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포토 루트 유럽

포토 루트 유럽

: 사진으로 변모하는 유럽의 도시

정진국 | 알마 | 2013년 05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1 리뷰 13건
정가
16,500
판매가
14,85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98g | 153*224*30mm
ISBN13 9788994963839
ISBN10 899496383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 르네상스를 알린 의좋은 삼형제_이탈리아 피렌체, 알리나리국립사진박물관
광장 한 모퉁이에 알리나리재단이 있다. 대리석 성당 정면이 반사하는 아침 햇살에 주변은 그림자 속까지 환했다. 성당 정면과 광장을 사이에 두고 가로로 뻗은 맞은편 길을 막아선 재단 건물은 엷은 잿빛이었다. 길 건너 호텔과 높은 건물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청소차와 출근하는 사람들의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지나다닐 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광장을 서성대면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광장 분수대는 물이 말랐다. 사진이 한창 보급되던 19세기 후반에 북유럽 문인들이 엉덩이를 지지며 시와 문장을 떠올렸던 자리다. 존 러스킨, 헨리 제임스…. 사진을 신통하게 여기지 않았으면서도 알리나리 형제만은 극찬했던 사람들이다.

이곳 알리나리재단에서 서양미술의 역사를 고품격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바티칸과 피렌체의 성당과 수도원, 궁전과 장원의 벽에 붙어 있던 걸작을 촬영한 알리나리 형제의 사진은 품격이 높았다. 르네상스 예술의 저자들은 그 사진을 보며 공부하고 글을 썼다. 여행하기 어렵던 당시에 저자들은 현장답사도 했지만 사진만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학자와 예술 애호가들은 이탈리아로 여행 가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배웅하면서, 알리나리 형제의 사진첩을 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각국 대사들도 그들의 사진첩을 구입해 본국으로 보냈다. 사람들은 원색도 아닌 흑백사진을 보면서 미켈란젤로의 벽화와 라파엘로의 성모상에 감탄하곤 했다. 파리와 런던의 만국박람회장에 걸린 형제의 사진을 보며 고대와 중세의 유적과 예술작품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베네치아 사람들의 베네치아_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포르투니
베네치아가 조용할 날이 있을까? 한 폭의 파노라마사진 같은 도시, 셔터 누르는 소리가 곤돌라 뱃사공 노 젓는 소리를 집어삼키는 곳이다. 길바닥이든 다리 위든 어디서나 걸음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기 더없이 좋은 포토 존이다. 푸른 물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한번쯤 포즈를 취하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은 베네치아 사람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힌 명소는 파리의 에펠탑광장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베네치아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찍힌 ‘도시’라고 할 만하다. 기념사진의 기념비로 넘치는 도시.

카를로 나야와 폰티, 두 사람의 사진은 호황을 누렸다. 전경에 대담하게 클로즈업한 곤돌라를 배치하고 후경에 둥근 성당지붕과 다리를 보여주는 식의 사진이다. 관광객들의 수브니르souvenir, 즉 관광기념품 사진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이런 사진을 엽서로도 대량복제했다. 관광객들은 저마다 카페에 앉아 이 엽서 뒤에 편지를 썼고, 폰티와 나야의 사진들은 엽서에 실려 전 세계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진발 좋은’ 명당을 찾아내면서 베네치아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었다. 관광객들은 그들이 찍은 성당 앞과 난간, 다리와 나루터로 몰려들었다.

