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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후예들

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리뷰 총점8.9 리뷰 18건 | 판매지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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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동양문화 45위 | 역사 top100 9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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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462g | 145*210*30mm
ISBN13 9791188990696
ISBN10 118899069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며

서장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던 몽골제국은 14세기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1. 18세기 초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제국 후예들
2. 몽골제국 울루스 체제의 지속성
3. 몽골제국과 초기 근대 유라시아 제국들

1부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차가다이 몽골 계승국가들

1장 티무르제국: 티무르가 건설한 제2의 몽골제국
1. 티무르는 몽골인인가 투르크인인가?
2. 차가다이 몽골인 국가인 티무르제국
3. 정복자 티무르
4. 샤루흐 지배하의 티무르제국
5. 후기 티무르제국

2장 무굴제국: 인도의 ‘몽골’제국
1. 무굴제국은 왜 인도의 ‘몽골’제국인가?
2. 바부르와 무굴제국의 건설
3. 무굴제국의 전성기
4. 무굴제국의 쇠퇴와 멸망

3장 모굴 칸국: 동차가다이 울루스 국가
1. 모굴인은 몽골인인가?
2. 투글룩 테무르와 모굴 칸국의 수립
3. 15세기의 모굴 칸국: 티무르제국과의 세력 균형
4. 16세기 이후의 모굴 칸국: 동투르키스탄의 지배
5. 모굴 칸국의 멸망

2부 중동과 서아시아의 일 칸국 후예들

4장 오스만제국: 몽골 세계에서 탄생한 투르크제국
1. 일 칸국의 제후국이었던 초기 오스만 왕조
2. 오스만제국 내 칭기스 왕조의 위상

5장 잘라이르 왕조: 중동의 잊힌 몽골제국 계승국가
1. 몽골제국의 중동 지배는 언제까지 지속되었는가?
2. 잘라이르 왕조의 시조 샤이흐 하산
3. 샤이흐 우와이스와 잘라이르 왕조의 전성기
4. 술탄 아흐마드와 티무르의 대결

3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주치 울루스 계승국가들

6장 모스크바 대공국: 주치 울루스를 계승한 초기 러시아제국
1. 몽골 지배가 남긴 긍정적 유산
2. 팍스 몽골리카와 러시아의 경제 발전
3. 모스크바 공국의 기원: 주치 울루스의 조세 징수 국가
4. 몽골제국 군사·정치 제도의 도입
5. 주치 울루스 출신의 용병들
6. 몽골 혈통의 러시아 군주들: 이반 4세, 시메온, 보리스 고두노프, 표트르 대제

7장 크림 칸국: 16세기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으로 군림한 주치 울루스 계승국가
1. 몽골제국의 잊힌 계승국가
2. 크림 칸국의 건국
3. 16세기의 크림 칸국: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
4. 17세기의 크림 칸국
5. 크림 칸국의 쇠퇴와 멸망

8장 카자흐 칸국: 유라시아 초원의 마지막 칭기스 왕조 국가
1. 몽골제국의 산물인 카자흐인
2. 카자흐 칸국의 기원: 주치 울루스의 좌익
3. 주치 울루스의 분열과 우루스 왕조의 출현
4. 카자흐 칸국의 수립
5. 카자흐 칸국의 발전과 전성기
6. 카자흐 칸국의 쇠퇴와 멸망

9장 우즈벡 칸국: 중앙아시아에서 칭기스 왕조를 부흥시킨 몽골제국 계승국가
1. 주치 울루스의 후예인 우즈벡인
2. 마와라안나흐르(트란스옥시아나)의 우즈벡 칸국
3. 페르가나 지방의 우즈벡 칸국: 코칸드 칸국
4. 히바의 우즈벡 칸국

4부 동내륙아시아의 몽골제국 후예들

10장 청제국: 몽골인의 협력으로 건설된 만주인의 제국
1. 만주인의 비非중국인 정체성
2. 청제국의 건설과 경영에 이바지한 몽골인
3. 몽골의 보르지긴 가문과 만주의 아이신 지오로 가문

