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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별을 보다

한낮에 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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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31쪽 | 370g | 153*224*20mm
ISBN13 9788964950494
ISBN10 8964950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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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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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떠난다.
때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더구나 아내와 자식들이 나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떠날 거란 뜻이다. 나는 떠나고 이제 그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을 것이다. 떠올리는 순간 그때 그곳에만 존재할 것이다. 떠올리는 순간이 정해져 있지 않듯이 떠나야 할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차원이 같지 않은 세계에 존재하게 된 것뿐이다.
이승의 인연은 벌써 끝이 났다.
내가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내쉬지 않는 순간에 끝이 났다. 부부의 인연, 자식과 부모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랬던 기억이 그들의 영혼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다행히 영혼이 성숙하면 다른 차원을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가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다. 각자의 몫이다.

불이야! 불!
저런 나쁜 놈이 있나. 홧김에 불을 질러?
저 못난 줄 모르고 괜히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고 집을 뛰쳐나온 놈이 골목길에 세워놓은 차에 불을 놓았다. 돈이 없는 게 죄라면, 제 놈도 죄인이란 걸 아직도 모르는 철없는 놈이다. 그나마 부모덕에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었다는 걸 알 리가 없다. 날마다 싸움에, 이유 없는 결석에, 그때마다 학교로 달려가 머리를 숙이고 자식 대신 잘못을 빈 부모의 은공은 아직 몽매한 그놈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 중략 -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그놈의 발자국 소리.
탁탁탁!
아니다. 이건 발자국 소리가 아니다. 불꽃이 튀는 소리다. 방석에 불이 제대로 붙었다. 불길은 시트에 옮겨 붙는다. 합성물질이 타는 냄새가 진하게 밤공기에 섞여든다.
집이 빼곡한 주택가 골목길.
큰일이다. 기름통이라도 터지면 큰일이다. 불길이 커지기 전에 꺼야 한다. 11시가 넘은 한겨울 밤. 골목엔 인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집들은 평화롭게 잠에 빠져 있다.
불이야!
나는 소리를 지른다.
이상하다. 아무 반응이 없다.
도둑이야, 하고 소리 지르면 문을 닫고 집안으로 더 꽁꽁 숨지만, 불이야, 하면 너나없이 뛰어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창에 불이 켜지는 집도 없다. 골목은 도리어 무거운 적막 속으로 가라앉는다. 나만 홀로 이상한 곳에 남겨진 것 같다.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다.
이제 불길은 깨진 창틈으로 긴 혀를 널름거린다. 이제 곧 차가 녹아내리고 기름통이 터질지도 모른다. 거대해진 불길이 처마로 옮겨 붙으면 끝이다.
불이야, 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뛰어간다. 불타고 있는 자동차 옆 담장이 바로 우리 집 담장이다. 담장 안에는 부엌으로 연결된 프로판 가스통이 있다. 그리고 집에는 아내와 딸, 정이 자고 있다. 식구부터 깨워야겠다.
대문으로 가 초인종을 누른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밤에 밖에 있었을까.
이상한 생각이 스쳤지만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초인종이 눌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눌러도 초인종은 그대로다. 내 손끝은 초인종 속으로 자꾸 빠지기만 한다.
정아! 여보!
소리쳐보지만 소리는 헛되이 도로 내 귀로 들어온다. 내 소리는 공기를 타고 가지 않는다.
맙소사!
나는 죽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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