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인들에게는 직선적 시간관만큼 낯선 것도 없다.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라는 기준으로 나누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어색한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에게 시간은 무한히 순환하는 연속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원형의 모양이다. 진행 중인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인 동시에 다시 일어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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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창조될 때 비슈누 신은 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신 아난타를 배 삼아 바다 위에 누워 있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 혼돈의 바다를 항해하는 비슈누와 아난타. 바다는 그 깊이도, 끝도 알 수 없었다. 똬리를 튼 아난타의 몸은 비슈누에게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했고, 천 개의 머리는 지붕이 되어줬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 얼마나 오랫동안 이 둘은 이렇게 쉬고 있었을까?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비슈누 신은 창조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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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자세에서 요기는 골반을 통해 자세를 고정시킨다. 척추는 연꽃 줄기처럼 유연하면서도 곧다.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머리의 정상, 즉 정수리를 의미한다. 사람의 정수리에는 사하스라라Sahasrara 차크라가 위치해 있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혹은 활짝 핀 연꽃은 씨앗에 담긴 가능성의 실현, 존재의 가능성의 실현을 상징한다. 요가 수행의 길에 접어든 이들 중 연꽃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자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연꽃을 피울 수 없다. 단지 연꽃이 자라기를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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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뱀과 인간이 항상 가까이 살았기 때문인지 뱀과 관련된 풍부한 상징들이 전해 내려온다. 힌두교 사상에서 뱀은 세상을 떠받드는 존재, 비슈누의 잠자리, 과거 세계의 잔재이자 미래 세계의 기원이다.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의 능력도 이러한 상징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뱀은 반복되는 창조와 소멸과정에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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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자세를 통해 우리는 상체를 허벅지 위로 구부려 주요 기관들을 보호하게 된다. 우리는 몸을 감싸 안으며 내부의 안식처를 찾고, 안정감을 느낀다. 나아가 아기 자세는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자세로 잠을 청한다. 앞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현자 마르칸데야는 한 우주의 끝과 새로운 우주의 시작 사이에 아기의 뱃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마찬가지로 아기 자세는 요가 수련 도중에 쉬어가는 휴식 자세의 역할을 한다. 요가 수련 과정을 떠나서도 아기 자세는 편안하게 몸을 내맡기고 스스로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돕는다. 주위에 아무리 거대한 홍수가 닥쳐도 아기 자세는 내부에 안식처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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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끌어야 할 전쟁은 바로 내부에 있다. 이는 무기를 앞세운 외부의 전쟁이 아니다. 요기는 전사 자세에서 목을 자르기 위해 검을 내리치는 게 아니다. 이는 내부에 자리 잡은 진짜 적, 모든 고통의 근원인 무지와 탐욕의 사슬을 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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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신 야마Yama는 죽은 자들의 왕국을 다스린다. 야마는 검은 물 소 위에 올라탄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모든 존재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천천히 그리고 준엄하게 그들을 따라다닌다. 그는 인간에게 보상을 내리고 벌을 준다. 즉 그들이 저지른 업에 따라 내세를 결정하는 것이다. 야마는 올가미를 몸에 감고서 인간의 윤회를 가늠하는데, 이는 인간이 저지른 업karma을 씻어낼 때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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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들은 키도 체형도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게 어떤 요가 자세가 유리하다면, 같은 이유로 다른 자세는 불리할 것이다. 아쉬타바크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다른 신체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이를 통해 완벽한 자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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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고대 인도 북부에 아주 현명한 자나카 왕이 살고 있었다. 비데하 왕국의 자나카 왕은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자나카 왕이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데 쟁기 날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렸다. 땅을 파보니 커다란 알이 나왔는데, 그 알에는 작은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왕은 그를 자신의 딸로 삼았고, ‘고랑’이라는 뜻의 시타라 이름 지었다. 흙에서 태어난 시타는 훗날 라마를 만나게 되어, 이 두 사람은 『라마야나』 모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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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가 의식 재계를 하던 중, 한 전갈이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전갈을 구하고 강가로 나아갔다. 그런데 도중에 사두의 체온으로 활력을 찾은 전갈이 침을 세워 그의 손목을 찔렀다. 그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사두는 전갈을 들고 계속해서 걸었다. 뭍에 도착하자 그의 제자가 물었다. “왜 전갈이 찌르게 그냥 두셨습니까?” 그러자 사두가 대답했다. “찌르는 것이 전갈의 다르마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나의 다르마다. 전갈이 자신의 다르마를 그리 잘 수행하는데, 어찌 내가 나의 다르마를 포기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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