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사회학, 문화학, 인류학, 박물관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박물관은 문화적 차이를 합의, 구축하고 소통하는 등, 다름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문화적 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이 과정에 존재하는 복합성과 모순, 불확실성을 탐구하려고 시도하였지만 이 중 몇몇 연구는 특히 박물관이 권력의 도구로서 기능하며, 성별과 인종 등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계층적 또는 부정적이고 유해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박물관은 소수 집단의 정체성을 지워버리고, 무시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차별적인 시각으로 문화적 차이를 다루던 기존의 시각을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중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박물관의 가능성에 대해 박물관 실무자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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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세인트 뭉고 종교적 삶과 예술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은 다양한 종교와 믿음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물들을 만나게 된다. 세계 6대 종교인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 유대교, 시크교를 주제로 한 이 전시물들은 한 전시 공간에 어우러져 각 종교의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이들이 공유하는 점은 무엇인지, 또 서로 구별되는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한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 관람객들은 게시판에 느낀 점을 남기거나 박물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전시의 방향과 관람객의 참여 방식은 세인트 뭉고 박물관이 설립될 때부터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 또한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도 더욱 잘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 p.19

미디어를 연구하는 많은 이론가들은, 관심을 받으려 경쟁하며 여러 매체가 쏟아붓는 수많은 메시지 속에서, 독자들은 점점 더 시달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텔레비전, 신문, 극장, 영화, 박물관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메시지 중 얼마간은 독자에게 인지되고 소비되지만,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무시되고 버려진다. 그렇다면, 박물관이 다른 미디어에 없는 독특하고 구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이 관람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과연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는 ‘권위 있는 지식을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문화적 위치가 편견과 싸우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 샤론 맥도널드는 런던 과학 박물관을 배경으로 관람객들이 박물관의 문화적 권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대다수의 방문자들이 박물관이 ‘똑 떨어지는 정답’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박물관에 온다는 것이다. 과학 박물관이라는 특성상 객관적인 내용을 다룰 것이라는 인식이 관람객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관람객 연구에서 박물관의 권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라 할 수 있다.
--- p.42

인종, 국가 정체성, 이민, 다문화주의와 같은 문제들이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게 된 지금, 학문적인 연구만이 아니라 정책과 실무적인 측면에서도 인종 차별의 수많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예를 들면 후기 식민주의 이론3에서는 원시 토착 사회가 겪은 편견에 대한 연구가 많았으며, 서구 사회에서 소수 민족이 겪는 편견에 관한 영향력 있는 연구들이 꽤 이루어져 왔다. 한편, 젠더, 장애, 계층, 성적 근원, 종교, 나이, 건강 등에 대한 편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시기와 상황들도 있었다.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게이·레즈비언·장애인의 권리 찾기 등 여러 사회 운동들은 각각의 문제에 대한 편견을 조명하며, 이것이 얼마나 불공정하며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알리는 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사법적인 체계 역시,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편견의 관행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어떤 정치 사회적 배경에서 특정 형태의 편견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할 때, 이런 ‘불수용’은 결국은 법과 정부 정책의 ‘틀’ 안에서 결정되며, 한번 만들어진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절묘하게 형태만 바꾸어 계속 진화해나간다. 사회 규범이 변화함에 따라 편견의 관행이 진화해 온 것은 ‘현대적 인종 차별’이라는 용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 p.63

현대 사회의 독자(관객)를 ‘의미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존재’로서 이해하게 되면서 편견과 싸우는 박물관은 또 다른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었다. 이전에 자주 사용되던 ‘문화 전달 이론’이나 ‘텍스트 중심’ 모델에서는 ‘수동적으로 메시지를 받아 비판 없이 흡수하는 독자’를 전제로 하는데, 이 같은 개념은 더 이상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박물관 관람객들은 개인적, 사회 문화적 요소와 전시에서 받은 영향을 조정하여 스스로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데, 심지어 이 의미는 박물관의 의도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물관은 관용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반응을 의도했는데, 관람객은 동성애 혐오, 인종 차별, 성차별 등 편견에 가득찬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최근 박물관학에서 통용되는 학습 모델인 구성주의 학습에서도 박물관이 어떤 결과만을 ‘정당한’ 것으로 상정할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각자 구축한 의미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편견과 맞서는 데 있어서 박물관의 역할과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동안 관람객과 미디어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마찰과 투쟁을 빚는 관계로 인식되었는데, 이제 둘 간에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가?
--- p.125

개인과 집단이 ‘다름’을 다룰 때, 미디어는 편견적이든 평등적이든 모순적이든, 어떤 정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자원을 제공한다. 또한, 박물관은 여러 장치들을 사용해서 문화의 생산 과정에 관람객을 참여하게 하여, 이 과정에서 관람객이 각각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 뿐 아니라 박물관이라는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전시는, 관람객이 퍼내야 하는 ‘자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무대이자 강단으로서, 각각 만들어낸 의미를 표현하고, 나누고, 보급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한편 편견과 싸우려는 전시들이 내어놓는 박물관의 자원은 그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 목적에서 중립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관람객과 상호 이해하고 소통하는 범위 안에서, 다름에 대한 윤리적 잣대와 도덕적 한계를 분명하게 확립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윤리적, 도덕적 한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며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전시 기획자들은 인권에 대한 기본 수칙을 시작점이자 지침으로 삼게 된다.
--- p.174

