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책이며 생명에 관한 책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에 관한 책, 물에 관한 책, 정확하게는 ‘물과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세례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모습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알려준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책을 썼습니다.
... 이 책은 세례라는 선물의 의미를 궁금해하고, 세례가 우리 일상에서 갖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이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며 성경을 살피는 일이자, 신학적인 작업, 인격적인 작업, 궁극적으로는 삶을 걸어 탐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세례 교육반, 교회 내 학습 모임, 기도 모임, 여타 모임들, 그 밖에도 오늘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묵상하고자 하는 모든 이, 세례를 제자된 삶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습니다. 세례를 앞둔 자녀의 부모, 누군가에게 세례 교육을 하고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 성직자들, 세례를 받은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세례받은 신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p.8~9
회심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삶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다고 교회는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회심을 위해 사람들은 복잡하고도 고된 세례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철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타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에게는 손자, 손녀가 없습니다. 모두가 거듭나야, 재창조되어야, 새롭게 되어야, 변화되어야 합니다.
--- p.23
세례를 대함에 있어 오늘날 우리가 가진 문제 중 일부는 세례라는 행동을 잘못 자리매김한다는 데 있습니다. 대다수 현대인이 그러하듯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나’를 너무 강조합니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의심, ‘나’의 분투, ‘내’가 저지르는 악행, ‘내’가 가진 질문, ‘내’가 가진 포부를 너무 강조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주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주일 예배 때조차 우리는 쉬지 않고 우리 인간의 죄, 우리의 문제, 우리의 질문, 우리의 느낌에 관해 쉼 없이 이야기합니다. 지치지도 않고 우리의 약점, 우리의 거짓을 되풀이해 말하고 그 증거들을 모아 일련의 목록을 만듭니다.
사람들을 향해 거기서 나와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느껴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일종의 성취로, 목표로, 신실함을 달성하는 일로 말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 우리를 구원하신 분과 잘 지내보려 애쓰는 죄인의 분투를 신앙으로 여깁니다. 자기 계발이 중요한 세상, 성취를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꽤 합당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복음, ‘기쁜 소식’은 우리가 그분과 잘 지내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주님과 이미 화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딘가에 다다르려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선한 은총에 가까워지려 애써야 하는 비참하고 가련한 이들이 아니라, 그분의 은총으로 이미 왕좌에 오른 왕족입니다.
우리가 원래 선하기에 그 모든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많은 설교자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만) 본래 우리가 악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바르게 산 결과 선해졌기 때문도, 그렇게 되려 애쓰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된 것은 주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며, 구원하시는 그분의 은총 말이지요.
--- p.38~39
세례를 받는 것이 끝은 아닙니다. 세례는 주님과 함께 걷는, 평생에 걸친 순례의 시작이며, 평생 이어질 주님과 나누는 대화의 도입부일 뿐입니다. 지금까지는 암시하기만 했던 사실을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세례는 한 번 행하면 끝나는 예식이 아닙니다. 세례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회심 과정, 세례대에서 시작되어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끝나지 않는 성숙의 과정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주님의 영원한 팔에 안전하게 안기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주님은 일생토록 우리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세례를 통해 주님은 세례를 베푸실 때 잡아주신 그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겠다고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약속하십니다. 시작하신 일을 마치시기까지 주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세례는 한 번으로 완전한 사건임과 동시에 아기일 때부터 시작되어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사건입니다.
--- p.142
세례와 거듭남이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세례 행위와 거듭남을 무슨 마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둘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게 될 것입니다. 둘은 서로 온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례란 그저 상징이거나 예식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 예식의 의미가 예식 행위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증언하는 내용, 교회가 가르쳐 온 내용과 명백히 배치됩니다. 세례와 거듭남은 온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시간 순서를 따라 이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 보다 먼저 체험할 수 있고 동시에 두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두 사건이 평생에 걸쳐 이어질 수도 있지요. 이 두 활동(세례와 거듭남)의 주체는 주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당신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때에, 그분이 선히 여기시는 방식대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