11장 북원: 대원제국의 후예
1. 북원北元은 몽골제국의 유일한 계승국가인가?
2. 1368년 대도의 함락과 북원 시대의 개막
3. 에센 타이시와 오이라트제국의 건설
4. 다얀 칸과 칭기스 왕조의 부흥
5. 알탄 칸과 16세기 몽골 울루스의 전성기
6. 릭단 칸: 북원의 마지막 대칸
7. 몽골의 할하 투멘: 현대 몽골의 전신

나오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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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15세기 초중반 편찬된 티무르제국의 공식 역사서들은 이 물음에 분명한 답을 제공한다. 이 역사서들은 티무르 일족이 ‘몽골인’이라고 기술한다. 티무르의 아들 샤루흐Sh?hrukh(1409~1447 재위)의 명으로 편찬된 『무이즈 알안삽Mu?izz al-ans?b(계보의 강화자)』은 티무르 일가와 칭기스 일가의 계보를 상세히 기록한 문헌이다. 그런데 이 책은 티무르 일족을 ‘몽골인 지배자들sal?t.?n-i Mughul’이라고 지칭한다
--- p. 35-36, 「1부 1장 티무르제국: 티무르가 건설한 제2의 몽골제국」 중에서

중앙아시아 출신의 바부르는 스스로를 ‘인도인’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는 자서전인 『바부르나마』에서 인도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도는 이상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세상이다. 인도의 산, 강, 숲, 황야, 마을과 지방, 동물과 식물, 사람과 언어, 심지어는 비바람조차도 다르다.” 여기서 바부르가 말한 ‘우리나라’란 어느 나라를 말하는가? 물론 티무르 왕조였다.
--- p. 74-75, 「1부 2장 “무굴제국: 인도의 ‘몽골’제국」 중에서

초기 오스만제국의 사료들 중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인 『오스만 가문의 역사Tevarih˘-i Al-i 'Os-man』는 오스만 왕조의 건국과 몽골제국의 연관성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이 역사서에 따르면 오스만의 조부 술레이만 샤는 중앙아시아에서 “5만 호의 투르크멘인과 타타르인(몽골인)”을 이끌고 아나톨리아로 이주해 왔다.
--- p. 114, 「2부 4장 “오스만제국: 몽골 세계에서 탄생한 투르크 제국」 중에서

1575년 9월경 이반 4세는 스스로 차르 자리에서 물러난 뒤 시메온을 ‘전 루스의 대공Grand Prince of All Rus’으로 추대했다. 칭기스 칸의 후손이 명목상으로나마 초기 러시아제국의 수반이 되었던 것이다. 불과 1년 뒤 이반 4세는 시메온을 트베르Tver와 토르족Torzhok의 대공으로 임명하고 자신이 다시 친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메온의 재위 기간 중에도 실권을 행사한 것은 그였다. 그렇지만 이반 4세는 형식적으로는 시메온 앞에서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 p. 157, 「3부 6장 “모스크바 대공국: 주치 울루스를 계승한 초기 러시아제국」 중에서

데블레트 칸은 1571년 봄 기병 부대와 포병 부대를 동원해 모스크바 원정에 나섰다. 크림반도로부터 약 12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장거리 원정이었다. 그의 목적은 러시아로 하여금 카잔과 아스트라한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크림 군대는 오카강의 러시아 방어망을 뚫고 그해 5월 모스크바에 도달했다. 이반 4세는 이미 항전을 포기하고 로스토프로 도주한 뒤였다. 크림 군대는 모스크바를 점령한 뒤 이반 4세가 사신을 보내 아스트라한을 크림 칸국에 양도하고 공납을 계속해서 보낼 것이라고 약속하자 수많은 포로들을 이끌고 크림반도로 귀환했다.
--- p. 174-175, 「3부 7장 “크림 칸국: 16세기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으로 군림한 주치 울루스 계승국가」 중에서

청제국은 또한 국가의 경영에 필요한 문자를 제정하는 데 있어 몽골제국에 빚을 졌다. 만주 문자는 누르하치의 명에 의해 1599년에 몽골 문자를 약간 수정해 만든 표음문자인데 1632년에는 홍타이지의 명으로 더욱 개량되었다. 몽골 문자는 13세기 초 칭기스 칸에게 정복된 몽골의 한 부족이었던 나이만 부에서 사용되던 위구르 문자를 몽골이 변형·도입한 문자이다.
--- p. 253, 「4부 10장 “청제국: 몽골인의 협력으로 건설된 만주인의 제국」 중에서