대부분의 미디어 연구에서 관람객이 활동적일수록 텍스트의 권력은 축소된다고 본다. 즉, 관람객이 능동적일수록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생기고, 원하는 메시지를 확립하려는 미디어와 텍스트의 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었듯이, 다름에 대한 해석을 만드는 데 박물관의 역할은 ‘원하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강압하는 게 아니라 관람객을 ‘파트너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박물관의 작용 주체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면, 독자의 ‘활동’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관람객이 능동적인 참여를 할수록 담론적 해석을 만들고 전파하는 상황을 조성하게 되고, 결국 편견과 싸우는 박물관의 능력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 p.183

세계적으로도 많은 박물관들이 전시와 유물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재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를 겪었거나 사회적, 정치적, 인구학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은 사회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여러 가지 ‘다름’ 중에 어떤 것이 박물관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정당한 것인지, 또 민족성, 국적, 장애, 종교, 나이 등 집단의 정체성을 아우를 수 있는 ‘다름’은 어떤 것인지는 국가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물관들은 스스로 개혁하고 재창조하여, 전시를 통해 이 다양한 ‘다름’의 형태들을 담아내고 포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다양성을 재현하는 여러 개념과 방식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고, 이전에 배제되던 집단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표현하는지, 그 기법에 대한 연구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박물관의 관행은 선별적이고 불균등한 실정이다. 공공 박물관에서 인종주의 등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담은 전시를 하거나, 수십 년 간 지역사회에 기여한 소수 민족을 전시에서 배제하는 것 등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지만, 아직도 이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리고 미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 p.240

장애를 재현하는 것은 박물관 실무에 있어 미지의 영역이며, 연구에서 만난 많은 큐레이터들도 위험과 어려움으로 여기고 있었다. 일부 기관들에서 장애와 장애인의 삶과 관련된 자료를 해석하고 전시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대부분의 박물관에서는 앞서 말한 여러 걱정과 우려를 가지고 있어 적극적으로 다루기를 꺼렸다. 상당수의 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하거나 장애인들에게 불쾌감을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부적절한 방식으로 관심을 끌게 되거나, 신체적 차이를 낙인찍거나, 누군가에게 오해를 살 만한 (시대에 뒤떨어진, 혐오스러운, 또는 모욕적인 용어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 차이를 묘사한 전시에서 관람객이 보일 수 있는 반응들, 즉 빤히 쳐다보거나 비웃거나, 불쾌해하거나 불편함을 토로하는 등의 반응들도 예상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인터뷰 대상자들이 장애 관련 이야기들을 전시에 담아내는 것에 관심은 있었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걱정을 넘어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조언과 안내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 p.258

지난 50년 동안 박물관들은 ‘다름’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박물관 소장품이 사회 지배층의 가치와 경험을 반영한 편향적 역사를 대변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점은 가장 바로잡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제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집단을 배제하고 제약하는 행위를 바로잡을 새로운 문화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기존의 전시 자료와 전시물을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최근에 건립된 박물관들을 중심으로, 이제까지 부정되었던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에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풍성한 소장품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장애는 대부분의 전시의 재현에서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 p.274

우리 사회에 다양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여러 형태의 편견을 다루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관람객이 전시를 접할 때, 박물관은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연구에서도 관람객이 전시를 역동적, 소통적으로 전시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확인하였는데, 이것은 박물관이 인권 담론이라는 규범적 호소를 통해 편견의 사회적, 개인적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평등한 권리를 세우려는 시도를 한다고 해서, 문화적 특수성을 등한시하는 동화주의적 모델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은 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하려는 집단을 포함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하고 ‘다름’에 관한 세심한 해석과 권리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 아무리 미묘한 것이더라도 관람객들이 이러한 접근에 반응을 보인다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편견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경계를 새로이 배치할 수 있는 박물관의 잠재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진지하고 놀라운 학문적 결과물로, 박물관 실무자들뿐 아니라 사회학, 미디어학, 문화 정책, 교육 분야의 연구자들도 도움을 줄 것이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스미소니언박물관 연구소의 스테판 웨일이 이 사회에 던졌던 질문, “박물관은 그 벽을 넘어, 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이 책은 박물관이 앞으로 끊임없이 복잡성을 마주하고 풀어나가는 데 독특하면서도 가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박물관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 정말 박물관은 사회 문화적 차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그동안 다루기 어려웠던 이러한 질문들은 이제 박물관 분야에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리처드 샌델은 이 주제에 대해 최초로 심도 깊은 경험적 증거를 분석하고 제시하여, 논의를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게 하였다. 박물관 권력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 가능성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문화적 기관인 박물관이 어떤 방식으로 문화 간 존중을 기르고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할 것인지를 다양한 학문적 시각을 이용해 획기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여러 정교한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결국 ‘박물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낸다. 무엇보다도 관람자의 박물관 방문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박물관 경험의 진짜 의미에 대해 그 어떤 책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