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미는 2016년 1월 어버이연합과 대치하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 소녀상 앞에서 다양한 예술행동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중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시위의 의미를 현장에서 알리는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먼저 “할머니 모습을 그린 후, 할머니 머리카락에서 큰 꽃이 피어오르고, 거기에 살풀이를 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비록 그림과 한국무용이 전공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예술적 재현의 수준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의 아픈 살을 푸는 예술행동을 위해,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춤을 배워 집회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예술행동은 전공자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공연과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할머니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는 다른 미학적 가치를 가진다. 그것은 완결된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무대에서의 감동과는 다르다. 무대의 감동과는 다른, 퍼포먼스 현장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예술행동의 즉각적인 표현은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감동을 전해 준다. 기획한 것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우발성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이런 현장에서의 우발성이 라이브 퍼포먼스가 주는 ‘예술의 직접적인 힘’이다.
---「1장 눈물 닦아 주러, 같이 울러 갑니다 - 라이브 퍼포먼스 청년 기획자 백정미」중에서
마이너리티 아티스트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말 그대로 ‘소수자’를 원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의해, 또는 무엇에 의해 배제당하고 통제당하면서 아웃사이더로 몰리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소수자가 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배제된 주체로서의 소수자로 정의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거나 자신이 배제되었거나 이런 생각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철학적으로 말하면 ‘생성’(becoming)에 해당되는 예술가로 정의할 수 있다. 어떤 근본이나 본질을 상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유목민처럼 활동하는 예술가가 마이너리티 아티스트이다. 정민아는 자신이 마이너리티 아티스트라면 배제와 생성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국악계에서 배제되었다가 그 상황을 인식하고 그 대안으로서 인디음악 신으로 음악적 활동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배제되어서 생성된 아티스트라고 정의하였다.
“처음에 저는 분명히 계단식 엘리트 코스 안에 있었어요. 그 안에서 많은 걸 느꼈지만 일부러 벗어나려고 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인맥과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주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제가 되었죠. 그러다가 저도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하니 공연 좀 해봐야지 하다가 생성이 되었어요. 전혀 의존적이지 않게 생성이 된 거죠. 저의 성향 중에 분명히 보수 기질이 있었어요. 일부러 내뱉지 않는, 침묵하는 성향이 이전에는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성이 다른 방향으로 되다 보니 다른 성향들이 더 발달한 것 같아요. 마치 다 똑같은 세포인데 얘는 눈이 되고 얘는 입이 되고 그런 것처럼 말이에요.”
---「2장 내 방식대로 재미있게 살아요 -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중에서
나 작가가 생각하는 파견예술은 현장의 역동성이 살아 있는 예술, 예술가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하는 예술이다. 파견예술가에게 현장은 고향이자 집 같은 곳이다. “기륭전자 사태 때였는데요. 마지막에 포크레인이 기륭 공장을 부수려는데, 송경동 시인이 포크레인을 점거하고는 새벽에 전화를 한 거예요. 자기 이제 마지막이라고, 새벽 2시에 전화를 했어요. 일단 알았다고 하고 차에 시동을 걸고 주변 선배들한테 연락을 했죠. 소식을 전하니 다들 놀라서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포크레인이 경찰에게 둘러싸여 있더라고요. 금방 내려오실 줄 알았어요. 워낙 다급하게 얘기하셔서.
그런데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사흘이 지나도 안 내려오셨어요. 현장에 같이 가면서 ‘우리가 뭐라도 하자’ 그랬거든요. 이런저런 상상이 되잖아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각자 상상하던 것이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씩 덧붙여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포크레인이 변화했어요. 나중에 민변 쪽 변호사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현장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포크레인이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빵 터졌다고요. 너무 에너지를 얻은 거예요. 저희가 꾸며 놓은 포크레인을 보면서 굉장히 해학적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아, 우리가 하는 것에 해학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구나, 현장에서 다시 느끼게 됐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어떤 기운을 받고 소통을 했죠.”
