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4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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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66쪽 | 682g | 153*225*30mm |
ISBN13 | 9788972917083 |
ISBN10 | 8972917087 |
발행일 | 2020년 04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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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66쪽 | 682g | 153*225*30mm |
ISBN13 | 9788972917083 |
ISBN10 | 8972917087 |
프롤로그 제1장 슬픈 대륙의 역사를 돌아보라! 제2장 변방에 역사서를 주지 말라! 제3장 1948년 창춘 홀로코스트 I :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비사 제4장 1948년 창춘 홀로코스트 II 제5장 해방, 인민을 삼켜버린 제6장 “인민해방군”과 인해전술 제7장 토직개혁 잔혹사 제8장 인민+민주=독재 제9장 마오의 도박, 미국과의 전쟁 제10장 목사가 된 공산당군 제11장 나는 황제로소이다 제12장 반외세 고립주의의 어리석음 제13장 빼앗긴 민국의 꿈 제14장 중국의 인텔리들은 왜 자유를 잃었나? 제15장 “마오쩌둥 신화” 비판 제16장 문자옥 I : 낙인찍고 재갈 물리고 제17장 문자옥 II : 그물 치고 떡밥 뿌리고 제18장 백화제방, 우파 사냥 제19장 빅브라더의 정신 세계 제20장 중앙서기처의 비밀 제21장 자유인의 망명 제22장 당신들의 민족주의 제23장 참새 대학살 촌극 제24장 붉은 투사냐, 전문가냐? 제25장 강물과 인간의 투쟁 I 제26장 강물과 인간의 투쟁 II 제27장 인류사 최대의 기근 I 제28장 인류사 최대의 기근 II : 정치가 인민을 굶겨 죽이다! 제29장 인류사 최대의 기근 III : 언론이 인민을 굶겨 죽이다! 제30장 차르의 유토피아 제31장 체어맨의 외교술 제32장 책임지라, 빅브라더 제33장 영도자의 어쭙잖은 변명 제34장 흑묘와 백묘의 변증법 제35장 인민민주 인격살해 : 국가주석의 최후 에필로그 |
우리나라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얼마 전 도시가 봉쇄된 중국 우한지역의 실상에 관한 동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 동영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보다 더 심각한 실상을 폭로한 것이란 사실 보다 얼마 뒤 그런 동영상을 올린 시민기자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렇지만 중국이란 국가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비록 중국에 대해서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곧 우리나라에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당장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겠기에 그러한 생각은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어떠한 나라이기에 활짝 웃고 있는 인민의 표지에 『슬픈 중국(A Sad China)』란 제목을 달았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은 국공내전(1945-1949)부터 대기근(1958-1962)까지의 중국공산당 정권의 형성과정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공내전의 승리로 마오쩌둥이 정권을 획득한 것에서 시작하여 대기근으로 잠시 물러난 마오쩌둥이 다시 국가 주석이었던 류사오치를 제거하는 부분에서 끝이 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잘 모르는 나이기에 중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서 놀라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10만의 국민당군을 멸하기 위하여 50만의 민간인까지 있는 창춘을 포위하여 1948년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전기, 수도, 도로를 차단하여 고사시킨 작전이다. 5개월간 공산당군은 도시에 두 개의 철조망을 치고는 철조망 주변으로 50미터마다 보초를 세워 창춘을 포위하였다고 한다. 서리가 내리고 한파가 닥치자 많은 이들이 절망과 절망 사이에서 굶주리다가 죽어갔다고 전하고 있다. 초소나 검문소를 뜻하는 중국어 차쯔가 여기서는 철망과 철망사이 수많은 시체가 쌓인 지역을 가리킨다고 한다. 5개월에 걸친 창춘 포위전에서 최소 12만에서 최대 33만 사이의 난민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어느 지식인의 표현에 따르면 37만 명이 아사했다고 전하기도 하는 등 정확한 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쓰러져 간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이에 저자는 “중공지도부는 인민 해장의 성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인민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혁명의 이상이 숭고할수록 수단의 잔악성을 더 쉽게 용인된다. (p. 61)”고 평하고 있다.
