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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환상점

환환상점

: 교환, 어쩌면 기묘한 여행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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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43*210mm
ISBN13 9788961772341
ISBN10 8961772341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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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워낙 낡고 오래돼서 주인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젊은 주인이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로 상냥하게 나를 맞았다. 이제부터 가게 소개를 늘어놓겠구나 싶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나를 향해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주인이 앉아 있는 계산대에는 아름다운 노을 사진 한 장과 노트북 컴퓨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게 안에 가지런히 정리된 선반에는 물건들이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의류부터 문구, 주방 용품, 전자 제품, 심지어 돋보기안경과 식료품까지 갖가지 물건이 빼곡했다. 하지만 그 물건들 어디에도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혹시 물물 교환 방식이라서 가게 이름이 ‘환환상점’인 건가?
---p. 환환상점에 가다

“개가 그렇게 똑똑해요? 마음을 읽을 줄도 알고요?”
난 궁금한 나머지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스타라는 그 안내견을 드디어 정면으로 바라봤다.
“응. 마음을 읽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시각 장애인의 눈이 될 수 있겠니?”
내가 어릴 때 울면서 보챌 때마다 어른들이 주변에 있는 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뚝 그치지 않으면 강아지한테 물어가라고 한다.” 그래서 난 개가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스타를 제대로 쳐다본 후부터는 녀석이 아주 무섭지는 않았다. 그래! 시각 장애인을 돕는 개야. 마음을 읽는 개라고.
“아주 착해 보이네요. 얼굴만 아니면, 등이나 엉덩이는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말이니? 잘됐다. 그럼 녀석이 널 등지고 엎드리게 할게.”
뒤이어 아주머니는 마치 아이에게 얘기하듯 스타에게 말했다.
“네가 엎드린 채로 안 쳐다보면 이 누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대. 자, 내 발밑으로 와서 엎드려 있으렴.”
---p. 스타의 빛나는 눈동자

“이런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별로 없어. 그거 알아? 머리 감겨주는 일은 월급이 무지 적더라. 그래도 괜찮아. 그거라도 집에 가져다주면 엄마 표정이 조금은 밝아지거든.”
그 애가 내게 씩 웃어 보이더니 다시 정면의 허공을 응시하며 천천히 얘기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일단 졸업만 하고 진학은 미룰까 봐. 그래야 집에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너무 힘들지 않겠어?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야?’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작은 백로 한 마리가 날아와 연못가 바위에 내려앉았다.
“백로다.”
왕수링이 좋아하며 속삭이듯 외쳤다.
---p. 자유

“봐!”
언니가 특유의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가며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보던 나는 가방에 적힌 세 글자를 발견했다. ‘사랑해’였다!
“샤오친이 특별히 고른 천이야. 원래는 무슨 연극 공연의 광고 현수막이었던 것 같아.”
엄마가 옆에서 설명했다.
‘나도 언니를 사랑해!’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p. 사랑해중에

그들의 안식처는 알고 보니 아주아주 먼 곳에 있었다.
우리 집에도 외국인 가정부 아주머니가 있다. 언젠가 아주머니가 가족사진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진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빛이 반사되어 그렇게 보인 줄 알았다. 아주머니도 아이가 있는데 막상 자기 아이는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향에 아빠도, 엄마도, 할머니도 있을 텐데 여기서 편찮은 우리 할머니를 돌보고, 우리 집을 청소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요리했던 거다. 그것도 하필 매운 걸 안 먹는 우리 집에 오는 바람에 우리 엄마한테 새로 요리를 배워서 늘 우리나라 요리만 만들고 먹었다. 분명 인도네시아 요리를 더 좋아할 텐데 말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말을 하는 아주머니가 억지로 우리말을 배우고 써야 했다는 것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p. 틈중에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동생을 응시했다. 녀석이 저런 미소를 짓는다는 건 나한테 혼날 만한 짓을 했다는 뜻이다. 동생이 헤죽헤죽 웃으며 냉장고로 달려가 우유를 꺼내 왔다. 우유가 이미 4분의 1 정도밖에 안 남은 상태였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졌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마시면 배탈 난다고.”
“그게 아니야. 내가 우유를 데워다가 옆 골목에 있는 강아지한테 줬어.”
“가스레인지를 썼어? 넌 아직 어리니까 함부로 가스 불 켜지 말랬잖아. 그리고 강아지는 또 뭐야? 왜 우유를 강아지한테 갖다줘?”
동생이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p. 철이 드는 것

“왜죠? 어째서 물건을 계속 바꿔 가게 내버려 두는 거예요?”
깜짝 놀란 주인이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쓰레기예요! 내가 지금껏 가져온 건 다 쓰레기였다고요! 왜 받아주는 거죠? 그런 쓰레기들을 어째서요? 아무도 가지려 하지 않을 텐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게 주인이 일부러 나를 이기적인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게 틀림없었다.
가게 주인은 내 말을 듣더니 돌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원래 우리 가게는 나한테 쓸모없어진 쓰레기를 가져다가 내가 필요한 보물로 바꾸는 곳이란다. 그러니까 너한테는 쓰레기지만 누군가는 그걸 ‘보물’로 여기고 가져갈 수도 있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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