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42건 | 판매지수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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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454g | 140*205*22mm
ISBN13 9791165091002
ISBN10 11650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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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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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기는 몰랐다. 우리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돌아오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여겨주는 편이 더 위안이 된다는 걸.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게는 일가족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가 있다. 사업 실패를 비관해서 가족을, 그러니까 나와 엄마와 형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세상엔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 p.14

형이 캐리어 가방을 열었다. 접어둔 옷들은 얼핏 보아도 디자인이 세련돼 보였다. 일하는 곳에서 받은 것들이라고 말하며 형이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은 문신들이 팔뚝을 넘어 가슴과 등허리까지 새겨져 있었다. 문신은 여덟 자리의 숫자들이었다. 같은 숫자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날짜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갈라진 땅 사이로 쑥 빠진 것처럼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그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야. 나는 그 남자를 죽일 수도 있어.’
형은 서울로 떠나가기 전날 내게 그렇게 말했다.
--- p.26

우리 가족도 어정쩡하게나마 테이블을 끼고 둥글게 모여 섰다. 옆의 가족은 소원등 양옆에 빼곡한 글씨로 소원을 적고도 모자랐는지 빈자리를 찾아서 등을 요리조리 돌려보는 참이었다. 우리 식구 건강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평범한 소원들이, 너무나 평범해서 빌 수조차 없던 소원들이 그들의 손에서는 망설임도 없이 휙휙 적혀가고 있었다.
“뭐라고 쓸까요?”
가족들 모두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 p.65

“형은 아버지가 왜 우리랑 같이 죽으려 했다고 생각해?”
나 역시 동반자살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았다. 그러나 형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려야만 했다. 아버지가 반장을 죽였을 거라고 보냐는 질문에 형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저수지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띄워진 소원등들이 침몰해가는 중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죽일 수 있어.”
--- p.140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조용한 시골 마을이 유일하게 북적이는 유등 축제 기간,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고등학생 진웅이에게 특별한 손님 두 명이 찾아온다. 가족을 모두 죽인 뒤 자살하려다 실패해 아내만 죽이고 감옥에 간 아버지와 살인 누명을 쓰고 마을에서 떠나야 했던 형이 그 손님들이다. 십 년 만에 재회한 가족은 밥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부터 소원등에 가족의 소원을 쓰는 것까지, 여느 가족에게는 아무렇지 않을 일상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껄끄럽다.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웅이의 가족은 폐쇄된 양계장에서 시신을 발견하면서 살인 사건에 또다시 휘말리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진웅이의 아버지는 신고자이자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되고, 경찰의 수사망이 아버지에게 집중되면 될수록 진웅이는 진짜 범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형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는데…….
아버지와 형 중에서 누가 자신의 반 반장을 죽였을지 의심하는 진웅, 술에 취해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의 기억을 잃은 아버지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오랫동안 혼자 품어온 형 진혁의 같지만 서로 다른 각자의 밤이 엇갈린다. 밤이 이어지면서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사실을 넘어서 ‘이 비극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진실이 서서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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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가장 처참한 비극은 대체로 가족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그 타살을 동반한 자살 시도가 실패하고 결국 남은 건 죽지 못한 아버지와 엄마의 죽음을 목도한 두 형제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다시 만난다. 예감처럼 비극은 재개되고 닷새 동안의 일이 세 명의 목소리로 반복되는데, 점점 속도가 붙은 이야기는 어느 순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치달린다.
좋은 추리물이 늘 그렇듯 이 소설 역시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서로가 엇갈리면서도 모두 연루되어 있는지 작가는 치밀하게 서술한다. 제각각의 표정을 지은 채 찍은 한 장의 가족사진처럼 이들의 마음은 각자의 고통과 상처,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하나의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카메라가 서서히 우리를 향해 돌아서서 말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 노태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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