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무엇보다 현재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침울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저 멀리서 반짝이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섬광을 확인하고 식별하는 몸짓을 시도한다.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숱한 참화와 고통, 착취와 수탈, 불평등과 부정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바로 그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의 실패와 배반이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여긴다.
--- 「서동진, 눈을 닦으며: 서문을 대신하여」 중에서
21세기에도 가장 끈질기게 남아 있는 식민주의의 흔적 중 하나는 언어의 풍경일 것이다. 아직도 프랑어권, 영어권, 스페인어권, 포르투갈어권의 경계는 식민 제국의 경계와 거의 일치한다. 이 탈식민 시대의 언어 풍경은 식민지 엘리트가 제국의 언어를 매개로 한 교육을 통해 근대와 만난 데서 비롯한다. 교육을 통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된 지식인 중에서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며 국민국가를 상상한 지도자들이 등장했으며, 이들이 택한 전략과 입장에 따라 공용어 혹은 국어의 미래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 「박소현, 국어」 중에서
제3세계 프로젝트를 경멸하고 조롱했던 제1세계의 지식인들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남긴 결과인 빈곤과 비참을 전통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식민지 세계에 문제는 빈곤이 아니라 전통주의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문화는 정치적 안정과 과학 발전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논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로스토우가 제창했던 근대화론이었다.
--- 「서동진, 근대화론」 중에서
네그리튀드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마르티니크 출신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에메 세제르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1930년대 파리 유학 시절에 세제르는 동료인 레오폴 상고르 및 레옹 다마스와 아프리카 이산민(diaspora)의 문화적 정체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네그리튀드라는 개념을 창안해낸다. 그리고 이를 『귀향 수첩』이라는 1,066행의 서사시집에서 처음으로 사용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인들에게 그들이 노예의 후손이 아니라, 마커스 가비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한때 지상에 존재하던 인종들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자부심이 넘치는 인종의 후손”임을 긍정케 하려는 의도로 고안되었다.
--- 「이석호, 네그리튀드」 중에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세계 질서의 재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자동으로 식민지에 독립이 주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 세력은 크게 약화됐으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는 되돌아온 유럽 세력을 상대로 기나긴 무장투쟁이나 지난한 협상을 벌인 후에야 가까스로 독립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식민 종주국의 식민지 정책과 식민지의 독립운동 발전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와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들뜬 만큼이나 공포와 폭력으로 얼룩진 여정이었다는 점이다.
--- 「박소현, 독립」 중에서
멕시코 벽화운동은 라틴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미술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선례를 따라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흑인 벽화운동이 발흥했다.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 운동의 주된 양식이었던 걸개그림도 멕시코 벽화운동을 참조했다. 아시아 판화운동에 멕시코 벽화가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멕시코 벽화운동은 미술의 정치적 실천 중 가장 눈부신 시도의 하나로 현대미술사에 남았다.
--- 「신은실, 멕시코 벽화운동」 중에서
비동맹은 중립이 아닙니다. 비동맹은 홀로 떨어져 경건한 척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 비동맹 정책은 전쟁이 나면 중립을 취하는 정책이 아니며, 비동맹은 아무 색깔 없이 중립을 취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비동맹은 두 거대 진영 사이에서 완충 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동맹은 독립, 영구 평화, 사회 정의, 자유로워질 자유라는 대의에 대한 적극적인 헌신을 말합니다. 비동맹은 이런 대의에 복무하고 인류의 사회적 분별과 조화를 이룹니다.
--- 「「비동맹운동」 중에서
아옌데,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 딱 맞는 인물이다. 그는 “하루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좋은 사람이다. / 1년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더 좋은 사람이다. / 여러 해 동안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더욱이 좋은 사람이다. / 하지만 평생을 두고 투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절대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아옌데는 영원히 칠레와 라틴아메리카를 넘어 남반구의 푸에블로(pueblo) 즉 민중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 「서동진, 살바도르 아옌데」 중에서
칠레 산티아고 공화국 거리 475번지에는 귀환한 ‘살바도르 아옌데 연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세상을 떠돌던 ‘살바도르 아옌데 국제저항미술관’(1975~1990)이 드디어 칠레로 돌아온 것이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의 죽음 이후 이 미술관은 칠레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표류했다. 아옌데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20년째 되는 해, 이 미술관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되찾으며 부활했다. 그것은 비엔날레나 마니페스타와 같은 전 지구적 미술 이벤트가 흥청대며 새로운 미술관들이 다투어 건설되던 오늘의 풍경과 대조할 때 너무나 거리가 먼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가 만들어낸 ‘글로벌 컨템포러리’(global contemporary) 미술이 상상하는 미술과는 전연 다른 미술을 상상했다. 무엇보다 그 미술관은 미술관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국제주의적 유토피아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서동진, 연대미술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