알탄 칸은 숙적이었던 오이라트 집단과 명제국과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몽골인들의 리더였다. 북원의 군대는 1552년에 오이라트 집단을 격파하고 몽골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룸 일대를 탈환했고 이후에도 오이라트 집단을 계속 압박하여 몽골의 서북부 지역까지 몰아냈다. 알탄 칸은 또한 1540년대부터 거의 매년 중국에 대한 약탈 원정을 감행하며 명제국을 괴롭혔고, 1550년에는 명의 수도 북경까지 포위했다.
--- p. 273, 「4부 11장 “북원: 대원제국의 후예」 중에서 273쪽

현대 이란에 해당하는 영토의 서부는 ‘아잠 이라크Ir?q-i Ajam’(‘페르시아 이라크’ 의미. ‘아랍 이라크Ir?q-i Arab’로 불린 현대 이라크 혹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상대 개념), 동부는 ‘호라산’으로 불렸다. 약 600여 년 동안 사라졌던 ‘이란’ 정체성은 일 칸국의 군주들이 이란을 국토명으로 사용하며 부활할 수 있었다. 가잔 칸은 ‘이란과 이슬람의 황제P?dsh?h-i ?r?n va Islam’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일 칸국의 영토를 ‘이란?r?n zam?n’이라고 지칭했다. 이란 정체성은 이후 투르크멘 국가들인 카라 코윤루, 악 코윤루, 사파비 왕조에게도 계승되었다. 현대 이란인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오늘날 비非이란 정체성을 가진 여러 집단들로 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 p. 119, 「상자글 “몽골제국과 근대 이란의 탄생」 중에서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알탄 칸과 티베트 겔룩파(황교)의 수장인 소남 갸초Sonam Gyatso는 1578년 티베트고원의 청해호 부근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 회동에서 소남 갸초는 알탄 칸을 쿠빌라이 칸의 화신이라고 선포했고, 알탄 칸은 소남 갸초에게 달라이 라마(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소남 갸초는 겸손의 의미로 자신의 스승과 그의 스승에게 1대, 2대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올리고 자신은 3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사실상 초대 달라이 라마였고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그의 계승자이다.
--- p. 275, 「상자글 “몽골과 달라이 라마 제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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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몽골제국,
제국의 해체 이후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몽골제국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았다. 칭기스 칸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후 몽골제국은 13세기 중반에 이르러 동으로는 태평양에서 서로는 지중해, 남으로는 인도양에서 북으로는 바렌츠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는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힘을 과시했던 몽골제국은 1260년에 칭기스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대칸의 자리에 오른 시점부터 중앙집권적 제국이 아닌 4대 울루스 병립 체제를 이루었다. 몽골 초원과 중국, 티베트를 지배한 대원 울루스, 아나톨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일 칸국, 킵착 초원과 러시아 지역을 지배한 주치 울루스, 투르키스탄과 천산산맥 북방의 초원 지역을 지배한 차가다이 울루스가 몽골제국의 4대 울루스다.

몽골제국의 울루스들은 14세기 중반 전후 공통적으로 혼란기를 거치며 약화되거나 분열되었다. 하지만 15세기 초에 소멸한 일 칸국의 계승 세력을 제외하고는 17세기 말까지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강력한 군사·정치적 세력을 유지했으며, 특히 16세기에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몽골제국의 후예들』은 이와 같은 4대 울루스들을 중심으로 포스트 몽골 시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14세기 중반 이후 400여 년 동안의 몽골제국 후예들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를 통해 몽골제국이 중앙유라시아 곳곳에 남긴 유산들을 살핀다.

토론토대학 중앙유라시아 연구자 이주엽 교수의
국내 보기 드문 포스트 몽골 유라시아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몽골제국사, 유목민족제국사를 강의해온 이주엽 교수는 2017년에 『Qazaqliq, or Ambitious Brigandage, and the Formation of the Qazaqs: State and Identity in Post-Mongol Central Eurasia(카자흐 민족의 형성과 카자클륵: 포스트 몽골 시기 중앙유라시아의 국가와 민족 형성)』이라는 책으로 국제 중앙유라시아학계 최고 권위의 저술상인 CESS(Central Eurasian Studies Society) 도서상을 받았으며, 세계적인 중앙유라시아사 석학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저널에 논문을 기고해왔다. 이주엽 교수는 이렇게 쌓은 연구 성과와 함께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페르시아어, 차가타이 투르크어 등으로 쓰인 원전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에 첫 모국어 저서를 내놓게 되었다.