* 사진의 수호신이 사는 이미지의 도시_스위스 브베, 스위스사진기박물관
“브베, 이미지 도시”라는 격년마다의 축제 때문일까? 차분하지만 따분해지기도 하는 호숫가 광장에 뜻밖의 활기를 불어넣는 이미지가 나타난 다. 호변에서 공사 중인 건물의 거대한 가림막 사진이다. 가림막 위에서 베이징의 천단이 바람에 풀럭였다. 비행접시라도 날아와 앉은 것일까. 레만 호수에서 보는 천단은 마치 먼 우주에서 온 정체불명의 비행체 같았다. 그 앞의 군복차림을 한 중국인 이미지 또한 외계인인 양 묘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광장은 어떤 미래의 우주정거장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명기는 다채롭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는 것은 스위스 피뇽 사 제품인 알파카메라다. 알파의 계보는 이곳에서나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줄줄이 신형을 내놓았던 b시리즈부터 1960년대의 c, d, f 시리즈까지…. 알파는 다양한 모델로 소량 생산되었고 또 주문 생산했던 유일한 소형 사진기라서 수집가를 들뜨게 한다. 가장 복잡하고 세련된 1950년대의 알파8은 245대만 생산했다. 알파9f는 동체 크기까지 주문하는 사람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는데 170대만 생산됐다. 그리고 1944년 출시된 알파리플렉스는 이 시리즈 가운데 성능이 가장 뛰어났다. 반사경을 붙여 화면을 시원하게 볼 수 있었고 커튼식 셔터를 내장했다. 소형 촬영기 볼렉스Bolex를 발명한 자크 보고폴스키Jacques Bogopolsky의 걸작이다. 이 소형 사진기는 근접촬영에 뛰어나지만 무겁고 빠르게 다루기 어려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 이상향 엘리제를 향한 여로_스위스 로잔, 엘리제사진박물관
사진, 또는 사진예술만을 다루는 엘리제박물관은 국제적 위상이 높다. 사진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의욕으로 전시회, 축제,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세계 사진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사진의 이상향 같은 곳이 있다면 여기가 가장 가까우리라. 한여름 저녁에는 여러 나라 사진가들이 이 뜰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선배들이 옛날에 고생한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머나먼 대륙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현대사에 관한 끝없는 화제를 쏟아내기도 했다. 엘리제박물관은 그렇게 사진가의 무용담으로 넘치곤 했다.

전시회가 담아낸 사진들은 현대적 비극의 대서사시였다. 로버트 카파야 당연히 제단에 올라 있었다. 뜻밖이면서도 다행스러운 건 질 카롱Gilles Caron이다. 서른 살에 캄보디아 정글에서 사망한 이 젊은 사진가는 이 전시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사진가는 어느 직업보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희생자도 많이 나온다. 어느 예술가도 자살하는 경우가 아닌 한 이렇게 목숨을 위협받지는 않는다. 군경과 소방관도 살신성인을 하고 종교인도 순교를 하지만, 사진가처럼 억울하게 흉탄과 파편을 맡고 사고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강한 체력과 의지가 필요한 사진가들은 대부분 건강한 청춘남녀였다는 점이다. 워낙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살아남는다면 대체로 몸이 튼튼하고 장수하지만, 사고로 인해 꽃다운 나이에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사진이라도 남아야 개죽음을 면한다. 이 전시회는 사진가는 누구인지, 세상의 전쟁과 갈등은 왜 끊이지 않는지 차분히 돌아보고 반성하는 자리였다.

* 사진의 첫 번째 위인, 니엡스의 고향_프랑스 샬롱쉬르손, 니세포르 니엡스 박물관
니스 항을 떠나 론 강변을 거슬러 부르고뉴 땅으로 향하는 내 마음 은 착잡했다. 니세포르 니엡스가 신혼 시절부터 10년이나 니스에서 살았는데 그의 자취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상 최초의 사진 발명가, 사진의 진정한 위인 니엡스는 부르고뉴 지 방의 소도시 샬롱쉬르손 출신이다.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샬롱쉬르손 시내 에 있다. 손 강변 옛 나루터 앞의 과거 왕립우체국 건물이다. 그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그 나루에서 손 강, 론 강, 루아르 강 뱃길을 따라 멀리 지중해와 대서양 연안까지 우편물과 사람이 왕래했다. 그 둑 앞 로터리에 니엡스의 동상이 서 있다.

