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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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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40*215*20mm
ISBN13 9788983947499
ISBN10 8983947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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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가는 도중에 카시기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옆에는 이제껏 본 애 중에 제일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서 있었다. 큰 키에 갈퀴처럼 앙상한 꼴을 하고 있었다. 맹세컨대 녀석은 태어나서 이발소 근처에 한 번도 안 가봤을 거다. 펄럭이는 기다란 금발이 등까지 내려왔고, 옷은 집에서 만든 파자마 같았다. 신발은 개척자 시대 때나 신었을 것 같은, 옥수수 껍질로 엮은 샌들이었다. 움직이면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는 그런 거 말이다.
교감선생님이 녀석을 내게 소개했다.
“잭 파워, 이쪽은 캐프리콘 앤더슨이다. 방금 전학 왔단다.”
그럼 그렇지, 크립톤 행성(슈퍼맨의 고향:옮긴이)에서 왔군.
“캡한테 743번 사물함을 보여주고, 교실까지 좀 안내해줘라.”
교감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서둘러 가버렸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녀석이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빤히 쳐다보는 거였다. 마치 애들 구경을 단 한 번도 못 해봤다는 듯이!

“할머니, 무서워요.”
“얘야, 그러지 마라.” 할머니가 단호히 말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 네가 믿는 가치관에만 마음을 둬. 넌 주( f)에서 치르는 시험을 다 통과했어. 게다가 늘 상위 5퍼센트 안에 들었고. 넌 누구 못지않게, 아니 그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실력이 있어.”
“오늘 학교에서 본 건 시험이랑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할머니는 내 말을 알겠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맞다. 정보와 경험은 같지 않지. 넌 텔레비전이 뭔지 알지만, 본 적은 없어. 피자 역시 마찬가지고. 우정이 뭔지는 알지만, 친구는 없었잖니.”
“할머니가 친구인데요.”
“그래그래.”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근데 난 정확히 말하면 10대 청소년은 아니잖니.”
“오늘 학교에서 다른 10대 애들을 만났지만 정말 별로였어요. 애들은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욕을 해대요. 어떤 두 애는 폭력까지 썼고요! 범죄나 전쟁에서나 폭력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뭣 때문에 폭력을 썼냐면…….”
난 무기력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설명을 못 하겠네요.”
“그렇게 실망할 필요는 없어.”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모두가 비폭력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