<58쪽에서 사진인용>
다음 위의 창춘포위전과 화이하이 전투 등으로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한 공산당군은 국민당 잔당 및 소요 세력을 척결하는 진압반혁명 운동을 일으켜서 전국적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였다. 한국전쟁의 파병을 통해 내부의 반대세력을 효과적으로 숙청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이 이용되는 것을 보고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역사에는 우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중국내적으로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인종청소를 한 사회 구성원의 특정 계급 내지는 종족이 인민 혹은 국민의 이름을 참칭할 때에 발생하는 범죄 (p. 119) 라고 칭한 마이클 만 교수의 설명이 어렵지 않게 이해 될 수 있었다.
<116쪽에서 사진인용>
다음으로 ‘백화제방’으로 대표되는 반우파 투쟁이었다. 일당독재를 구축한 후 자신들에게 반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모습이었는데 인민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면서 실제로는 다양한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큰 물고기는 나중에 나온다’라는 중앙서기처의 덩샤오핑 지령과 같이 그들은 끈질기게 인내하며 비판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문제는 우파라는 기준이 모호하다는데 있었다. 1957년 중앙서기처에 따르면 “중공지도부의 경제 또는 문화 정책에 대한 반대, 공산당과 정부 조직에 대한 악의적 비판 혹은 비방, 노동자, 농민 혁명 활동가들에 대한 모욕, 공산당의 혁명적 활동에 대한 모독” (p. 269)이었다. 딱 누명을 씌우기 좋은 기준이다. 어느 연구자가 반우파 투쟁 피해자들은 99.99퍼센트는 누명을 썼다고 단언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이 대목에서 영화 『변호인』이 생각이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68쪽에서 사진인용>
마지막으로 1960년의 대기근을 야기한 대약진운동이었다. 농공업 생산량의 급격한 증가를 위해서 모든 인민을 생산현장에 투입하는 총동원의 비상전략이라고 하는데 15년 이내로 미국을 따라잡는다며 뒷마당 용광로로 생활도구를 녹이거나 공동식당으로 인민의 삶을 통제하려 했으며 이해할 수 없게도 4대 해악이라며 참새를 잡는 등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1958~1962년 사이에 중국에서는 3600만 명에서 4500만 명이 아사했다고 한다. 이는 한 국가의 인구와 맞먹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는 “삼분천재, 칠분인화(三分天災, 七分人禍)라는 류사오치의 말처럼 70퍼센트는 인재라는 점이 더욱더 슬프게 했다.
<413쪽에서 사진인용>
중화인민공화국이 그들이 해방시킨 수많은 인민의 피를 먹고 자란 나무임을 조목조목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썩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게다가 중국이란 외국의 근현대사이기에 우리와는 직접적인 연과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는 독일의 재상 미스마르크의 말처럼 그들의 아픈 역사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올해 89세의 고령이지만 “마오쩌둥을 인간으로 환원하라!”며 줄기차게 외치며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마오위스의 2015년 5월 28일 자 칼럼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마오쩌둥 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숙청되었다. …… 타인을 숙청한 사람들 역시 타인에게 숙청당하고 말았다. 국가는 이러한 독재자의 착오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패가망신했다. 1억 명 이상이 정상적인 생활을 침해당했다. 국내의 투장은 전 사회의 고통의 총량이 극대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마오쩌둥은 전문적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독재자인데, 그 자신은 그 와중에 쾌락을 누렸다. (p. 206)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국공내전[1946~1949]
이 책에서 중국현대’사(史)’로서의 시작은 ‘제3장 1948년 창춘 홀로코스트 Ⅰ: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비사’에서 시작한다.