니엡스는 양친 모두 변호사인 가문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성직자가 되라는 부모의 뜻에 맞서 혁명군에 입대해 니스에서 10년을 보냈다. 그후 귀향하고 나서부터 시골집에 칩거하면서 엔진, 염색제 개발 등 발명에 몰두했다. 특히 석판화를 좋아한 그는 그 기법을 세련되게 발전시키고자 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집념과 노력 끝에 마침내 1826년 첫 번째 성공을 한다. 최초의 사진술 엘리오그라피였다. 이는 다게르가 파리에서 최초의 사진술을 공표한 1839년보다 12년 전이다. 하지만 니엡스의 사진술은 공인받지 못했다. 대신 그와 협력하던 다게르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했다. 말하자면 니엡스는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운 운동선수와 같은 신세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발명이 공인받기도 전에 작고하고 말았다. 발명품의 명칭도 ‘다게르 식 사진’이라는 뜻으로 다게레오타입으로 결정되었다. 훗날 사진이 포토그래피라는 명칭으로 다시 바뀐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몇 해 전 이곳 샬롱쉬르손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대발견이 있었다. 프티오 그로피에의 암실이 발견된 것이다. 보통 암실이 아니다. 이곳의 발굴로 초기 사진술의 비법이 모조리 폭로되었다. 암실에 초기 사진기와 사진, 교재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무결한 상태의 화학제품 300여 병도 나왔다. 1830년대 이전에 출간된 광화학과 사진술관련 도서는 400권, 그리고 다게레오타입과 습판사진 장비도 나왔다. 발굴된 암실은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작업실이었다. 경악할 만한 ‘세기의 발굴’이다. 그가 문을 걸어 잠그고 사라진 뒤 152년 동안 단 한 번, 단 한 사람 그곳을 열고 들어가보지 않았다. 굳게 닫혀 있었다. 이 기적은 성실하게 작업한 프티오 그로피에 못지않게, 그런 낡은 공방을 구질구질하다고 치워버리지 않고 수세대 동안 보존한 가족들의 교양 덕이다.

* 인간미 넘치는 인본주의 사진의 최전선_프랑스 장티이, 로베르 두아노 사진의 집
두아노는 수도 파리에서 변두리 서민의 일상과 애환을 촬영했다. 허름한 카페도 찍었다. 시청 앞을 지나가는 애인 사진은 오히려 화려한 편이다. 두아노는 사진 찍히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상을 포착한다. 그의 사진에는 유머와 노스탤지어, 아이러니와 정다움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관광객에 가려 보이지 않는 ‘오늘의 원주민’이 그의 주인공이었다. 직인, 선술집 점원, 거지, 거리의 꼬마, 연인, 센 강의 뱃사공…. 파리의 소시민들이다. 그 사진들은 다시 보면 볼수록 새롭다. 사람 사는 빤한 모습을 찍은 것이고, 유별난 기교를 부리거나 형식을 추구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인본주의 사진가들은 사람에게 으스대거나 위압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그들은 반죽이 좋다. 까칠하고 고독한 예술가가 아니다. 고독은 사실 열등한 관념이다. 왜 외롭게 궁상을 떨면서 고독을 예찬해야 할까.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기쁨만큼 살맛나는 재미가 어디 있다고. 인본주의 사진가들은 실실 웃으면서 사진 찍힐 사람과 금세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사진은 어차피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사진에 찍혀줄 타인이 없다면 사진가도 없다. 따라서 사진가의 눈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먹고 떠들고 춤추고 즐기는 공간을 겨냥했다. 카페, 장터, 식당, 공원 등 전혀 엄숙할 것 없는 소탈한 공공장소였다. 누구나 쉽게 사랑에 빠질 만한 분위기 있고 물 좋은 동네를 찾아다녔다.

