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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 환상곡

바오밥 환상곡

: 오빠가 된 소년의 한 뼘 성장기

양준서 | 봄들 | 2020년 06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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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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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18g | 135*195*10mm
ISBN13 9791196730048
ISBN10 119673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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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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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미 가족인데 무슨 가족이 또 필요해?”
오늘 같은 날 엄마아빠랑 근교 텃밭으로 나가 놀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내가 그러자고 말만 했으면 아마 그랬을 거다. 웬만하면 내 얘기를 다 들어주니까. 우리 집 주인공은 나니까. 우리 집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그렇다고 내가 믿으니까! 더 이상 잠을 물리치지 못할 듯해 얼른 책가방을 뒤져 카드를 꺼냈다. 내가 그린 세 마리 달팽이 가족 그림 바탕에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적은 카드. 어제 미리 학교에서 준비한 어버이날 선물이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넋 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 얌전히 카드를 놓고 돌아섰다. 또 다시 내 방을 버려두고 나는 안방 큰 침대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오늘 숙제를 무사히 마쳤다.
---「우리 집 주인공은 바로 나」중에서

내가 엄마아빠한테 뭘 잘못했나? 나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동생을 들이려는 거잖아. 하기야 요즘 내 말대꾸가 좀 심하긴 했지. 숙제도 하기 싫어 수습하기 바쁘니 늘 엉망이었고. 결국 내가 못나고 미워서 다른 아이가 필요한 건가? 좀 더 똑똑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아이… 맞아. 내 자신이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중략) 학교에서도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내주진 않는데 엄마아빠가 감히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만들다니. 괜하게 엄마아빠가 미워졌다. 혹시 앞으로 내가 말 잘 듣고 효자 노릇하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새 뽀송뽀송하던 침대 시트와 베갯잇이 눈물로 무겁게 젖어들었다. 양 옆에 누워 잠든 엄마아빠도 울고 있나 보다. 앞으로는 한강에 나가 짜장면 먹자는 얘기도 못하겠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을 바에야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 문득 아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바오밥 화분이 떠올랐다. 이름이 ‘아아’라고 했지. 근데 아아가 진짜 사람이 되어 나한테 온다고?
---「동화는 동화일 뿐이잖아」중에서

한동안 엄마가 무척 분주했다. 이서를 위한 각종 용품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기침대부터 젖병까지 나한테는 하나도 쓸모없는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내가 태어날 때도 엄마는 행복했겠지. 지금이 더 행복하려나.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봐도 이제 아무 소용없다. 엄마는 이서밖에 안 보일 테니까. 엄마는 일일이 원산지까지 확인해가며 물건을 구입했고 집 안 곳곳에 펼쳐놓았다. 십여 년 만에 집에서 아기용품을 본 아빠는 더 신나 보였다. 다시 신혼이라도 된 듯 엄마아빠는 쿵작거렸다. 나는 멀찍이 소파에 앉아 관심 없는 척하며 볼 건 다 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아들만 하겠어!
---「집에서 아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중에서

이서는 무럭무럭 자랐고 집안 분위기도 제법 익숙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경매 게임을 했다.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를 두고 경쟁을 했다. 물건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 값이 문제였다. 보통 제일 많이 부르면 이기지만 그것도 적절하게 요령껏 불러야 한다. 예전과 달리 나는 어떤 승부에서도 지고 싶지 않다는 집념이 부쩍 강해졌다. 특히 사업가인 친할아버지와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승리해야만 했다. 핏줄의 자존심을 건 경매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굴리고 눈치를 보며 결국 마스크 석 장을 획득했다. 엄마아빠 그리고 내 것까지 충분하군. 그런데 갑자기 아차! 했다. 이서 마스크를 깜빡했던 것이다.
---「‘셋’이 아닌 ‘넷’」중에서

이서는 생각보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듯했다. 아빠가 옆에서 거들었지만 서툰 젓가락질로 아귀아귀 입 속으로 짜장면을 퍼 넣었다. 입가에 묻혀가며 먹는 짜장면이 맛있다는 걸 이서도 이미 아는 듯했다. 짜장면 도둑이 따로 없었다. “오빠, 마시쪄.” 이서가 말했고, 순간 나는 잘 넘어가던 짜장면이 목에 걸렸다. 이런, ‘오빠’라니! 이서가 난생 처음 짜장면을 맛본 날, 나는 이서의 오빠가 되었다.
---「‘오빠’라고 처음 불린 날」중에서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가족 모두 잘 지내고 있잖아. 엄마아빠는 최고야. 나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서가 속상한 일 생기면 내가 이렇게 이서 손잡고 한강에 나와 짜장면을 시켜주면 되잖아. 엄마아빠도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둘이 다정하게 손잡고 우리 뒤를 천천히 뒤따라왔다. 갑자기 ‘으랏차차’ 구호가 떠올랐다. 구닥다리 통신으로 접속하던 시절 아빠의 대화명(?)이다. 그냥 ‘파이팅’이랑 비슷한 말 아닐까. “으랏차차!” 이서의 손을 좀 더 세게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서도 재밌는지 으랏차차를 외치며 달렸다. 세차게 부는 강바람을 뚫고 우리는 계속 달렸다. 이서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던 나는 그냥 함께 달리기만 했다.
---「으랏차차, 해피엔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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