1945년 8월 말, 제2차 국공합작이 깨졌을 당시만 해도 대부분 국민당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국공내전 3년 만인 1949년 공산당은 국민당을 격파하고 베이징[北京]에 진입한다. 어떻게 이런 드라마틱한 역전이 가능했을까
중국 현대사 교과서는 그 이유로 7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 8년간의 항일전쟁에 따른 대규모 전력 소모
둘째, 국민당군의 전쟁피로 증후군과 사기 저하
셋째, 국민당 정부의 재정정책 실패와 극심한 인플레이션
넷째, 국민당 정부의 공포정치 및 잔인한 숙청에 따른 민심 이반
다섯째, 미국과의 소통 실패로 인한 중재 및 지원 중단
여섯째, 국민당 정부의 사회, 경제적 개혁 실패
일곱째, 만주 및 북중국 확보에 집중한 장제스의 군사전략적 패착” [pp. 54~55]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이유들이 국민당 패배의 원인은 되지만, 공산당 승리의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산당 승리의 원인일까
저자는 이를 ‘창춘[長春] 홀로코스트’라고 표현한 ‘창춘 포위전’에서 찾고 있다. 이 포위전은 린뱌오[林彪, 1907~1971]의 주도하에 10만의 국민당군과 50만의 민간인이 있는 창춘을 포위하여 1948년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전기, 수도, 도로를 차단하여 고사(枯死)시킨 작전이다. 이때의 참상은 생존자였던 엔도 호마레[遠藤譽, 1941~ ]가 쓴 <차쯔[?子]: 중국 건국의 잔화(殘火)>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된 창춘 포위전은 공산당이 제시한 본보기 역할도 했다. 포위된 지 40일 만에 항복한 베이핑[北平, 현재의 베이징]과 텐진[天津]은 ‘창춘 홀로코스트’라는 공포 마케팅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또 하나는 국공내전 최대의 혈전이라는 화이하이[淮海] 전투에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선전되는 543만 명의 ‘지전민공(支前民工: 전방 지원 민간인)’이라는 총알받이들의 존재다.
이성적으로는 일종의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고, 최악이기는 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 선택 가능한 군사적 옵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느껴진다.
토지 개혁과 진압 반(反)혁명 운동 (1950~1953)
토지 개혁 당시 “중국의 많은 지역에는 마르크스 이론에 부합하는 지주계급 자체가 없었다. ‘해방’ 이전 중국의 농촌에서 지주가 점유한 토지는 총 토지 면적의 40퍼센트에 불과했다. 그 토지의 25퍼센트는 학교, 사묘(祠廟), 종족전(宗族田) 등의 공전(公田)으로 개인 소유지도 아니었다. 농촌의 빈농들도 2-3무(畝, 1무: 667제곱 미터) 정도의 토지는 가지고 있었고, 토지가 전무한 농민은 기껏해야 1-2퍼센트 정도였다.” [pp. 96~97]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방식으로 토지 개혁을 시도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억지로 인민의 적인 ‘지주’를 만들어서 처벌하고 재산을 빼앗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당 잔당 및 소요 세력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직접 살상의 할당량(대략 1,000명당 1명)을 정하면, 관료집단은 뤄루이칭[羅瑞卿, 1906~1978]의 지휘 아래 각 지방의 학살 현황을 파악하여 상부에 보고” [p. 113]하는 ‘진압 반혁명운동’까지 전개했으니…….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위원장 보이보[薄一派, 1908~2007]에 의하면 이때 처형된 사람이 약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도 할당량 때문에!!!
반(反)우파 투쟁[1957~1959]
반우파 투쟁의 선구는 1942년 옌안[延安]에서의 ‘정풍(整風) 운동’이다. 이 당시 대표적인 희생자는 “장치인과 예술인”이라는 평론에서 정치와 예술의 분리를 주장한 작가 왕스웨이[王實味, 1907~1947]였다. 그는 나흘에 걸쳐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당하고 조롱 당했으며, ‘노동교양형’을 받은 상태에서 처형된다.
왕스웨이 같은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일어난 비극은 반복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수용했지만, 문학의 고유성을 강조하고 작가의 창의성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평론가 후펑[胡風, 1902~1985]과 그의 추종자들은 국민당 간첩으로 몰려 숙청되었다.
1956년 마오쩌둥의 지시로 시작된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운동[1956~1957]’은 1년 여 만에 ‘반우파투쟁’으로 전환, 비판적 지식인을 색출해서 제거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처럼 비판적 지식인의 반복적인 숙청은 공산당이 “만민평등의 공산주의적 이상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마땅히 반혁명 세력을 제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판적 지식인의 숙청이 급선무” [p. 210]라고 여겼다.
