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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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140*210*20mm |
ISBN13 | 9788950987732 |
ISBN10 | 8950987732 |
발행일 | 2020년 0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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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140*210*20mm |
ISBN13 | 9788950987732 |
ISBN10 | 8950987732 |
프롤로그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뒤엉킨 관계사 1부 이스마엘의 후손, 이슬람의 시대를 열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 무슬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팽창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슬람의 이해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도인들 2부 두 문명이 만든 새로운 질서 압바스 혁명, 이슬람 제국의 시작 이슬람 사회에 협력한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슬람의 개종 압력 이질적인 두 세계의 접촉과 교류 정복자들을 따라 전파된 문화와 기술 탁월한 지성의 이슬람 지식인들 교역의 영향과 피렌 테제 3부 경계를 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동서 변경 지대의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셀주크 튀르크의 출현과 영향 이슬람 세계의 통일과 십자군 십자군 원정에 대한 상반된 반응 경계를 넘나든 사람들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 4부 상업에서 지적 교류까지, 지중해에서 만난 문화 지중해를 둘러싼 교역 경쟁 섞이지 않으며 공존하는 관계 번역과 지적 교류가 남긴 유산 지적 교류의 사례들: 신학, 의학, 인구학 왜 두 세계는 서로의 종교에 무관심했는가 5부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 14세기 이후의 십자군 원정 오스만 제국의 확장 에스파냐에서 피어난 새로운 힘 살아남은 십자군의 이상과 대안 닫혀가는 이슬람 세계의 문 에필로그 천년을 공존해온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역자의 말 풍부한 당대 사료를 바탕으로 한 문화·종교적 코드 풀이 연대표 추천도서목록 주석 색인 |
기독교와 이슬람은 왜 서로를 적대시할까?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같은 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 아닌가? 저간의 얽히고설킨 사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가끔 이슬람근본주의자나 극단주의 세력인 IS 등의 테러를 보면 평화의 종교인지 폭력의 종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게다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명한 말,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을 들으면 은근히 두려움(?)도 인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으로의 여행은 생각도 못 한다.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위험하고 야만적인 집단'이라는 선입감이 달려 있다. 여기서 은근히 기독교 편에 서서 잣대를 들이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아마도 우리의 문화와 교육이 서구, 특히 미국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거라 짐작해 본다.
IS가 한창 악명을 드높일 때 말레이지아, 싱가폴, 인도네시아를 보름 동안 돌아다녔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생전 처음 들어가 본 이슬람 사원이 말라카의 사원이었는데, 왜 그렇게 맘이 떨렸는지…. (지금은 웃고 있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사원이 아주 아름답기도 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시내의 숙소까지 그냥 태워준 그 친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말레이시아의 행정 신도시 푸트라자야 푸트라 모스크에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모두가 친절하였다. 결정적으로 쿠알라룸푸르의 이슬람 예술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굳어 있던 마음이 풀어졌다. 르네상스의 원천이 이슬람 문화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문명의 자락은 놀랍고도 품격이 있었다. 천일야화의 한 장면이 절로 그려졌다….
독서동아리에서 읽을 책으로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_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초기 교류사』를 추천했다. 이슬람의 출현 이후 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주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탄생에서 십자군 원정까지, 두 문명이 만들어낸 충돌과 소통의 역사!'. 말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은가. 일단 목차를 보니 5부로 짜여 있다. 1부에서는 '이스마엘의 후손, 이슬람의 시대를 열다', 2부는 '두 문명이 만든 새로운 질서', 3부는 '경계를 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4부는 '상업에서 지적 교류까지, 지중해에서 만난 문화', 마지막 5부는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로 적대와 공존을 넘나들었던 두 문명의 초기 교류사가 펼쳐진다.