---「3장 재난 현장에서 예술을 발견합니다 - 조각가 나규환」중에서
처음에는 용산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용산참사 현장에는 이미 다른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었다. 책임자 처벌을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에 참석 요청이 들어와 만화 단체를 대표해서 갔을 때만 하더라도 현장에서 오래 활동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기자회견이 끝나자 만화계도 조직적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만화계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시기였다. 그래서 이동수 화백은 단체가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우면 개인적으로 현장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파견 미술가 친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일부는 아는 얼굴이고 일부는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 화백은 나름대로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즉석 캐리커처를 그렸던 경험이 있어서 현장에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게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싸움이 오래 가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기운이 있었어요. 좀 더 우리가 힘을 내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었죠. 동화작가들도 모여서 골목 난장을 벌이고 아이들을 동참시키고…. 그러면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터지기도 했고요. 그런 기운이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어요.”
---「4장 나는 거리에서 캐리커처 그려 주는 남자 - 시사만화가 이동수」중에서
임근준은 특히 미술계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미술계의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미술계의 세대교체는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인적 쇄신의 의미보다는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젊은 미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미술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젊은 예술가들이 지금보다 목소리를 더 많이 내도록 하는 것이 세대교체 운동이다.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야 현대미술에서 기존의 낡은 방법론을 폐기하고 다른 방법론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의제도 생기고 공통 의제와 주류에서 생각하지 못한 질문들이 생겨날 수 있잖아요?” 그는 개개인의 훌륭한 작가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술계에 세대교체라는 구체적이고 전체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엉터리 시장의 논리에 잠식된 현대미술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세대교체이기 때문이다.
---「5장 미술계의 세대교체를 돕는 성소수자 - 미술평론가 임근준 」중에서
“재판이 끝날 무렵이었어요. 제가 고민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익숙한 프레임은 여성주의자로서의 시각인데요. 어떤 사안을 바라볼 때, 몇 가지 질문이 생겼어요. 「마마상」이나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3부작을 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요,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힘의 논리는 무엇이고, 그 힘의 논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용산에서는 경찰이 마음에 걸렸어요. 남일당 1층에 분양소가 있었는데요, 돌아가신 다섯 열사 분향소였어요. 상상하게 되잖아요. 여기 경찰관 한 분이 더 있다면 그 의미는 어떻게 됐을까? 여기 여섯 분의 죽음을 같이 애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보게 될까? 이런 상상을 했고요. 이 죽음의 무게를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두 개의 문」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두 개의 문」 자체가 사회적으로 많이 관심을 받은 것은 사건 그 자체의 비중 때문이기도 하지만, 용산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회적 재난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피해자 시각에서 다루는데, 이 영화는 거꾸로 가해자일 수 있는 경찰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이런 식의 다른 시선은 재난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재난 현장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않은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도 역으로 익명의 경찰 시선에서 재난을 바라보면서 용산참사 상황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사회에서 영화의 역할이자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두 개의 문」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에게 사회적 재난 중에, 또는 재난 이후에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6장 마이너리티를 위한 다큐멘터리 연출의 힘 - 다큐멘터리 감독 김일란」중에서
청년 예술가는 어떤 일을 새롭게 만들어서 그걸로 돈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일에 자꾸 부딪혀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김미소 피디는 그 과정에서 청년 예술가 혹은 기획자에게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생존의 어떤 압박감이 있어도 저한테는 어쨌든 네트워크가 있고, 이렇게 해서 이런 프로젝트를 누군가와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어떤 자신감으로, 의도치 않게 프리랜서를 하고 있는 다른 친구보다는 상대적으로 기회요인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그래도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 했고 또 시기적절하게 좋은 선배님을 많이 만나서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젊은 독립 프로듀서가 기반을 마련하려면, 무엇보다 선배 그룹에서 후배를 길러 내고자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해요. 독립 기획자들의 연대나 네트워크도 중요합니다. 힘들 때 고립되지 않고,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그런 동력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그런 길이 필요하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어요.”
---「7장 공사다망한 독립 프로듀서의 삶 - 프로듀서 김미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