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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오해

비밀과 오해

E, Crystal 글그림 | 시코(C Co.) | 2020년 04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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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27*188*20mm
ISBN13 9791195950652
ISBN10 119595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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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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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야, 난 가끔 구덩이를 생각해.’ 그 이야기를 할 때 형석의 목소리는 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그래서 세주는 아마도 익살스러운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다.
‘처음엔 그저 장난같이 시작하는 거야. 뭔가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꼭 잡으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런 기분으로 열심히 구덩이를 파. 그리고 그 입구를 나뭇가지와
잎을 얹어 그럴싸하게 감추는 거야. 그리고 나선 제법 잘 만들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하지.’
‘그리곤?’ 세주는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었다.
‘그런데 그만 잊고 말아. 내가 만들고도 어디에 만들어놓았는지. 어쩌면 만들었다는 것까지도.’
‘저런.’
‘어느 날 결국, 피융, 그 구덩이에 빠지는 거야. 내가 파놓은 구덩이에.’
‘맙소사.’
어찌 보면 내용의 전개상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형석의 목소리에 배인 자조적인 웃음은 간파하지 못한 채, 그 뒤가 자못 궁금했다.
‘빠지고 나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이를테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거야. 내가 만든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는 건 너무 어처구니없으니까.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아. 훨씬 심각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지.’
그땐 그 구덩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세주는 형석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부부도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그런 구덩이가 있어. 빠졌는데 나오는 방법을 모르겠어.’
--- p.233

겨울엔 눈조차 제대로 오지 않았다. 유주는 아침이면 코끝이 시릴 정도로 슬픔의 냄새를 맡았다. 낯설고 매캐한 그 냄새는 스산한 겨울바람처럼 어디선가 불어와 가슴 안으로 휘몰아쳤다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러면 그제야 실은 아주 익숙한 냄새라는 것을 알아채고 몸서리치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겨우내 맨발로 눈 덮인 벌판을 헤매듯 걸었다. 유주는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며 생각했다. 이건 병이고 나을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나을 거라고.
--- p.007

과연 사람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거라면 세상은 얼마나 단순해질까.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거라면. 소유하는 동안 내 것이 틀림없다면. 하지만 사람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p.088

세상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유주는 의심했다. 아마도 이전이었으면 어렴풋이 진우를 떠올렸겠지. 그에게 받은 과분한 애정에 감사와 가책을 느끼면서. 그런 이유로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음을 변명하고 안도하며. 그 얼마나 달콤한 자기기만이었는지.
--- p.178

세주
“섣불리 물을 수 없었어.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너희가 스스로 말해 주기 전까진.”

유주
“사람들은 감당할 수 있는 진실만 궁금해하는 법이에요. 감당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선 결코 알고 싶어하지 않죠.”

비주
“아무도 내겐 묻지 않았어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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