책은 티무르제국, 북원 등의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들부터 러시아, 오스만제국 등 몽골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받은 유라시아의 제국들까지 살피며 몽골제국이 중앙유라시아에 남긴 유산들을 총망라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몽골과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인도, 서아시아와 중동의 지역 강국들인 터키와 이란, 중앙아시아의 맹주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수많은 유라시아 국가들이 몽골제국의 계승국가이거나 몽골제국의 유산 위에서 변화, 발전한 나라이며, 이런 의미에서 근대 유라시아는 몽골제국의 산물이자 유산이라고 말한다. 또한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지식 정보를 40여 개 상자글로 아낌없이 담았다. 달라이 라마의 탄생, 맘룩 술탄국과 몽골제국과의 연관성, 몽골제국 후예들의 투르크인 정체성, 근대의 ‘이란’ 정체성의 부활 등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남긴 여러 흥미로운 유산들은 몽골제국과 그 이후의 유라시아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매우 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원 울루스, 북원과 청제국으로 이어지다

14세기 중엽 내분과 전염병 등으로 인해 쇠약해진 대원 울루스는 1368년 수도 대도(현 북경)가 명나라에 함락된 이후 그 영역이 몽골 초원으로 축소되었다. 원의 후예들은 오이라트 집단에 밀려 세력이 더욱 위축되었으나 쿠빌라이 칸의 후손인 다얀 칸과 그의 손자 알탄 칸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쿠빌라이 칸의 후예들은 만주인의 청제국에 병합당하는 17세기 말까지 몽골 초원에서 정권을 유지했다.

북원 몽골은 청제국의 부상에도 이바지했다. 청제국에 병합된 몽골인들은 청의 주력 군사 조직인 팔기병의 한 축을 이루며 만주인의 중국 정복과 경영에 기여했다. 청의 시조 누르하치가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창제한 만주 문자는 몽골 문자를 차용·발전시킨 것이었다. 또한 청 황실은 몽골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몽골 귀족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는데, 실제로 순치제 이후의 청 황제들은 강희제를 포함하여 몽골인의 피를 이어받은 몽골제국의 후예들이었다.

일 칸국, 잊힌 잘라이르 왕조와 몽골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제국

번영기를 누리던 일 칸국에서는 토가 테무르 칸이 암살된 후 여러 정권으로 분열되었다. 그렇지만 일 칸국의 영역에서 몽골인의 지배는 잘라이르 왕조를 통해 15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일 칸국의 중심부였던 아제르바이잔(이란 서북부 지역과 현 아제르바이잔을 포괄하는 지역)과 이라크를 지배한 몽골계 잘라이르 왕조는 샤이흐 우와이스의 치세에 전성기를 누리며 일 칸국의 옛 제후국가들에 종주권을 행사했다. 잘라이르 왕조는 차가다이 울루스의 티무르의 침공을 받아 쇠망할 때까지 일 칸국의 옛 영역에서 맹주의 지위를 지켰다.

일부 몽골제국사 연구자들은 투르크멘인이 주축이 되어 세운 오스만제국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보기도 한다. 초기 오스만제국의 사료들 중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인 『오스만 가문의 역사』는 오스만 왕조의 건국 집단이 투르크멘인과 몽골인의 혼합 집단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스만제국은 몽골제국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술레이만을 포함한 몇몇 오스만 황제들은 칭기스 칸의 법인 ‘자삭’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법전을 편찬했다. 일부 오스만제국의 문인들은 오스만 가문이 칭기스 가문과 혈연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오스만제국의 정치·군사 엘리트 사이에선 오스만 왕조가 단절될 경우 크림 칸국의 칭기스 왕조가 제위를 이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주치 울루스, 여러 칸국으로 나뉘고 초기 러시아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다

주치 울루스는 티무르의 침공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후에 여러 계승국가들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결국 주치 울루스의 우익은 울루 오르다, 크림 칸국,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카시모프 칸국 등으로 나뉘었다. 이들 중 크림반도를 중심으로 흑해 초원에서 코카서스산맥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크림 칸국은 주치의 후손인 멩글리 기레이 칸과 그의 아들 메흐메트 기레이 칸의 통치기를 거치며 동유럽의 군사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크림 칸국은 주변 칸국을 정복했고, 이반 4세하에 러시아(모스크바 대공국)가 강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등 러시아에도 공세를 취해나갔다. 1655년에 발발한 제2차 북방전쟁에도 폴란드의 동맹국으로 참전해 스웨덴군,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군, 헝가리군 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 17세기 중반에도 동유럽에서 군사강국으로 군림했다.