공산당이 이렇게 비판적인 지식인 제거에 거리낌이 없던 것은 인간을 자신들에게 순응하는 인민(人民)과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인 적인(敵人)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해 인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국가를 중화 ‘인민’ 공화국이라고 했을 때부터, 인민의 적(敵)인 적인(敵人)으로 판명된 이들의 운명은 죽거나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1984>에 나오는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처럼 사상개조 당하는 길 이외에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대약진 운동 (1958~1962)
수 차례에 걸친 지식인 숙청으로 정부의 시책을 비판하거나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이는 사라져갔다. 참새 박멸 운동에 대해 반대했던 세포학의 권위자인 주시[朱洗, 1900~1962], 조류학자 정쭤신[鄭作新, 1906~1998]나 평지에 댐을 건설해서 저수지를 만드는 것과 민간의 쇠붙이를 모아서 철강을 생산하는 토법연강(土法煉鋼)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수자원공학자 천싱[陳惺, 1921~ ] 등 일부 용기 있는 지식인이 남았지만, 그뿐이었다.
중공정부는 15년 안에 미국과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약진 운동을 시행했다. 이를 위해 뒷마당의 소형 용광로로 생활도구를 녹이거나 인민공사라는 사회주의 코뮌을 통해 인민의 삶을 통제하려 했으며, 참새박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농민들이 철강 생산에 동원되어 논밭의 곡식을 손도 보지 못하고 방치해두었음을 알게 된다. 철강 생산의 원재료 확보를 위해 간부들은 농가의 밥그릇, 숟가락까지 각출했다. 오두막의 목재는 물론 과수원의 원목들까지 싹 쓸어갔다. “토법연강(土法煉鋼)”의 용광로에 땔감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p. 359]
언론인 양지성[楊繼繩, 1940~ ]의 <묘비(墓碑)>(2008)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중국에서 3,600만 명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삼분천재, 칠분인화(三分天災, 七分人禍)라는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의 말처럼 이 역사적인 대기근의 70%나 인재(人災)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간쑤[甘肅] 성을 둘러보고 농촌의 현실이 중앙에 보고된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강직하고 직설적인 국방부 장관 팽더화이[彭德懷, 1898~1974]는 1959년 루산[廬山] 회의에서 마오쩌둥에게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불행히도 진실을 얘기한 대가는 가혹했다. 팽더화이는 국방부 장관에서 해임되었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홍위병(紅衛兵)들에 의해 양손이 묶인 상태에서 끌려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포승줄로 (그의) 양손을 등 뒤로 결박하고, 기다란 흰색 모자를 씌우고, 목에는 죄명이 열거된 널빤지를 걸었다. 수천 명의 홍위병들이 펑더화이의 면상을 향해 증오와 모멸의 욕설을 내뱉었다. (나아가) 그들은 펑더화이에게 스스로가 공산당에 잠입한 대군벌이며, 야심을 품고 전복의 음모를 꾸몄음을 자백하라며 윽박지르고 강요했다.” [p. 356]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대약진 운동(1958~1962)을 전후해서 중공정부의 각 조직에는 전문가들이 퇴출당한 빈자리를 ‘붉은 투사들’이 점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지식을 동원해 정부시책의 현실적인 한계와 잠재적인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 집단이 반혁명 세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비판적 지식인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p. 314]
뒤늦게 국가주석인 류사오치가 44일간 현장 방문을 통해 참혹한 현실을 확인하고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과 함께 신경제정책(1960~1966)을 추진하여 인민들이 숨돌릴 여유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마오쩌둥이 권력 재장악을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그들을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 노선을 주장하는 파)’로 낙인을 찍고 숙청당하면서 허사로 돌아갔다.
불행히도 현재의 중국에서도 개인숭배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마오쩌둥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오쩌둥처럼 헌법 전문(前文)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자신의 사상이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그 사람의 이름은 시진핑(習近平, 1953~ )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까치(까치글방)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너희들은 독재를 하고 있어!" 귀여운 선생들이여, 그대들의 말이 맞다. 진정 우리는 그러하다. 중국 인민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경험의 총체가 우리로 하여금 인민민주전정(人民民主專政)을 실행하게 한다. 혹자는 인민민주독재라고도 하는데, 결국 같은 의미이다. 바로 반동 세력의 발언권은 박탈하고, 인민만이 발언권을 누리게 하는 것!
