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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까나

어쩔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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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498g | 145*205*30mm
ISBN13 9788957077696
ISBN10 8957077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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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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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 검은 바다 위에 우리를 태울 커다란 배가 떠 있다. 배는 점점 더 커져서 우리 앞으로 다가들었다. 깨어나. 깨어나란 말야. 우리는야 인형 가족. 단란하고 행복한. 저 높이, 멀리서부터 비행기가 다가왔다. 굉음을 내며, 긴 궤적을 그리며 점점 우리에게로 낮아진다. 그리고 배도 더 가까워진다. 비행기와 배, 그리고 우리를 태운 싼타페 자동차가 삼각형 꼭짓점에서 서로를 향해 고속으로 질주한다. 세 개의 점이 한곳에서 만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난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기집애의 손을 꼭 잡고 몸통만 남은 나나와 나나의 머리를 삼킨 청소기 나나를 함께 힘주어 끌어안았다. 검은 길과 검은 바다가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서서히 틈을 메운다. ---「어떤 장의사의 행복한 창업 계획서」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엄미정의 입술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박과장은 그 입술에서 세상이 뒤집어질 대단한 비밀이 흘러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천둥이 두둥, 천지를 울렸다. 두둥 소리는 천지를 울리고 박과장 심장을 파고들었다. 박과장은 그 소리가 심장에서 나온 건지 심장으로 들어간 건지 헷갈렸다. ---「원더풀 라이프」

“못 믿겠으면 지금 가요. 전부 다 같이 가자구요.”
그러자 사람들이 쭈뼛거리면서 빵집 주인을 뒤따랐다. 장씨는 깃발을 들고 뒤따랐다. 봄바람에 깃발이 날려 ‘뉴’자와 ‘왕’자가 겹쳐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아무도 길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이 아니던가. 봄바람이 살랑 불더니 기어이 봄이 오긴 오려나 보다. 사람들의 눈에 벌써 봄 햇살이 가득했다. ---「돌다방 별곡」

부금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외롭고도 슬펐을 삶이었다. 누군가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그 사랑을 후회하는가 물으면 가이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묻는 걸 보아하니 당신은 가슴속에서 벚꽃 망우리가 한꺼번에 터져 그 진동하는 향내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두둥실 보름달이 꽉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것이구려.”
라고 말이다. ---「어쩔까나」

그런데 이상한 건 두툼한 잿빛 오리털 파카를 입고 목에 캐시미어 목도리를 친친 동여 맨 채 함박눈을 제대로 맞고 서 있는 남자에게서 사막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정수리에 하얗게 얹힌 눈을 보면서 나는 마치 사막에 내리고 있는 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넓디넓고 한없이 뜨거운 사막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마침내 모래바람을 타고 소리 없는 눈 폭풍이 되어 방향 없이 흩어졌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달궈진 모래 바다에 쉼 없이 내리는 눈이 섞인 냄새는 뭐랄까…… 일종의 판타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마치 백일몽이라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

겨울밤의 놀이공원 입구는 텅 비어 있었다. 저 멀리서 내가 가야할 곳의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뿐, 어둠과 추위와 이유를 모르겠는 두려움만 내 옆에 바짝 따라붙었다. 사방을 둘러봐야 움직이는 거라곤 밤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들뿐이었다. 택시가 운행하고 있을 리도 없고, 코끼리 열차는 내일 아침이나 돼서야 덜커덩거리는 엔진음을 내면서 달릴 것이다. 그저 홀로 걸어서 저 길을 갈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

기억이와 아라의 몸에서 음습하고 비리고 축축한 곰팡내가 났다. 어둠의 냄새가 났다. 따뜻한 기억이의 냄새. 낯선 흙의 냄새. 무언가 썩어 흐르는 듯한 물의 냄새. 엄마는 폐 전체를 열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한 뼘쯤 부풀었다, 꺼졌다.
“너와 아라에게서 추깃물 냄새가 나는구나. 추깃물이 무슨 뜻인지 아니?”
아라가 엄마를 향해 고개를 꺾고 갸웃거렸다. 기억이의 시선은 저 멀리,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구멍이 그리워진 걸까? 차가운 공기가 세 사람을 에워싸고 휘돌았다. 엄마는 목을 움츠리고 기억이는 등허리를 곧추세웠으며, 아라는 온몸을 둥글게 말았다. ---「기억이의 노래」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그러나 하지 못했던 말을 하세요.”
말이라고? 창의 말은 액체가 되어 눈에서 흘렀다.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정말 방대한 양이었다. 눈에서 흐른 액체는 창의 가슴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아주 오래된 것인 듯, 탁하고…… 진하고…… 붉었다. ---「프롤로그」

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그 세상 밖에 자리한 ‘타자’가 되는 방식을 습득해 나간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아픔을 주는 세상 한가운데 뛰어들어 현실을 질기게 버텨 나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지침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 실패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현실’이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해보라. ‘현실적’인 세계를 여실히 재현하고 마침내 자신의 몸 안에 새겨 넣은 ‘현실적’인 이야기 사이에 생긴 틈. 예리한 시선이 작동하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이음매, 혹은 모종의 ‘거리’ 사이에 걸쳐서 우리는 끊임없는 탈주와 탐색을 도모한다.
―이소연(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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