* 해가 지지 않는 사진 산업의 왕국_벨기에 안트베르펜, 포무FoMu
포무의 컬렉션은 세계 제일의 사진기 컬렉션이라고 뻐길 만하다. 이는 벨기에라는 나라의 배경에서 나오는 힘이 아닌가 싶다. 벨기에는 영국 같은 ‘사진 왕국’, 프랑스 같은 ‘사진 제국’은 아니다. 또 독일 같은 ‘카메라 공화국’, 일본 같은 ‘카메라 천국’도 아니다. 하지만 벨기에는 ‘사진 산업의 왕국’이다. 벨기에 왕국이 1831년에 탄생했으니까 최초의 사진보다 네 살이나 어리다. 그럼에도 강대국 틈새에서 주눅 들지 않고 렌즈와 셔터 부품, 필름과 엑스레이 원판 등 사진 산업을 제패했다.

전시실을 더 따라가본다.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 시대를 연 사진기도 여러 점 있다. 벨기에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개발한 재료로 몸체를 만든 가볍고 실용적인 카메라들이다. 미국산 아거스Argus, 프랑스산 펙스Fex도 각각 수십 종씩 전시되어 있다. 여행갈 때 가볍고 들고 다닐 수 있어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품들이다. 훗날 값싼 일본 사진기가 나오면서 이들의 시대도 저물었다.
덧없는 유행을 오르내렸던 싸구려 제품들에 이어 마침내 명품이 나타났다. 차이스 이콘 사의 콘타플렉스가 각광을 받으며 높은 좌대에 놓여 있었다. f1.5 소나 표준렌즈가 위아래로 두 개 붙어 있다. 1935년에 나온 이 카메라는 역사상 가장 비싼 소형 카메라였다.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또 카메라에 노출측정기를 붙인 첫 사례여서 사진의 역사에서 의미도 깊다. 콘타플렉스가 보석이라면 간돌피Gandolfi는 보석함이다. 번지르르한 마호가니에 구리 쇠시리…, 대형 사진기의 ‘고딕’ 유물처럼 간돌피가 전시실에서 위용을 자랑한다. 이 사진기는 1885년 런던에서 처음 나왔는데 지금도 생산되고 있으니, 정말 은퇴할 줄 모르는 ‘영원한 현역’이다.
우리나라 기자들도 꽤 들고 다녔던 스피드그래픽도 있다. 1930, 40년대에 활약했던 뉴욕의 사진기자 아서 위지의 유품이다. 스피드그래픽은 1970년대까지 보도사진을 책임졌던 ‘에이스’ 사진기다. 1950, 60년대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특파원들도 애용했다. 한때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사진관이 많던 삼각지 주변에서 유통되기도 했다.

* 유럽의 맨해튼에서 만난 영웅들_네덜란드 로테르담, 네덜란드국립사진센터
로테르담항구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교류가 활발하다. 대서양 맞은편 맨해튼 섬의 뉴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미국을 일으킨 사람들의 후손들이 계속 왕래해왔다. 오래전 그들의 이민은 성공적이었다. 로테르담이 뉴욕과 가까이 지내는 덕에 나로서는 좋은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대서양을 건너가지 않고도 미국의 사진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아래층 전시실에서 만난 거장 루이스 하인의 회고전도 그중 하나였다.

루이스 하인의 1930년대 사진은 경기 회복기의 미국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사진집 《인간과 노동》에서 중공업 현장과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미국인의 건실한 이미지를 온 세계에 알렸다. 이른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노동자와 철골이 상징하는 ‘산업적 진보’의 이미지다.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촬영한 사진이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등에 진 채 바람에 휘청대는 사다리를 타고 초고층 빌딩에 기어올라야 했다. 일하는 사람도, 사진가도 곡예하듯 이미지를 남겼다. 같은 미국이라도 서부의 할리우드에서는 총잡이와 목동과 건달을 미국인의 이미지로 내세워 그림자놀이를 즐길 때였다. 하인이 보여준 미국인은 보수적인 웨스턴의 이미지와 상반된 이스턴의 이미지였다. 어쨌든 서부에서든 동부에서든 태평하게 낙천적으로 억척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이 곧 삶의 모든 것이자 목표처럼 된 세상이다.