첫 꼭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차이」이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 꾸란을 믿는 종교이고, 그리스도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는 첫 출발이 흥미를 일으킨다. 이어 잘 알려진 삼위일체(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지녔다는 교리. 개인적으로 불교의 삼신불(三身佛) 사상과 너무 근본이 비슷하다고 느낌)와 성육신(成肉身, 하느님의 아들)을 거론한다. '이슬람의 준엄한 일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 어떻게 한 하느님이 나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으로 변형될 수 있는가?'. 이런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들이 서로의 이해와 화합보다는 멸시와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미지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두 가지 구성 요소다. 하나는 무함마드가 거짓 선지자, 협잡꾼, 이단자이며 추종자들은 살인자이자 폭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요소들도 추가되었는데, 무절제와 성적인 방종에 대한 비난이다. ...(중략)... 무슬림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하느님의 마지막이자 가장 완전한 계시를 받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으로 고취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그리스도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낮춰봤다. 게다가 다르 알-이슬람은 지상에서 하느님이 베풀어준 은총과 섭리로 그리스도 세계보다 훨씬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261쪽, 에필로그에서….)
750년에 '압바스 혁명'이라는 정치적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이슬람 제국이 시작되는데, 이 압바스 왕가는 1258년 몽골족에 의해 망하기까지 이슬람 세계를 통할했다고 한다. 왕조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세계와 간단한 접촉만 한 모양이지만, 아랍어와 교역(상인과 수공업자들의 활동이 존중되고, 경제적으로도 수고에 맞는 넉넉한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으로 세를 불리면서 "인종보다는 종교와 문화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 다시 말해 '아랍' 사회가 아닌 진정한 '이슬람' 사회로 나아가게 된다. 초기엔 (부유하고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 사회의 탄생에 긴요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슬람으로서도 세금과 유용한 지식의 확보라는 의미에서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보다.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는 십자군에 엄청난 관심을 기울였다는 건 영화나 책을 통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긴 하다. 이슬람에 빼앗긴 성지를 되찾기 위해 일으킨 이 종교 전쟁은 도덕적 무게감과 위엄을 지닌 주제이지만, 200년 동안의 여덟 번 전쟁 과정을 보면 종교 전쟁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당대의 이슬람 화자들에게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를 성가시게 한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 십자군은 이를테면 한때 왔다가 떠난 이들이었다.'라면서, '십자군에 대한 무관심은 중세 이슬람 세계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문화 전반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요소'라고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너무 서구적 시각으로 각색된 듯….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세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관계사에 '몽골'이 중요하게 등장한 것이다. 1230년 이후 몽골의 진격은 헝가리와 폴란드 및 독일 지역까지 이어지자 (서유럽 공세가 멈춘 것은 1241년 우구데이 칸이 사망하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교황은 사절단을 보내는데, '몽골이 그들의 종교로 보이는 샤머니즘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렇게만 된다면 몽골과 연합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항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물론 허황한 생각에 불과했을 뿐이고…. 몽골은 의외로 빨리 서방에서 눈길을 떼는데, 그 이유가 몽골이 거느린 수백만의 군마를 먹일 목초지가 우크라이나 서쪽에는 없었다나….
중세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는 어떻게 무슬림-유대인-그리스인이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상업적 헤게모니를 점진적으로 잠식해갈 수 있었을까? 4부의 이런 테마도 흥미롭다. 십자군이 차지한 지역의 교역로를 통한 이국과의 교역(동서무역)이 훗날 세계를 지배하게 될 유럽의 상업 자본주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 하니 십자군 전쟁이 결코 실패한 건 아니라 하겠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십자군 시대에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의 상호작용은 지적 분야에서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라는 건 르네상스를 통해 알고 있는 바이고, 이 시기에 많은 아랍어 저작들이 라틴어로 번역 소개되어 세계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한다. 문화와 상업경제의 부흥이 오늘날 서구의 번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4세기의 십자군 원정 이후,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 이 책의 결론은 담백하다.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얻을 것을 이미 다 얻었던 것이다. 번역자로 첫발을 디뎠던 서방의 지식인은 이제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도교 세계로부터 무언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경멸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십자군을 패퇴시키고 확장하던 오스만 세력이 몽골의 티무르 원정군에게 타격을 받고 휴지기를 가질 때, 십자군의 이상은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교 세계에도 강력하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천년을 공존해온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힘이 작용하는 현대의 판도가 어떠하든 이제 좀 서로를 이해하고 화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생각으로 독후기를 마감한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십자가와 초승달'이라는 상징을 보면 어떤 종교를 이야기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갔다. 두 세계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고 각각의 질서로 세상에 공존하고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오늘날 갈등하는 두 종교의 역사를 큰 틀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 책『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리처드 플레처. 1944년 영국 요크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플레처가 남긴 마지막 저술이다.