주치 울루스의 좌익은 16세기 초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으로 나뉘었다. 무함마드 시바니 칸이 서투르키스탄을 정복하고 세운 우즈벡 칸국은 압둘라 칸의 치세에 무굴제국과 사파비제국을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16세기 후반기에 동이슬람 세계의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카자흐 칸국은 카심 칸의 통치기를 거치며 중앙유라시아 초원에서 가장 거대한 유목 국가로 부상했다. 이후 카자흐 칸국은 19세기 초중반까지 존속하며 마지막으로 멸망한 칭기스 왕조 국가가 되었다.

16세기 이전의 러시아도 몽골제국 계승국가라는 평을 듣는다. 이는 분열되어 있던 러시아가 주치 울루스를 추종한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주치 울루스로부터 모든 러시아 공국에 대한 조세 징수권을 위임받은 후 부를 축적하며 러시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와 더불어 모스크바 대공국은 기병 전술과 역참제 등의 몽골 군사·행정 제도를 받아들이며 국가시스템을 정비했다. 또한 주치 울루스가 분열된 이후에는 유민들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이들을 이끈 주치 울루스 출신의 칭기스 일족과 군 지휘관들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지배층에 편입되어 영토 확장과 방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칭기스 일족은 러시아 사회에서 19세기까지도 귀족의 지위를 누렸는데 그중 한 명인 시메온 벡불라토비치는 1575년에 이반 4세에 의해 러시아의 수반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반 4세와 표트르 대제는 모계 선조를 통해 몽골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차가다이 울루스, 티무르제국과 모굴 칸국으로 갈라지고, 무굴제국을 낳다

차가다이 울루스는 14세기 초중반 케벡 칸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전성기 이후에 혼란기를 겪은 일 칸국과 주치 울루스처럼 차가다이 울루스도 14세기 중반 동서 울루스로 분열되었다. 동투르키스탄과 천산산맥 북방의 초원 지역을 지배한 동차가다이 진영의 모굴 칸국은 16세기 들어와서는 카자흐 칸국과 우즈벡 칸국의 공세에 밀려 그 영역이 신장 지역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차가다이 칸의 후예들은 17세기 말 오이라트인의 준가르제국에 정복될 때까지 동투르키스탄에서 정권을 유지했다.

서투르키스탄을 지배한 서차가다이 울루스에선 칭기스 일족의 권력이 약화되고 몽골계 부족장들이 실권을 장악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몽골계 바를라스 부의 티무르였다. 그는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쳐 차가다이 울루스, 주치 울루스, 잘라이르 왕조를 통합하며 몽골제국의 서반부를 재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더 나아가 델리 술탄국, 맘룩 술탄국, 오스만제국까지 차례로 제압하고 러시아 남부에서 북인도와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제2의 몽골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의 사후 티무르제국은 그 영역이 중앙아시아의 정주 지역으로 축소되었지만 티무르의 후예들은 서구 학자들이 ‘티무르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예 전성기를 이끌었다.

티무르와 칭기스 칸의 후손인 바부르는 티무르제국이 16세기 초 우즈벡 칸국에 패망한 뒤 티무르제국의 유민들을 이끌고 북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웠다. ‘무굴’제국이란 명칭은 16~17세기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그 기원은 이들이 접한 인도 토착민들이 무굴제국의 지배 집단을 무굴인, 즉 몽골인이라 부른 데 있다. 무굴제국의 티무르 일족 또한 스스로를 몽골인의 후예라고 여겼고, 무굴 왕조를 ‘티무르’ 혹은 ‘차가다이’ 왕조라고 불렀다. 무굴제국은 악바르의 치세에 북인도 전역을 정복하며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 인도대륙의 남부를 정복한 아우랑제브의 치세를 거치며 18세기 초까지 오랜 전성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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