- 마오쩌둥 "인민민주독재를 논함 : 중국 공산당 28주년 기념" 인민일보 1949.6.30
책은 마오쩌둥의 인민민주전정 발언으로 시작한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부터 오늘까지 공산주의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의 매우 모순적인 정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미 자유주의 시장경제보다 더 자유주의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중앙 공산당이 이를 통제하기도 하는 특이한 형태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운영한다.
2020년 현재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SARS 이후 반복되는 중국발 전염병의 확산은 중국공산당의 관료주의, 언론 통제 및 권위주의 정치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염이 확산되던 최초의 2주일 동안 정부는 사태를 은폐하기에 바빴고, 정부의 눈치를 보는 언론은 이를 축소보도했다. 전문가의 경고는 묵살되었다.
중국의 문제가 곧 전 지구적 문제로 퍼져나갔고, 중국의 이런 부정적 통제정책은 중국공산당의 모순이 결국 세계를 멍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중대한 사건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건국한 이래 중국공산당 정부는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의 깃발을 내걸고 공산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 무산계급 '인민민주독재'의 이름으로 일당 지배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역시나 다이내믹한 70년 중에 중국은 크게 두 차례의 거대한 혁명을 치렀다.
첫번째 혁명(1949~1976)은 중앙집권적 집산화를 통한 사회주의 건설의 혁명이었다.
두번째 혁명(1978~)은 개혁개방을 통한 실용주의 경제발전의 혁명이었다.
이 두 차례의 혁명을 통해 중국은 모두 기존의 사회, 경제적 기본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규모의 구조 변혁을 이뤄낸다.
중국을 이를 통해 사회주의 헌법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양식을 결합한 상반되는 체제로 이 두 체제는 표면상 정체(停滯, Stasis)를 이루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격렬하게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동적 긴장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고의 빈부격차, 지역격차, 계급갈등, 부동산 버블, 지방정부의 부채 증가, 전체주의적 통제 강화, 인권침해 등이 만연한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극심한 변화의 요구를 어찌어찌 막아가면서 나아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상의 자유도, 집회 및 결사의 자유도, 언론과 출판의 자유도, 거주-이전의 자유도 출산과 양육을 포함한 사생활의 자유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적어도 표면적이다. 심지어 사회주의 중국은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1982년 재개정된 오늘날의 중국 헌법에는 "파업의 권리(노동쟁의권)" 자체가 삭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중국은 발전하는 듯 보인다.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그 누구도 무엇이라고 장담할 수 없지만, 중국의 미래가 곧 인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살이다. 중국은 14억의 인구, G2의 경제 대국으로 곧 미국을 누르고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중국은 중국몽이니,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군사적 강국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불안을 느낀 미국은 무역전쟁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진행중이다.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 저자는 총 3권의 분량으로 중국공산당정부의 성립과정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는 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재 1권 인민민주독재(1948~1964), 제 2권 문화대반란(1964~1976), 제 3권 대륙의 자유인들 1976 ~ 현재이다.
이 책은 제 1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사회주의 건설을 대략 1948년부터 1964년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1949년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을 1948년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립되었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1964년 대약진 운동(1958~1962)이 처참한 대기근으로 막을 내리고 광기의 문화혁명이 시작되기 전, 중공지도부가 집산화의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경제개발의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던 때였다. 또한 핵무장에 성공하여 자강운동(1861~1895) 이래 100년을 추구해온 강국의 꿈을 마침내 실현한 역사적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민민주독재"는 1954년 이래 중국의 헌번 전문에 명시된 인민공화국의 가장 기초적인 정치제도이다.
1949년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엥겔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에 중국혁명의 계급 투쟁 경험을 결합해 "인민민주독재'라는 새로운 통치 원리를 제창했다.
"대다수 인민에게는 민주를, 극소수 적인(敵人)에게는 독재를" 실시한다는 중국 특유의 통치원리를 말한다.
