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이 어떤지 보기 위해서는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이 필요하듯 인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자신을 비춰 주는 대상, 즉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대상(self-object)’이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비추어 주는 심리적인 거울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주로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어릴적 자녀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가 비춰 주는 거울에 따라 자녀의 성격, 자존감, 정체성, 자신감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가 들고 있는 거울이 예쁜 거울이면 예쁜 존재로, 비뚤어진 거울이면 왜곡된 존재로, 용기를 주는 거울이면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존재로, 비난하는 거울이면 부족한 존재로 성장한다. 그래서 엄마는 좋은 거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녀의 자아상을 형성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불리는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반복하여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네이밍(이름 짓기와 부르기)’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이름을 신중하게 생각해 지어야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심리학 기법 중에 ‘라벨링 기법(labeling technique)’이 있다. 한 사람에게 어떤 특색, 태도, 신념 등을 드러내는 라벨을 붙인 다음 그 라벨에 어울리는 행동을 기대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어떤 라벨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
아이들의 이름이나 별명은 이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이를 ‘바보’나 ‘멍청이’와 같이 자존감을 깎는 명칭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불리는 이름을 수용하여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라도 좋은 이름과 별명으로 불러야 한다.
부모로부터 스트로크 언어를 충분히 듣고 자란 아이는 주변의 비난이나 충고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이미 부모로부터 충분한 격려와 칭찬,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트로크 언어를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디스카운트 언어를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주변의 비난에 민감하고 학교에서도 왕따가 되기 쉽다. 에릭 반은 이런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심리적인 힘이 없기에 우울해하거나 절망하기 쉬운 성격 유형을 가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엄마가 무심코 던진 부정적인 말은 아이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러한 말이 지속된다면 아이의 자존감에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남긴다. 만약 내가 하는 말 중에 디스카운트 언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이를 스트로크 언어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긍정적인 격려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삶을 바꾸고, 아이의 감춰진 재능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는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이 없다. 화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감정은 회피할 게 아니라 보살펴야 할 대상이다. 아이가 그런 감정을 표출한다면, 반대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들여다보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면 아이의 마음은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면서 노래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감정을 억누르고 쌓아 두면 언젠가는 감정의 홍수가 난다. 슬픔을 참으면 우울증이 되고, 화를 참으면 분노가 된다. 그런 과정이 지속된 상태로 성인이 되면 분노 조절 장애를 겪거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아이들의 재능을 죽이고 포기하게 만드는 일은 쉽다. 엄마가 매사에 불안해하며 주변에 휘둘려 엄마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것을 선택해 아이에게 강요하면 된다. 주변 아이가 하는 것은 무조건 따라 하며 아이의 스케줄을 꽉꽉 채워 준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랑 끊임없이 비교해서 아이를 힘들게 하고, 원하는 만큼 못 하면 심한 말로 아이를 질책하면 된다. 엄마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아이는 아직 뛸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뒤에서 밀어 달리기를 시키면 된다.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정작 대학에 와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나 공부’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오는 것이다. ‘나 공부’는 어른으로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기 이전에 미리 해두어야 하는 공부다. 스스로 하기 어렵다면 부모가 그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자신에 대해잘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모른 채 다른 이의 기준에 맞추어 평생을 사는 사람도 많다.
지금 내 아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마음속에 간직한 반짝이는 꿈을 향해 전진하는가? 아니면 엄마 손에 끌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가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를 박탈한 채 그 길을 통과해야 하는 유일한 문으로 정해 놓지는 않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바라고 생각하고 선택한 꿈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 꿈은 아이의 심장을 뛰게 한다. 아이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끝없는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열정과 몰입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아이의 앞길을 인도한다.
모든 선택과 결정, 결과는 아이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의 잠재력을 믿어 주고,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면, 아이는 남보다 탁월한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미래학자들의 예견에 따르면 세계는 이미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다. 앞으로 성공을 향한 경쟁은 점점 치열해질 것이라고 한다.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레이는 지금 이대로라면 전 세계 대학의 반이 20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고했고,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2020년에 대학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때일수록 모두가 달려가는 의미 없는 길을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아이가 직접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찾게 해야 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어머니 행복을 위해 사세요.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합니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80%를 쓰세요. 제가 직업상 매일 40~50대 엄마들을 만나는데 80~90%의 엄마들이 불행해합니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내가 날 위해 80%를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80%를 쓰는 것은 내 마음의 우선 순위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날 잘 보살피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