이 책의 의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복잡하게 뒤엉켜 논란이 되는 일련의 관계들을 중립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 관계들은 세계사의 형성뿐 아니라 현재의 수많은 민족과 다양한 문명권의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8쪽)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된다. 프로로그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뒤엉킨 관계사'를 시작으로, 1부 '이스마엘의 후손, 이슬람의 시대를 열다', 2부 '두 문명이 만든 새로운 질서', 3부 '경계를 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4부 '상업에서 지적 교류까지, 지중해에서 만난 문화', 5부 '두 세계의 문은 어떻게 닫혔는가'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천 년을 공존해온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역자의 말 '풍부한 당대 사료를 바탕으로 한 문화, 종교적 코드 풀이' 등으로 마무리 된다.
'종교'나 '정치'는 서로의 견해를 좁히기 힘들어서 대화 소재로 삼지 말아야한다고들 한다. 결국에 싸움 나기 십상이라고. 특히 종교는 그렇다. 어느 날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표기의 문제는 다양하겠지만, 그냥 절대자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모두 '하느님'으로 옮겼다고 한다)이라는 점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렇게 적대적으로 지내는 걸까? 예전부터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이 나의 호기심을 채워주리라 생각되어 집중해서 읽어나갔다.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들은 상호간 너그러운 이해와 화합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슬람의 준엄한 일신교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쾌해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슬람이 '하나의 세로운 종교'일 수 있다는 관념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수용할 수도 없었다. (16쪽)
이슬람의 탄생에서 십자군 원정까지,
두 문명이 만들어낸 충돌과 소통의 역사!
때로는 적대적으로, 때로는 우호적으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속에서
그들은 왜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실패했는가! (책 뒷표지 中)
사실 생각보다 얇은 이 책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중세사를 연구한 저자의 설명 덕분에 호기심을 채워가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이렇게 종교를 다룬 책은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며 치우치지 않게 균형감 있는 글을 보여주어야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처음 시작하면서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들이 있으며, 그것이 상호간 너그러운 이해와 화합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설명을 조목조목 이어나가서 곧바로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최대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풀어나가고 있어서 읽어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특히 현재 우리의 눈에 비치는 적대적인 두 종교의 모습만이 아닌,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천년 역사를 큰 틀에서 훑어보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자칫 무겁고 난해한 주제일 수 있는 내용을 쉽고 편안하게 읽으며 지적호기심을 채울 수 있으니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히 종교 유무에 상관없이 역사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으니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책이니 일독을 권한다.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라리루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극적인 초기 교류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과연 이 두 종교는 어떻게 천년을 공존해왔고 그것을 통해 세계는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이 책은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매우 의미 깊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며 ‘그리스도교와 이스람의 뒤엉킨 관계사’라는 내용을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의 의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복잡하게 뒤엉켜 논란이 되는 일련의 관계들을 중립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p. 8).”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두 종교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먼저 두 종교의 차이는 단일 경정과 복수 경전의 차이처럼 오직 ‘알라’만을 믿는 이슬람의 단일신론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교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을 믿는 종교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 이 같은 단일 경전과 복수 경전의 신앙 사이의 차이는 세계사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하느님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내용이다. 이 책은 무함마드가 사망한 서기 632년 이래 약 20년에 걸쳐 정통 이슬람 전통에 따라 편집되어 최종본이 확정되었다(p. 17).”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부터 시작된 이슬람교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그리스도인들 통해 태동된 그리스도교가 천년의 역사를 거쳐 어떤 관계로 변모했는지 설명한다. 이질적인 두 개가 만나게 되면 그 안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때로는 힘의 논리 또는 설득의 논리를 통해 더 강한 영향을 주는 존재와 그 존재에게 영향을 받게 되는 존재로 질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점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었고 결국 서로의 문이 굳게 닫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정된 환경 속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는 자연적인 수순이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성경에서도 아브람과 조카 롯이 서로의 양 떼가 많아져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창세기 13장). 천년을 공존할 수 있었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의 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