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개의 경을 50개씩 셋으로 나누어 ‘근본’, ‘중간’, ‘최종’이라는 제목의 3편으로 편성하고, 남은 2개의 경은 제3편에 넣어서 제3편은 52개의 경을 수록하게 된 것이다. 각 편은 5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10개의 경을 담고 있으며, 제3편 마지막 장은 12개의 경으로 되어있다. 이 책 『정선 맛지마 니까야』는 이 가운데 70개의 경을 가려 뽑았으며, 편과 장의 구분 없이 순서대로 배열하고, 각 경의 서두에 ‘해제’를 붙여서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선정된 경은 중복되는 내용을 생략하여 번역하였으며, 이전의 경에 나오는 동일한 내용은 간략하게 줄이고, 각주를 통해 그 경을 참고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분량을 줄였지만 내용은 빠짐이 없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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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수행이란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8정도는 있는 그대로 보며 살아가는 것이고, 이러한 삶 속에서 수행이 완성된다는 것이 「6입처(六入處)에 속하는 큰 경」의 요지이다. 첫 번째 경인 「근본법문(根本法門) 경」에서 모든 가르침의 근본이라고 선언한 ‘abhij?n?ti’는 이렇게 「6입처(六入處)에 속하는 큰 경」에서 전모(全貌)가 드러나며, 마지막 경인 「지각수행(知覺修行) 경」에서 6근(六根)을 수호(守護)하는 지각수행(知覺修行)으로 귀결된다. 이와 같이 불교의 모든 수행은 ‘abhij?n?ti’의 과정이며, 『맛지마 니까야』는 이러한 수행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 p.22
근본법문(M?lapariy?ya)이라는 이름의 이 경을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자가 첫 경으로 선정한 것은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 의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맛지마 니까야』의 편집자는 이 경을 서두에 배치함으로써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 p.23
불교의 무아는 ‘나’의 존재를 개념적으로 부정하는 형이상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가 ‘나’의 존재로 취하고 있는 ‘5취온’이라는 망상 덩어리를 ‘abhij?n?ti’를 통해 있는 그대로 보고 제거해야 한다는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 p.37
많은 사람들은 선업을 짓는 것보다는 선정을 통해 삼매(三昧)에 드는 것이 더 높은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혹자는 아무리 좋은 선업이라 할지라도 업을 지으면 윤회하므로,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업을 짓지 않고 선정 수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은 이러한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의 열반은 높은 단계의 선정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불선법(不善法)을 버리고, 착하고 바르게 삶으로써 성취된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이다.
--- p.61
12연기는 무명이라는 최초의 원인에서 마지막에 노사(老死)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선형적(線形的) 인과관계가 아니라 무명과 무명에서 발생한 번뇌가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상호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 p.72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무(無)가 유(有)의 바탕이라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유와 무의 근거가 되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어떤 것이 유와 무의 바탕으로 설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다. 이와 같이 비유상비무상처는 ‘사유를 조작하는 행위의 바탕’이다. 상수멸정(想受滅定)은 이러한 무색계(無色界)의 4선정(四禪定)이 유위를 조작하는 행위[行]에 의해 조작된 망상(妄想)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개념적 사유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 p.137
범부들은 무아가 아니면 유아라는 모순된 생각을 한다. 이 모순된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중도(中道)이다. 이 법문은 중도를 벗어나서는 바르게 이해될 수 없다. 중도에서 연기(緣起)의 실상(實相), 즉 공을 보아야 무아의 참뜻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경은 반야(般若) 사상의 모태(母胎)라고 할 수 있다.
--- p.155
자이나교의 교리에 의하면, 인간의 진정한 자아인 지와(J?va)는 영속하는 정신적 실체로서 감각과 지각과 인식과 행위의 주체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행위는 무상하게 연기(緣起)하는 현상일 뿐[諸行無常], 그 안에 지속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諸法無我]고 가르친다. 독자들은 이 논쟁을 통해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236
부처님께서 우리가 윤회(輪廻)한다고 가르쳤을까? 부처님께서 구체적으로 윤회를 언급한 가르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인들이 윤회를 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자아(自我)가 실재한다는 망상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 p.477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愛]에 먹히고 있는 것이며, 감각적 쾌락에 대한 뜨거운 고뇌에 불타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한마디로 말해서 감각적 쾌락은 우리를 집어삼키는 무서운 불길과 같다는 것이다.
--- p.495
6입처는 여섯 가지 지각활동, 즉 6근(六根)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함으로써 갖게 되는 중생의 망상이다. 이렇게 지각활동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지각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분별하는 마음[識], 접촉[觸], 느낌[受] 등을 취함으로써 5취온(五取蘊)이라는 망상 덩어리가 커간다.
--- p.872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정(禪定)은 깊은 삼매가 아니라 지각활동을 할 때 나타나는 고락의 감정에서 벗어난 평정한 마음이다. 이 평정한 마음을 떠나 신비한 삼매와 체험을 바란다면, 그것은 바른 불교 수행의 자세가 아니다.
--- p.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