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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너의 거짓말

영원한 너의 거짓말

제로노블(Zero Novel)이동
전후치 | 동아 | 2020년 03월 0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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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684g | 147*210*27mm
ISBN13 9791163023036
ISBN10 11630230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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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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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번호.”
“24601.”
“이름.”
“그건 왜 물어? 내 이름 모르는 사람도 있어?”
이건 자만심이 아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내 이야기뿐이다. 내 얼굴은 신문에 날마다 실린다. 나는 내 앞에 앉은 이안 커너만큼이나 이름난 사람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 꼭 적국의 비행 대대를 뛰어난 지략으로 격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행정적인 절차다. 이름 대.”
“……로젠 워커.”
“서류에는 다른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 이름이 맞아.”
“네 진짜 이름 따위는 궁금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이 서류에 적힌 이름을, 네 입으로 말해서 나한테 확인시키는 거다.”
“……로젠 하워스.”
높으신 분들이란 고지식해서 종잇장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법을 모른다. 저 종이 쪼가리에 뭐라고 적혀 있든 나는 로젠 하워스가 아니라 로젠 워커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상 모서리에 발을 대고 벅벅 긁었다. 오랫동안 족쇄에 묶여 있던 발에는 욕창이 생겨 있었다. 나름대로 청결을 유지하던 목재 가구에 상처에서 나온 고름이 튀었다. 허연 각질이 먼지처럼 허공에 흩날렸다.
선실의 주인인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몸을 웅크리지 않고 이렇게 쭉 펼 수 있는 건 몇 달 만이었다. 본래 비헤스호는 군용 보급선이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여객선으로 개조되었다. 그래서 선실이 많지 않고,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죄수들에게는 원래 넉넉한 공간이 허용되지 않는 법이다.
한마디쯤 할 줄 알았던 그는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신이 나서 동작을 더 크게 했다.
가려운 곳을 마음껏 긁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손이 묶여 있다는 건 정말이지 좆같다. 발도 마찬가지다.
“열일곱 살에 50년 형을 받고 페린느 여성 교도소에 수감. 1년 뒤 탈옥. 절벽을 타고 내려가 맨몸으로 도베 산맥을 넘어 생 빈느제에서 3개월간 도피 생활을 하다가 체포됨. 25년 추가 형을 받고, 보안 등급이 높은 알 카페즈 교도소로 이송됨. 5년 뒤 다시 탈옥. 이번에는 1년이나 제국 군대의 추적을 따돌렸고…….”
표정 없는 얼굴로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미간이 문득 구겨졌다.
“……알 카페즈에서는 스푼 하나로 굴을 파서 탈출했다고 적혀 있군. 사실인가?”
“물론이지. 그 숟가락 하나 얻겠다고 겨드랑이랑 사타구니에서 상한 치즈 냄새가 나는 뚱뚱한 교도관이랑 백 번이나 자 줘야 했어. 그놈 배가 너무 나와서 후배위는 못 했는데, 참 아쉬워. 면상을 안 보고 했으면 그나마 덜 역겨웠을 텐데.”
“…….”
“5년 걸렸는데, 나갈 때쯤에는 그 길던 숟가락이 엄지손톱만 하게 짧아져 있더라고. 안타깝게 됐지. 조금만 더 길게 남아 있었으면 그 교도관 후장에다가 기념 삼아 콱 박아 주고 올 생각이었거든.”
내 입에서 저속한 말이 쏟아졌다.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한 건데, 이안 커너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나는 남자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그동안 내가 봐 온 건 나 같은 밑바닥 인생 남자들이었다. 저렇게 번듯한, 도련님과의 사람은 상대해 본 적이 없다.
멋진 제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목덜미와 귀 뒤에서는 늘 청결한 냄새가 나는 남자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이안 커너가 고개를 들었다. 잘생긴 눈썹이 휘어지는 모양이 보기 좋았다.

(중략)

굴종은 편안하고, 저항은 괴로운 일이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역시 그렇다. 사람들은 불안과 절망에 휘둘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안 커너가 필요했다. 잘생기고 능력 있는 사령관이 자신만만하게 웃는 모습은, 확실히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데가 있었으니까. 그의 빛나는 미모가 지난 전쟁의 승리에 1퍼센트쯤은 기여했다고 나는 확신했다. 당장 나만 해도, 비행기에서 떨어진 선전물을 홀린 듯이 주워 와 부엌에 걸어 두었다가 사달을 낸 적이…….
“죄목은?”
“무슨 죄?”
“네가 지상 최악의 감옥이라는 몬테섬까지 가게 된 이유 말이다.”
그의 목소리가 의식의 흐름을 끊고 귓전을 때렸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탈옥했잖아. 그것도 두 번이나. 나 때문에 제국 군대의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졌고…….”
“그것 말고. 애초에 왜 감옥에 들어가게 됐지?”
“……난 무죄야.”
“말했다시피 이건 행정적인 확인 절차다. 네 주장에는 관심 없어.”
“나는 무죄야.”
그놈의 절차, 절차, 절차. 이제 염증이 난다. 나는 불만스레 책상을 걷어찼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 일을, 높으신 분들은 한 번 더 묻지 못해 안달이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듣지도 않을 거면서.
“죄를 지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죄수는 드물지.”
“정말로 내가 한 게 아니야.”
“우긴다고 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아.”
“판사가 유죄를 때렸다고 내가 무죄라는 진실이 오염되지는 않지. 진실은 사실을 이겨. 신께서 아실 거야.”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 냈다.
“똑바로 대답해.”
귀찮게 굴지 말고 어서 이 지루한 면담을 끝내자는 투였다. 빨리 나를 수감실에 다시 처박고 쉬고 싶을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체포된 후로 이 부분에 대해 단 한 번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턱에 힘을 주며 고집스레 대꾸했다.
“나는…….”
그때 문이 열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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