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남동생을 잃었다. 오늘 이렇게 너에 대해서 말하려니 이 표현이 제일 적절한 것 같아. 죽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슬픔으로 얇게 덮인 어느 아침,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내 컴퓨터, 내가 기자로 일하는 잡지 〈엘르〉 사무실의 컴퓨터를 켜자 화면에 고딕 활자로 이런 글이 뜬다. “알렉상드르 드 랑베르트리의 새 일터를 구경하시죠.”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어디에선가, 짐작은 할 수 없어도 따뜻하길 바라는 여기 아닌 다른 어디에선가 솟아난 이 문장이 나를 사로잡는다. 네가 죽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나는 구직 네트워크 링크트인이 보낸 이 메시지를 클릭한다. 난 한껏 결의를 다지던 어느 날 오후에 그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했고, 그 후 한 번도 다시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그때 그 결의는 고작 내 인생을 그 안에 담아놓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던 셈이 되고 마는 건가. 암튼 사이트를 클릭하자 너의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 뭐니.
--- p.9
사소한 것이 나의 심기에 거슬리고, 사소한 것이 나를 신나게 한다, 고 나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하지. 그건 다 겉만 번드르르한 농담이야. 사실은 모든 것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내 머리는 벌써 미쳐버렸고, 게다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상태야. 〈뉴욕타임스〉와 가진 한 인터뷰에서 엠마뉘엘 카레르는 다른 어느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어. 네가 나에게 남겨준 이 비물질적인 유산. 나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의심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그 유산, 감히 시도해보라는 너의 그 말. 사실 이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책이지, 넌 죽어선 안 될 사람이었으니까.
--- p.26
“알렉스는 어제 저녁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쥘리에트는 지금 프랑스에 있고요,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요. 처음엔 그이가 친구들과 한잔하는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이가 집에 없고, 휴대폰에 남긴 문자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죠. 난 다른 월요일처럼 수영장에 갔어요. 그이도 그걸 아니까, 그 틈을 타서 퇴근한 후 잠깐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더군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거실로 내려왔는데, 그이의 노트북이 활짝 열린 채 소파 위에 있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더 일찍 그걸 보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이는 아이들과 내가 볼 수 있도록 컴퓨터 화면에 작별 인사를 남겼어요.”
--- p.47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과묵함을 가르쳤다.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역량의 결핍은 인간관계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드는데, 그래도 뭘 어쩌겠는가. 나는 사람들 앞에서 차마 “월경”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변소”라는 말을 할 때도 머뭇거린다. 내가 어쩌다 “작은 방”에 간다는 표현을 쓰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나는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의 고백이 마치 오래되어 녹아내리는 카망베르 치즈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말에 특별한 회한 같은 건 담겨 있지 않다. 나는, 정신분석가 카롤린 엘리아셰프Caroline Eliacheff가 말했듯이, 스물다섯 살이 넘으면 부모 원망은 그만하고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내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보세주르 대로의 널찍한 대형 아파트에 감춰진 블랙박스, 혹은 물건들이 신기하게 사라져버릴 때마다 우리끼리 쓰던 표현대로 “구멍”에서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님이 원해서 태어난 자식들이고, 귀염받고 자랐으며, 사랑받았다. 오해와 서투름은 모든 부모 자식 관계에 내재하며, 그것이 모든 걸 설명해줄 순 없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 p.67
“직장 일 때문이었을까, 아직 젊은데 아빠 노릇하기, 그러니까 그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른 노릇하기가 힘들었을까, 분명 둘 다였을 테죠. 암튼 다시 위기였어요. 회사도 힘든 시기였고. 그이는 불안해했죠, 그래서 일도 엄청 했고, 술도 엄청 마셔대기 시작했죠. 본인도 나중에 인정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악순환이 시작된 거예요. 회사에서 편안하지 않으니까 술에 의지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 커플에도 이상 기운이 찾아왔죠. 그이가 결혼 생활을 자신을 옥죄는 족쇄로 여기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이는 가을에 집을 떠나서 멀지 않은 피갈가에 아파트를 얻었어요.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가까운 사이였고, 그건 확실했어요. 하지만 그이에게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도 우리는 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그 무렵은 참 평온했죠. 이윽고 2월에 그이는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어요.”
--- p.116
그 애는, 내 동생은, 태어나기를 불행하게 태어난 걸까, 아니면 자신만의 불행과 견딜 수 없는 실존에 등 떠밀려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동생이 처한 객관적인 현실은 그 애가 갖고 있는 현실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근거 없는 절망은 그 애를 조금씩 죽음으로 데려갔고,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에 동생은 지속적인 사랑, 조화로운 가정, 어느 모로 보나 만족스러운 직업 등, 자신이 애써 구축한 것마저 누리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버리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 pp.162-163
카다케스의 매력은 이제 빛을 잃었다. 그러니 사람을 가득 태운 자동차에 짐을 싣고, 젖은 수영복 말릴 자리를 마련한 후, 해변에 놓인 루쿰 과자처럼 생긴 장마르크의 고향집이 있는 라크루아발메르로 출발한다. 원래대로라면 동생은 플로랑스, 쥘리에트와 함께 거기로 올 예정이었다. 그들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역설적으로 동생 가족들의 그림자 속에서 지내는 것이 나에겐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알렉스가 걷던 길을 걷고, 말보로 라이트를 입에 문 그 애가 내뿜던 공기를 들이마시고, 뜨끈한 열기로 살아 있다는 행복과 화해시켜주는 태양 아래서 해바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 p.197
그 애의 삶과 그 애의 죽음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 속에 새겨져 있다. 나는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동생의 죽음이 나에게 가져다줄 자유를, 그 애의 죽음을 통해 내가 마침내 도달하게 될 진실을 갈구한다. 나는 동생의 죽음이 나에게 고귀함을 알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동생의 고통이 괜한 일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자, 불쌍한 유족이 된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것, 그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해볼 작정이다. 이건 종교와는 무관하고, 오직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면서 영위하는 삶과 관련 있는 믿음이다.
--- p.258
난 오히려 알렉스를 추모하기 위해서 근사한 폭죽을 쏘아 올리거나, 새벽에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댄스파티를 열어서, 슬픔을 언제까지고 꾹꾹 눌러 담는 대신 깨끗하게 제거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사회적인 관습 따위는 보란 듯이 내던지고 우리 가슴에 가혹하게 못이 박혔던 것처럼 남들에게도 못을 박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의식의 부재가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나 혼자만이라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뭔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뭔가를 발명해내고 싶다. 죽음을 무절제하게 기려야 한다. 살아서 너무 행복했던 시간, 그것이 행복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그 시간을 추억하는 법. 지속하는 것을 기리는 법.
--- p.289
“글 쓰는 일이란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끔씩 그 애가 나한테 그렇게 묻는다. 죽은 내 동생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아닌 게 아니라 좀 이상하긴 하다. 이 책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될 책이다. 나는 알렉스를 종이로 된 피조물로 변신시키기 위해 계속 글을 쓴다. 난 그 애에게 빚을 졌다.
샐린저?알렉스의 침대 머리맡에 제일 나중까지 놓여 있던 작가?는 그의 단편집 첫머리에 참선의 화두를 연상시키는 글을 적어두었다. “우리는 두 개의 손이 마주쳐서 나는 박수 소리라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손이 치는 박수는 어떤 소리를 낼까?” 나는 혹시라도 이 소리가 들리는지 늘 살핀다. 그 소리야말로 동생의 삶에 딱 어울리는 소리일 것 같으니까.
--- pp.32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