노동 현장을 바라보는 하인의 눈은 냉정했다. 결코 얄팍한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힘겨운 노동을 직시하면서도 산업 및 기계의 힘과 노동자의 건강한 힘을 함께 주목했다. 이는 그 무렵 소비에트 사진가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른바 ‘산업 전사’를 미화하는 사진, 노동자를 우상화하고 열렬히 응원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실 근로환경과 안전장치가 꽤 나아진 오늘날에도 전 세계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된 일터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며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데 1930년 당시의 노동자는 어땠을까. 하인은 그런 현실을 애써 미화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했다.

* 재도약을 꿈꾸는 독립 갤러리_영국 런던, 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런던 시내에 ‘갤러리’ 이름을 붙인 사진 공간은 많다. 역사적 인물의 초상사진은 트라팔가광장 국립미술관 근처에 있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전문이다. 또 카메라워크 같은 잡지사의 갤러리, 일본 카메라 회사들의 갤러리도 있다. 이곳 ‘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는 현역 사진가들의 활발한 통로다. 사진을 취급하는 최초의 민간 독립 갤러리로서 무명작가의 데뷔 무대로도 중요하다. 사진에 갤러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곳이다. 로버트 카파, 세바스티앙 살가도, 로버트 애덤스 등 해외 다큐멘터리 사진도 일찍부터 소개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값진 영국의 여성 사진가 전통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발언하던 여성 사진가의 전통이야말로 런던 사진계의 자긍심인데…. 지난 세기 초에 여권 신장을 위해 여성 사진가들이 사진기를 둘러메고 돌아다닌 일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중 노라 스미스Norah Smyth는 사적인 이력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였다. 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정관념을 깨는 데 이바지했다. 이를테면 찰스 디킨스 같은 소설가들이 상투화한 이스트엔드의 모습은 사실이 아니었다. “가난하니까 사악하고 또 추악한 사람들의 동네”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스미스의 사진에서 이스트엔드는 환경이 열악할 뿐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꿈 많은 철부지가 뛰어놀고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사는 사람들의 쉼터. 물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촌과 빈촌이 갈리는 냉엄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스미스는 감상적인 참상고발주의의 허구성을 알리며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을 보여줬다.

* 해리 포터의 성이 된 사진 천재의 영지_영국 치펜햄, 폭스 탤벗의 장원
윌리엄 폭스 탤벗은 사실상 오늘날의 아날로그 사진을 발명한 고고학자다. 만약 사진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고고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는 여러 고대어와 천문학과 광화학에 두루 능통한 천재였다. 초창기 사진술을 발명한 다른 사람들과도 구분됐다. 화가, 판화가 등 예술가들은 마술에 홀린 듯 상상을 발휘하고 여러 과학자의 도움을 받은 끝에 사진을 개발했다. 그러나 탤벗은 매우 합리적인 지식을 토대로 실험을 한 끝에 같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이런 여행 중에 스케치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프스 산자락 호숫가에서 수면에 너울대는 풍경을 그릴 때였다. 그는 호수의 아름답지만 덧없는 이미지를 영원히 붙잡아둘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스케치는 스케치일 뿐이고,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실제 그대로의 영상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 마침내 종이를 필름으로 사용하는 칼로타입을 발명했다. 상상을 현실화한 그의 천재성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프랑스에서 사진술의 역사적 발표가 끝난 뒤였다. 그는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종이로 된 칼로타입은 그다지 반갑지 못한 쓰임새를 남기기도 했다. 바로 여권에 신원 확인용 사진을 붙이게 된 것이다. 항상 멀뚱한 수배자처럼 괴상하게 나오는 사진을 누구나 찍게 된 것은 이 위대한 발명이 남긴 난처한 오점이다. 그렇다고 탤벗에게 잘못을 추궁할 수도 없다. 예상치 못한 오남용은 늘 있는 법이니까.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13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4,85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