1950~1960년대 반혁명 세력의 진압, 토지개혁, 반우파 투쟁, 집산화, 인민공사 등 중국공산당의 모든 경제,사회정책, 정치 캠페인은 "인민민주독재'라는 명분으로 진행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국가정책이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민주적"의사결정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유토피아는 그러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 책은 총 3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었지만, 각 장마다 독리된 주제와 문제 및 잠정적 결론이 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특정 주제부터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제 1장과 2장은 일당 독재, 인권유린 등 현대 중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중국몽"에서 깨어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3장과 제 4장은 국공내전 중인 창춘에서 일어난 포위전을 살펴본다.
공산당군은 마오쩌둥의 영도아래 장제스의 "반동정부"로부터 ① 국가의 영토주권을 지키고, ②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③ 인민의 주권을 지키지 위해 성공적인 군사작전을 통해서 전국을 점령했다는 선언이다.
결국 중국공산당이 말하는 "해방"이란 무엇보다 군사적 점령에 의한 토지, 인민 그리고 재원의 확보를 의미한다. 공산당의 선전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은 크게 세가지 의미에서 해방이었다.
첫째, 제국주의 침탈로부터의 "조국해방", 둘째, 국민당 정부로부터의 "반부르주아 반독재 해방", 셋째, 누천년 동안 지속된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인민해방"이었다. ---p.44
중국공산당 입장에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자체가 바로 인민의 해방이요 만민평등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다수의 중국인들이 믿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 해방전쟁이자 혁명투쟁이라는데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그들 역시 권력을 승리를 위해 자국민을 고통에 빠트린 것이라는 비판이다.
초반부는 국공내전 당시의 많은 일들이 펼쳐진다. 매달 10만 명 이상의 인민들이 피난을 떠났고, 피난길에서도 공산당과 국민당, 도적들의 위협에 시달린 고난의 역사,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 지구에서 벌어진 토지개혁의 실상을 들여다보며 중국의 토지개혁은 무고한 인민들을 지주, 부농, 한간(친일파)로 간주하고 인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국공내전은 수많은 중국인의 희생 위에 있다. 현재의 중공정부를 비판하는 작품)
중국 특유의 1인을 신성시하고, 14억의 인구가 1인의 통치이념에 지배당하는 모순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중국 지식인의 말을 빌려서 이제는 이런 구시대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오쩌둥의 망령이 되살아나 지식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2010년대의 현실에서 마오위스의 고군분투는 유토피아의 혁명 운동이 빚어낸 계급과 민족의 주술을 벗어나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필사적인 투쟁이다.
마오위스가 쓴 칼럼 제목처럼 "마오쩌둥이 인간으로 환원되어야만" 인민은 진정한 해방을 맞을 수 있으리라. 인간 마오쩌둥을 살리기 위해서 이제 마오쩌둥 신화는 해체되어야 한다. ---p.207 ~ 208
얼마 전 구입한 홍루몽을 마오쩌둥이 극찬해서 산 이유도 어느 정도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비판을 한다.
마오쩌둥이 왜 염세적 귀족문학이었던 <홍루몽>에 그토록 열광했는지 의아함을 제기한다.
후반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완벽히 지배하게 된 마오쩌둥의 숙청과정과 잘못된 정책들을 살펴본다.
특히 대약진 기간 동안 기근과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면서 참담한 실패를 겪은 마오쩌둥이 반성하기는 커녕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지적한 펑더화이를 우파세력으로 몰아서 숙청하는 등 수많은 인명까지 앗아간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꿈인 강국을 이훠낸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해 세계에서 5번째로 핵무기 보유국이 되고 핵무장을 통한 동아시아 군사적 우위를 점령한다.
이 책은 1948년부터 1964년까지 현대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며 “인민민주독재”가 초래한 “인민의 디스토피아”를 고발한다. 인민과 적인을 구분하는 마오쩌둥과 중공정부의 통치 방식은 수많은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러한 방식은 지금의 시진핑 정부도 그대로 계승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속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체험에 의존하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본다고 한다. 역사를 통해 오늘의 중국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받고 현재는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송재윤 교수님의 철저한 자료 분석과 해박한 지식으로 탄생한 수작이다.
2권도 너무나 기대하고 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