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와 운동, 그리고 출근. 따로 놀수록 좋을 세 가지가 강력히 연결된 나의 아침이 또 밝았다. 오늘도 숙취 요정은 출근이라는 고행을 감행한다. 생은 고라고 했다. (못 먹어도 ‘go’라는 점에서도 ‘고’다.) 세상사 쉬운 게 어 디 있겠나. 태생이 올빼미형 인간인데 아침 출근이 기꺼 울 리 만무하다. 아침형 인간도 아침에 놀러가는 게 쉽지 출근하는 게 좋을 리 없다. 고로 숙취라는 강력한 제재가 있든 없든 더 자고 싶음과 놀고 싶음, 그냥 가기 싫음 등등 인간의 인간적 욕망을 거스르고 최소 주 5회 출근 중인 모든 이들의 출근은 신성하다. 우리의 오늘은 이미 그 자체로 성취다.
---「아무튼 출근요정, 아무튼 카드노예」중에서
너도 까이고 나도 까이는 이 암울한 직장 안에서, “고생 좀 더 해봐야지”로 점철된 이 구역에서, 승자는 과연 누굴까? 나는 아닌데, 저 말을 한 선배인가? 그렇게 말하면 부장님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는 걸까? 왜 우리는 인정받지 못한 채 인정할 수 없는 자로 나이 들어가는 걸 까. 칭찬할 수 있는 자리에서 칭찬하지 못하는 자로 늙어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 다. 싹 다 아니다. 선배가 열두 번 까였을 때 후배는 열한 번, 열 번, 아홉 번 까이는 환경이면 나는 좋겠다. 그렇게 한 명이라도 더 나아지면 좋겠다. 나는 나의 개고생은 물론, 누구의 개고생도 당연한 것이라고 함께 하찮아지지 않으련다.
---「오늘도 그렇게 하찮아지는 중이다」중에서
신입의 ‘패기’란 진정 신입에게만 허락되는 단어일 까?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다는 것이 그 일의 안 좋은 점을 복잡하게 안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은 것은 단순하고 변함없이 좋아한다는 것일 수 도 있지 않을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날」중에서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살짝살짝 피해가는 쪽이 꾸역꾸역 이고지고 가는 것보다 분명 쉬울 거다. 아니 덜 어려 울 거다. 나도 분명 꽤나 회피했고, 종종 쉬웠다. 그렇게 많이 부끄러웠을 거다. 회피가 잠깐은 쉬울지 몰라도 계 속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되새기는 하루다. 나만 많이 부 끄러운 게 모두가 조금은 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곱씹는 오늘이다. 컨펌 신생아는 오늘도 부끄러움과의 싸움에 패배하는 중이다.
---「우리 동년배들 전부 컨펌한다」중에서
환경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해서 바뀌어갈 것이다. 가속도는 더 붙을 것이다. 그럼 나는 또 좌충우돌 헤매겠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미미한데 나를 바꿀 것들은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온다. 매일이 허들을 넘으려다 넘어지는 날들이다. 반짝 도약했다 내내 움츠리는 날들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잠깐을 위해 내내 움츠릴 수 있는 어깨를,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을 가진, 그래서 직장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만의 숫자가 있다」중에서
참고 참아서 일주일에 세 번 술 먹자고 연락하는 친구. 술 먹자는 거 아니야, 오늘 날씨가 술이지만 그래도 만 나지 말자, 퇴근하고 뭐해? 그냥 물어보는 거야, 술 먹자 는 거 아니래도, 구구절절 변명이 무한한 친구. 술 먹자는 말없이 술 먹자는 마음을 기꺼이 들키는 친구. 원래 마음이 더 큰 사람이 달려가는 법이라며 마포구청, 상암, 합정, 마곡나루, 어디에서든 단 한 곳, 신사역 8번 출구로 달려오는 친구. 마음이 큰 친구. 가끔은 부담스러운 친구. 꼭 나 같은 존재.
---「날씨가 술이네, 만나잔 얘긴 아니야」중에서
내내 차갑던 너도 오늘 잠시 뜨거운 날일 수 있으니 까. 그 마음 풀 데 없이 서성이고 있을지 또 모르니까. 당 신이 백 번 거절해도 한 번 함께일 수 있다면 나는 백한 번째 문자를 보낼 것이므로. 그러니 당부한다. “어서 온 다고 말해!”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백 번 거절해도 나는 정말 괜찮다고. 마음의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니 마음껏 거절하라고. 거절할 줄 알아야 우리 만날 수도 있는 거라고.
---「보고 싶은 얼구을, 오라 그래」중에서
사람이 소중한 걸 알아가는 만큼이나 사람에 기대하는 바가 줄었다. 그래서 상처 받는 일도, 아니 상처 받아도 꽤 잘 빠져나올 줄 안다. 관계 속에서 울며불며 보네 마네 힘들어할 때, 이제는 그게 나의 잘못된 기대에서 비롯된 어긋난 관계였다는 것을 안다. 누가 함부로 기대하랬나, 실망만 커지는 것을. 나는 이제 사람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긍정한다.
---「삼십 대가 되고 보니 생각보다 좋았습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