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역문화재단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역문화재단은 설립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가? 과연 지역문화재단은 주어진 과제를 잘 수행하고 있는가? 필자가 경향신문 문화사업국장을 맡아 공연과 전시를 만들며 현장 경험을 할 때 이런 문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주민들의 문화놀이터, 지역의 문화예술 허브가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략)
당시 내가 보고 느낀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시설과 지역문화재단의 실상은 ‘어떻게 하면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공연과 전시가 무료인데도 관객이 없다’는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시설과 지역문화재단의 이 같은 고민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역주민의 무관심과 외면, 무기력한 지자체의 문화예술시설과 지역문화재단의 운영에도 불구하고 지역 문화예술시설과 지역문화재단은 갈수록 늘어났다. (중략)
이 책은 이러한 문제가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이 양적 팽창에 치중해온 데다가 성과 위주에 중심을 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재단 설립은 지역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데 있다. 이와 함께 지자체 단체장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목적도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역문화재단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은 이를 설립하고 운영을 감독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에 달려 있다. 기초자치단체 지역문화재단의 운영에 있어 큰 편차를 보이는 것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현재 지역문화재단들이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출판이 의미 있다고 판단된다. (중략)
이 책은 지역문화재단의 급속한 증가 추세의 근거를 문화예술정책에 두고 있으며 지역문화재단의 활성화 방안을 문화민주주의 정책에서 찾고자 했다. 문화민주주의의 핵심 키워드는 참여와 공유, 네트워크다. 필자의 연구는 ‘참여’ ‘공유’ ‘네트워크’란 문화민주주의 의제를 바탕으로 표본 추출한 전국 20개 기초자치단체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취지와 미션, 비전, 그리고 주요 목적사업과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분석, 문화민주주의 요소의 정도를 분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책머리에」중에서
문화예술정책은 기본적으로 ‘문화적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왜 ‘문화적 삶의 문제’인가? 문화예술정책에서 비롯된 문화예술향유권은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회의 문제이고, ‘어떤 공연과 전시가 있고, 내가 그 공연과 전시를 볼 수 있는 어떤 혜택이 있는가’는 문화기본권, 문화접근권의 문제다. 당연히 인권적인 문제이고, 문화적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이다. 뒤에 학술적 체계에 대해 기술하겠지만 연구자가 아니라면 깊이 있는 접근보다 기본적인 이해가 더 중요하다. 전체적인 그림과 핵심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개인의 경우 문화권, 문화접근권, 문화예술향유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지자체와 산하 문화재단 및 문화예술시설에서 제공하는 공연·전시 혜택 등 문화적 삶의 기회가 많아진다.
문화예술단체의 경우 지자체의 문화예술정책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언제, 어떻게, 어디로 지원신청을 하고 혜택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기회가 많아진다. 지자체 문화예술정책 담당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철학과 체계가 없으면 ‘하던 대로’ 하게 되고 ‘앞에서 한 대로’ 하게 되고 결국은 지역주민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고 ‘잘 안 된다’는 고민만 하게 된다.
지자체가 어떤 문화예술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이 달라진다. 궁극적으로 지자체 장들이 어떤 문화예술정책을 채택하고, 그 정책을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지방이라고 해서 문화적 혜택이 적거나, 문화적 삶의 질이 낮은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조금씩 깊이 들어가 보고자 한다.
--- p.18~19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는 두 이론 모두 ‘모두를 위한 문화’라는 민주주의적 원리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양자 모두 큰 틀에서는 민주주의적 평등권, 개성을 자유롭게 전개시킬 권리, 예술 활동과 관련 모든 계층의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규제받지 않고 소통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는 지향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다. ‘문화의 민주화’는 클래식 콘서트, 전시 등 ‘고급문화’를 대중들이 폭넓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문화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accessibility ) 강화’가 핵심 개념이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공연장, 미술관 등 문화기반시설의 설치 및 운영,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지원, 공연·전시 프로그램의 입장권 할인, 소외 계층을 위한 ‘문화바우처’ 제공 등으로 나타난다.
‘문화의 민주화’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급예술에 대한 접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티켓 가격의 할인 등 전략을 사용한 데 비해 ‘문화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행사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중점 전략으로 삼았다. ‘문화의 민주화’ 정책이 고급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한 마케팅의 다양화에 중점을 둔 반면 ‘문화민주주의’는 문화다양성을 기반으로 대중들이 문화예술의 창작과 소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 p.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