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의 상승과 석유 공급의 위기(어느 정도는 조작된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실제 사실인)는 에너지 개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불러왔다. 제일 먼저 나타난 반응은 고전적인 것이었다. 석유 부족난에 대한 조직적인 대처가 그것으로, 유류 배급제도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서구 선진국들은 정치적·기술적·경제적·조직적으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국의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다양화하는 방식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이 같은 대응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우선 가장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것으로, 획득하는 데 위험 부담이 적고 산업적 개발이 경제적으로 용이한 다른 에너지원을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것이었다. 석유 탐사 및 개발 지역을 확장하고, 오일셰일oil shale이나 오일샌드oil sand 같은 이른바 ‘비전통석유unconventional oil ’를 동원하고, 태양에너지나 바이오매스에너지biomass energy 등의 재생에너지에 관한 연구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원자력에 도움을 청했다. …
둘째는 완전히 혁신적인 접근법으로, 에너지 문제를 에너지 제품의 공급 조건(에너지 공급)에만 국한해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에너지 소비 및 사용 조건(에너지 수요)도 함께 고려하는 관점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에너지 관리’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당시에는 해당 표현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pp.18-19 「1장 에너지 과소비 문명」
이전에 에너지에 대한 시각은 해당 분야 기업들의 선동하에 오로지 생산력 증대만을 목표로 했고, 사회와 개인을 위한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법에서는 경제적·사회적 요구와 이 요구에서 비롯되는 에너지 수요를 상세히 연구했으며, 에너지 기기의 효율성을 개선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했다. 에너지의 ‘합리적 사용’을 추구한 것이다. 훨씬 더 앞서가는 관점들도 제시되었다. 교통 체계에서 자동차의 비중을 재검토하고, 에너지 소비량이 낮은 제품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재활용 활동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지역에 기존하는 재생자원을 활용하자는 게 그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74년에 마련된 정부 정책과 더불어, 1970년대 후반부터 대학과 노동조합,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창조적 활동이 전개되었다. 1978년 ‘대안 프랑스 프로젝트Projets Alter Francais’에서 시작해 지역으로 확대된 ‘대안 프로젝트’를 두고 하는 얘기다. 독립연구자들에 의해 실행된 이 미래 운동은 에너지 사용 기술과 소비구조를 변화시키면 에너지를 아주 적게 소비해도 동일한 경제적·사회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과 추가로 필요한 에너지양은 재생에너지원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pp.20-21 「1장 에너지 과소비 문명」
에너지 소비를 관리하는 전략은 인간 활동 전 영역에 걸쳐 있는 문제이며, 이 전략이 실현되려면 장기간에 걸쳐 산업 소비 문명의 특성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 관리 전략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과 장치의 효율성 개선, 에너지에 대한 태도의 변화, 주요 인프라(교통, 도시계획, 국토개발)에 대한 새로운 발상을 통해 모든 경제·사회 활동에서 에너지 소비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그 대책과 방법을 실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에너지 소비 관리 전략의 목적은 에너지 제품을 현 상황보다 훨씬 적게 소비하면서도 사회 발전 요구에 잘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31 「2장 에너지 수요 관리」
에너지 효율 개선은 이중으로 득이 되는 전략임이 곧 드러났다. 예전 같으면 에너지 공급에 할애했을 재정적 자원을 주택과 교육·의료시설의 건설이나 대중교통수단의 개발 등과 같은 다른 요구를 충족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경제성장의 조건들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에도 이로운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공해를 제일 적게 유발하는 에너지는 결국 소비되지도 생산되지도 않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어떤 일에 대해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 때마다 에너지 시스템에 연관된 위험과 공해가 줄어드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행동은 대부분이 적은 비용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공해나 지역적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든 온실효과 악화나 핵 위험 같은 지구적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든 간에 마찬가지다. 게다가 에너지 효율 개선 행동은 에너지 비용을 절약시켜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미 경제적 수익성이 있다.--- p.34 「2장 에너지 수요 관리」
에너지 미래학은 오랫동안 에너지 기업들의 전유물로서 기업 전략을 세우는 데 동원되었다. 기업 전략은 시장 확장과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에너지 미래학의 연구는 해당 기업의 성장을 위한 중단기 전망에만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에너지 사용자들의 실제 요구나 사회의 경제, 환경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에너지 자원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1980년대 이후 세계적 문제가 된 환경 훼손, 에너지 시장의 세계화는 세계의 에너지 미래를 전망할 필요성을 높였다. 더이상 생산자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및 사회의 요구와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서, 약 반세기 후 정도의 충분히 먼 미래를 예상하는 동시에 전 세계 모든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막대한 시공간적 상황 차이도 고려할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해진 것이다.--- p.50 「3장 미래를 탐색하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많은 모순을 드러낸다. … 화석에너지에 대한 높은 의존도나 핵시설 및 방사성폐기물의 증가, 환경적 영향에 대한 검정을 거치지 않은 재생에너지원의 대량 사용으로 빚어질 수 있는 환경적 긴장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풍부한 에너지 사용을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는 이처럼 합리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특히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서 여전히 생산제일주의를 근본으로 삼는 경영집단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들어맞는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pp.57-58 「3장 미래를 탐색하다」
네가와트 시나리오는 2000년부터 2050년 사이에 최종에너지 소비량이 3분의 1가량 줄어드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기간에 에너지 소비량이 1.5배 늘어나는 추세 유지형 시나리오에 비해 안락한 생활과 이동성, 산업 생산을 위한 조건을 더 나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기후학자들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고 보는 목표, 즉 에너지 시스템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4분의 1로 줄이는 목표에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은 네가와트가 제시하는 유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옮기는 것 외에는 없다.--- pp.71-72 「3장 미래를 탐색하다」
목표에 걸맞은 에너지 소비 관리 정책을 실행하려면 무엇보다 도시계획과 교통, 주거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에 들어간 비용은 크나큰 경제적·사회적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제 침체와 실업 증가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에너지 수입 및 생산 경비(특히 발전소에 대한 투자 경비)가 절감되며, 공해 감소로 보건 지출 또한 절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 관리가 생명을 구하고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하며 보건 지출을 크게 줄이는 등 보건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충분히 부각되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p.76 「4장 행동을 위한 방향 설정」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에너지 시스템은 20세기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 이루어진 급격한 발전에 따른 것이며, 에너지 시스템의 중앙집권적 구조도 바로 그 같은 역사적 흐름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는 에너지 생산·가공 지역과 소비 지역 사이의 거리 증가, 주요 에너지 루트의 세계화, 지역의 결정권 배제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시민은 자신이 소비하는 에너지에 대한 주도권을 점차 상실해왔고, 결국 단순한 소비자의 역할로 밀려나게 되었다.--- p.77 「4장 행동을 위한 방향 설정」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늘리는 동시에 에너지 효율 전략을 경제 발전의 토대로 삼는 것, 이것이 인류가 한 가지 위험을 다른 위험으로 대체하는 식의 도박이나 전 세계 인구의 에너지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해줄 기술적 기적을 기다리는 도박을 피하고 파산도 피할 수 있는(오히려 파산과는 반대의 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환경보호가 경제적 후퇴의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발전’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는 서로 대립 관계가 아니라 밀접한 공조 관계에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은 경제적인 면과 환경적인 면 양쪽 모두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다.
--- pp.93-94 「맺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