스피커에서 카시기 교감선생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한 번 공지한다. 9월 26일 화요일에 학생회장 선거가 있다. 3학년 학생이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 명만 추천자 명단에 올랐다. 캐프리콘 앤더슨. 이상.”
난 당황했다.
“네가 회장에 출마해? 온 지 1주일도 안 됐잖아?”
캡은 천장 한구석에 달린 스피커를 신기한 듯 뚫어지게 쳐다봤다.
“방금 저 사람 누구야?”
“교감선생님이잖아. 너 진짜 출마 안 했어?”
“응.”
“근데 왜 교감선생님은…….”
그때 난 알아챘다. 잭과 그 일당이 우쭐대며 짓고 있는 승리의 미소가 모든 걸 말해줬다. 캡이 자기를 추천한 게 아니었다. 잭의 짓이었다. 작년에 3학년 학생 전체가 루크 시마르라는 컴퓨터 천재를 회장에 당선시킨 뒤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다. 결국 학년말에 불쌍한 루크 시마르는 졸업을 포기하고 대안학교에 지원했다. 자기 삶을 비참하게 만든 애들을 단 하루도 더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제 우리가 3학년이고, 그 일을 반복할 차례였다.
캡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고 싶었다. 단어들이 혀끝에 맴돌았다. ‘당장 가서 네 이름을 명단에서 빼! 어서! 안 그럼 늦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캡 앤더슨이 없었다면, 아까 전교생 앞에서 내 이름이 발표됐을 거다. 내가 제2의 루크 시마르가 되지 않게 해줄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를 들면, 매일 밤 내가 머리에서 털어내는 작고 하얀 종이공이 그랬다. 학교에 종이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그 가루들이 꽁꽁 엉겨 붙어 비처럼 떨어지는 건가? 또 식초에 절인 염소 뇌나 죽은 새 같은 이상한 것들은 어떻게 내 사물함에 들어간 걸까? 내 사물함은 나만 열 수 있고 난 그런 것들을 넣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스트레스와 혼란을 다스리려면 명상을 하라고 일러주셨다. 하지만 사물함 앞에서 명상하는 동안 누군가 내 샌들을 훔쳐갔다.
그날 난 맨발로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불평하면 할수록 불평할 일이 가득해진다는 걸 알았지만, 스쿨버스에서 긍정적으로 마음먹기란 어려웠다. 버스 안은 더럽고 냄새나고 찐득대는 물건들이 가득했고, 거칠고 약아빠진 문제아들은 제멋대로 굴었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할머니와 친구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누리던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가서 갈런드 농장 공동체를 세웠나요?
그 답은 이 버스를 5분만 타면 나왔다. 인간의 어둡고 은밀한 부분이 제멋대로 고삐 풀리는 곳이 바로 스쿨버스였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더럽고, 불편한 곳. 애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고 악을 쓰고 물건을 마구 던졌고, 불운한 운전기사를 괴롭혔다. 그건 바퀴 달린 정신병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캡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캡은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함을 넘어선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캡의 내면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롭고 강인한 무언가가 있었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는 그런 강인함이 아니었다. 자제심을 불러일으켜 당황하는 대신 명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죽은 새에서 의미를 찾는 그런 강인함이었다.
물론 잭한테 이런 말을 할 순 없었다. 대신 분위기를 돋우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캡이 미쳐 날뛰진 않았지만, 오래 갇혀 있었잖아.”
하지만 잭한테 위안이 되진 못했다.
“그래, 근데 우리도 여기 너무 오래 있었거든! 어떤 애를 놀리려는데 그 놀림이 당사자한테 돌아온다면, 그걸 해서 뭐 하겠냐?”
잭의 말이 맞았다. 캡 앤더슨은 우리에게 최고의 학생회장이었다. 루크 시마르나 휴 윙클맨보다 모든 속임수에 곧이곧대로 걸려들었다. 그런데 딱 하나 문제가 있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캡을 놀릴 순 있어도, 열 받게 만들 순 없었다.

“캡이 스쿨버스를 곡예 운전한 뒤로, 캡 주위에 애들이 몰리고 있어요. 미술선생님과 홀치기염색 교습을 하기도 했어요. 이건 대단한 반전이죠!”
교감선생님은 점잖게 웃었다.
“중대한 사건을 칭하는 1960년대 용어가 뭐였더라…….”
“해프닝요.”
난 자동으로 대답했다.
“맞아요. 해프닝 같은 일이죠. 캡이 음악실에서 기타로 비틀스 곡을 연주하면, 얼마 안 있어 애들이 몰려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죠. 학교 앞마당에서 무술 수업 비슷한 것도 해요. 캡이 맡은 핼러윈 파티를 도와주겠다는 애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작 파티에 오지도 않을 녀석들까지 나서고 있어요. 캡을 따라 명상하는 애들도 있고요. 제가 캡의 개인사를 몰랐다면, 녀석이 숭배자 집단을 만드는 건 아닌지 경찰에 조사 의뢰를 했을 겁니다.”
이 말에 갑자기 갈런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숭배자 집단은 레인이라는 스승을 중심으로 구성된 갈런드 공동체에 딱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의 짐을 던 것 같네요. 애들이 캡을 학생회장으로 뽑은 걸 알았을 때, 저는…… 소피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려줬거든요.”
“저도 소문 들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시인했다.
“지난 학생회장들은 학생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미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중학교만 학생회가 없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모험을 했고, 다행히 이번엔 운이 좋았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캡은 여전히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였다. 그래도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매번 사소한 것에 당혹스러워하지는 않았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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